저장고 재충전 압박 속 중국·한국·베트남 수요 변수…EU 공동구매 한계도 노출
이미지 확대보기유럽이 올여름 액화천연가스(LNG) 확보를 놓고 아시아와 더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유럽연합(EU)의 가스 비축량이 예년 평균보다 낮은 상황에서 중국, 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수요가 늘면 현물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다시 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폴리티코는 유럽의 가스 저장량이 줄고 여름철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제한된 천연가스 물량을 두고 아시아와의 경쟁이 커지고 있다고 2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중국, 베트남, 한국처럼 중앙집중적 에너지 조달 체계를 갖춘 아시아 국가들이 현물시장에서 가스 구매 협상에 더 유리할 수 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반면 시장 중심 구조인 유럽은 27개 회원국과 민간 수입업체들의 이해관계가 갈려 공동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유럽, 겨울 앞두고 저장고 채워야
EU 회원국들은 규정에 따라 12월까지 각국 가스 저장시설을 최소 80% 이상 채워야 한다. 통상 유럽은 수요와 가격이 낮은 여름철에 가스를 사들여 저장하고 겨울철 수요가 늘면 이를 활용한다. 에너지 트레이더들도 여름철 낮은 가격에 가스를 사 저장한 뒤 겨울철 비싼 가격에 팔아 차익을 낸다.
그러나 올해는 여름철 가격이 이미 높아 이런 유인이 약해졌다. 그 결과 유럽의 가스 저장률은 5년 평균을 밑돌고 있다. 여름철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겨울철 난방 수요가 몰릴 때 가격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
패트릭 푸야네 토탈에너지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주 프랑스 의원들에게 유럽이 긴장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타르산 공급을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면 유럽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가격이 2022년 수준까지 치솟지는 않겠지만 연료 가격처럼 급락하기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 아시아 폭염이 현물시장 경쟁 키울 수도
변수는 아시아 수요라는 지적이다. 아시아에서 더운 여름이 나타나면 냉방용 전력 수요가 늘고, 이는 가스발전 수요를 끌어올린다. 특히 한국, 베트남, 태국 등은 여름철 전력 피크를 맞추기 위해 LNG 현물 구매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장기 공급계약에 주로 의존하지만 수요가 갑자기 늘거나 저장 물량이 줄면 현물시장 구매를 확대할 수 있다. 현물시장은 장기 계약과 달리 매일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으로 수요가 몰리면 가격이 빠르게 뛴다.
문제는 올해 유럽도 현물시장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아시아 수요 증가와 유럽의 늦여름 재고 채우기 수요가 겹치면 LNG 화물을 놓고 대륙 간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토비아스 페데리코 몬텔에너지 수석분석가는 “유럽이 저장 목표를 맞추기 위해 현물시장에서 아시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올해 LNG 수입 13% 더 필요할 수도
유럽연합 에너지규제협력청(ACER)에 따르면 올해 EU가 저장 목표를 달성하려면 2025년보다 LNG 수입을 최대 13% 늘려야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여건에서는 쉽지 않은 과제다. 특히 페르시아만 지역 생산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물량 확보는 더 어려워진다.
미국과 이란의 평화 합의가 유지되더라도 유럽의 에너지 문제가 곧바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해상 수송과 생산, 저장 물량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카타르 등 주요 공급처의 물량 회복도 유럽에는 중요한 변수다.
세브 케네디 에너지플럭스 창업자는 유럽이 더 절박하게 LNG를 조달하려 할 경우 글로벌 시장이 더 빠듯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 경우 유럽이 가스 저장고 재충전 노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문제를 겨울로 미루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 공동구매 플랫폼도 효과 제한
유럽이 아시아와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은 조달 구조의 차이에서 나온다. 중국처럼 국가 주도형 경제 체제에서는 정부가 소수 기업에 구매 지시를 내릴 수 있다. 반면 EU는 민간 기업과 27개 회원국이 각각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움직인다.
EU는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동 가스 구매 플랫폼인 애그리게이트EU를 만들었다. 이는 민간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함께 수요를 모아 더 나은 조건으로 가스를 사들이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플랫폼의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소규모 수입업체들은 관심을 보였지만 대형 에너지 기업들은 대체로 독자 협상을 선호했다. 독일 에너지기업 세페(SEFE)의 크리스토프 고트슈타인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여러 협상이 시작됐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해당 플랫폼은 이후 운영이 중단됐다. 다만 이란 전쟁 이후 유럽위원회가 플랫폼 재가동을 검토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문제는 EU가 기업들에 해당 플랫폼 이용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중국 재등장 여부가 최대 변수
유럽 당국은 중국의 움직임을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지만 이란 전쟁 이후 LNG 수입을 줄이고 보유 재고를 활용하면서 글로벌 시장 안정에 일정 부분 기여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LNG 재고는 3월 이후 5년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다시 현물시장에 대규모로 뛰어들면 글로벌 LNG 수급은 빠르게 빠듯해질 수 있다.
케이플러의 찰스 코스테루스 LNG 분석가는 한국과 태국, 베트남이 여름 동안 현물시장에서 LNG 물량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구매를 재개하면 유럽의 가격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한 EU 고위 당국자는 “중국이 대규모로 시장에 복귀하는 순간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EU 당국자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 주도형 시장은 몇몇 기업에 일을 맡기면 되지만 EU는 조정과 권고는 할 수 있어도 중국처럼 움직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