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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 서명 싸움에 9년 날렸다”...유럽, 6세대 전투기 프로젝트 공식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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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 서명 싸움에 9년 날렸다”...유럽, 6세대 전투기 프로젝트 공식 파기

獨 총리, 마크롱에 파기 전격 통보…150조 경제 생태계 침몰
다소·에어버스 이권 밥그릇 싸움 결과…결국 美 F-35에 종속
유럽 4개국이 야심 차게 추진했으나 결국 프랑스와 독일·스페인 간의 이권 다툼과 주도권 싸움 끝에 공식 파기된 유럽 차세대 6세대 전투기(FCAS/SCAF) 프로젝트의 가상 그래픽 모델. 핵심 계약자인 다소와 에어버스가 도안 서명 권한을 두고 9년간 평행선을 달린 대가는 유럽 항공우주 생태계의 완전한 붕괴와 미제 F-35에 대한 안보 종속으로 돌아오게 됐다. 사진=인드라이미지 확대보기
유럽 4개국이 야심 차게 추진했으나 결국 프랑스와 독일·스페인 간의 이권 다툼과 주도권 싸움 끝에 공식 파기된 유럽 차세대 6세대 전투기(FCAS/SCAF) 프로젝트의 가상 그래픽 모델. 핵심 계약자인 다소와 에어버스가 도안 서명 권한을 두고 9년간 평행선을 달린 대가는 유럽 항공우주 생태계의 완전한 붕괴와 미제 F-35에 대한 안보 종속으로 돌아오게 됐다. 사진=인드라

유럽 대륙의 독자적인 안보 자율성과 기술 주권을 상징하던 6세대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가 각국 정치인과 기업 경영진, 그리고 노동조합의 철저한 단기 이기주의와 주도권 싸움 끝에 결국 완전한 파국을 맞이했다. 9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요란한 선전과 함께 출범했던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프로젝트가 단 한 대의 프로토타입(시제기)도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스페인 유력 언론 라라손(Larzon)은 28일(현지 시각) 지오전략 및 국방 안보 분야의 권위자인 라파엘 다빌라(Rafael Dávila) 소장의 분석을 인용하며 유럽 방산업계의 참담한 잔혹사를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독일 총리는 지난 6월 6일 몬테네그로에서 열린 유럽연합(EU)-서발칸 정상회의 막후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독일과 프랑스는 라팔과 유로파이터를 대체할 6세대 전투기를 더 이상 공동 건조하지 않겠다"라며 베를린 당국의 최종 결정을 공식 통보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 역시 "원대한 대형 유럽 프로젝트였으나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라며 사업의 공식 사망 진단을 내렸다.

기술적 한계 아닌 ‘기업 이기주의’와 ‘패배적 자존심’의 합작품


FCAS를 파멸로 이끈 것은 결코 극복 불가능한 기술적 장벽이 아니었다. 인공지능(AI) 기반 초고속 의사결정 시스템, 가변 사이클 엔진, 차세대 레이더 흡수 소재, 인지형 전자전 및 양자 통신 등 6세대 전투기에 요구되는 방대한 R&D 과제들은 유럽 방산업계의 기존 역량으로 충분히 제어 가능한 수준이었다.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 다소 항공(Dassault Aviation)과 유럽 연합 기업 에어버스(Airbus Defence & Space) 간의 패배적인 주도권 싸움이었다.
라팔의 설계 명가를 자처하는 다소의 에리크 트라피에(Éric Trappier) CEO는 핵심 기체인 ‘차세대 전투기(NGF)’ 개발의 절대적인 주계약자(Prime Contractor) 권한을 요구하며 에어버스와의 그 어떤 동등한 파트너십도 거부했다. 반면 독일과 스페인의 산업 지분을 대변하는 에어버스는 NGF 피라미드의 3분의 2를 통제하고 있음에도 전투기 설계 실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소에 밀렸다. 여기에 독일은 프랑스 해군의 항공모함 사출 및 핵무기 탑재 능력 등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에는 전혀 불필요한 작전 요구 조건을 수용하라는 프랑스의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며 9년 동안 평행선을 달렸다.

