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부의 이전, 상속세 부담 큰 한국에선 치명타… “유산 아닌 시스템 물려줘야”
자녀 3040 때 소액 자산 넘겨 투자 실패 유도… 단계별 실행 프레임 구축 필요
자녀 3040 때 소액 자산 넘겨 투자 실패 유도… 단계별 실행 프레임 구축 필요
이미지 확대보기상속세 절세 기술보다 가족 간 소통과 상속인 교육이 승계 성패를 가르는 본질 요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미국 자산관리 기업 알티 티데만 글로벌과 캠든 웰스가 126개 가족 자산관리 전문기구(패밀리오피스)를 조사해 지난 1일(현지 시각) 발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상속 시장의 현실과 경제 해법을 진단한다.
자녀 망칠까 숨기는 돈…한국선 ‘흑자도산’ 부른다
부의 목적을 정하는 일이 자녀 교육에 필수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대화에는 소극적 가구주가 많다. 조사 결과, 응답자 71%는 자녀와 부의 목적을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거나 소통이 부족했다.
자산가 대다수가 자녀에게 부를 공개하면 자립심을 잃고 게을러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쥐고 있던 자산 통제권을 넘겨주는 일 자체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화 단절은 자산 승계 실패로 직결된다. 자문사 윌리엄스그룹이 3200가구를 20년 동안 추적한 결과, 자산 승계 성공 요인의 85%는 가족 간 신뢰와 소통, 상속인 준비 상태였다. 자산관리 기술이나 세금 전략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했다.
특히 부동산 중심 자산 구조에 고령화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한국은 준비 없는 상속의 대가가 치명적이다. 한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에 이르며,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까지 더해져 세 부담이 급증한다.
미리 자녀와 소통하며 유동성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부모 사후에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급매물로 자산을 처분하다 가문 전체가