막판 기능 장애는 점입가경이었다. 지난 2025년 12월, 독일의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인 금속노조(IG Metall)의 위르겐 케르너 부위원장과 토마스 프레츨 에어버스 노사협의회 의장은 프랑스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다소를 프로그램에서 즉각 퇴출하라는 서한을 보냈고, 이는 향후 30~40년간 자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스스로 걷어찬 자해 행위가 됐다. 이어 올해 1월에는 마이크 쉘혼 에어버스 D&S CEO가 마크롱 대통령에게 다소가 NGF 사업을 '사보타주'하고 있다는 직인 서한을 보내며 진흙탕 싸움의 정점을 찍었다. 결국 지난 3월 소집된 막후 중재 절차는 4월 18일 최종 결렬됐고, 독일 측 중재인은 "단일 전투기 개발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최종 사망 선고를 내렸다.

영·이·일 ‘GCAP’ 연합에 완패…유럽 자본으로 록히드마틴 배 불린다


FCAS의 참담한 폐기는 1000억 유로(약 150조 원·포르투갈 GDP 수준)에 달하는 거대한 항공우주 경제 생태계와 미래 방산 특허 및 민군 겸용 기술 노하우의 영구적 상실을 의미한다. 더욱 뼈아픈 대목은 영국, 이탈리아, 일본이 2022년 합작해 출범한 경쟁 프로그램인 ‘GCAP(글로벌 전투항공 프로그램)’와의 극명한 대비다. 후발 주자였던 GCAP는 명확한 거버넌스와 롤스로이스, 아비오 에어로, IHI 간의 구속력 있는 합작 법인 ‘에지윙(Edgewing)’을 출범시켜 오는 2035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고속 질주하고 있다.

결국 FCAS 컨소시엄에 묶여 있던 독일,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대륙 국가들은 자체 전투기 개발이 좌초됨에 따라 미국의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으로부터 F-35 전투기를 조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종속에 직면했다. 이미 벨기에의 테오 프랑켄 국방장관은 지난 2월 SCAF의 사망을 예견하며 F-35A 11대를 추가 직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공공 자본이 미국 방산 기업의 배를 불리는 원동력으로 전락한 셈이다.

스페인 인드라 직격탄…산체스 정부의 수동적 외교가 화 자초

이번 백지화 폭탄의 직격탄은 스페인 방산의 심장이자 FCAS의 핵심 축이었던 인드라 시스템(Indra Sistemas)에 고스란히 떨어졌다. 인드라는 수년간 막대한 금융·인적 자원을 투입해 이번 조달을 준비해 왔으나 모든 노력이 허공에 붕괴했다.

스페인 산체스 정부는 두 거인(프랑스·독일) 간의 치열한 암투 속에서 연합 정권의 정치적 소음에 매몰되어 철저한 '수동적 방관자'로 일관했다. 임시방편으로 5억 4000만 유로 규모의 시아겐(Siagen)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에어버스-인드라 컨소시엄에 8000만 유로의 차관을 승인하는 등 국산 미래 시스템 연구 명목의 땜질 처방을 내놓았으나, 이는 사업이 이미 임상적 사망 상태임을 묵시적으로 인정한 조치에 불과했다. 결국 결정적인 발언권 한 번 행사하지 못한 채 강대국들의 자존심 싸움에 들러리만 선 형국이다.

오는 2040년 영국, 이탈리아, 일본의 6세대 전투기가 인·태 하늘을 누비는 동안, 대륙의 유럽인들은 온갖 기술적 통제와 제약이 걸린 미국의 F-35를 수입해 타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구호는 역사상 가장 허망한 정치적 수사로 박제되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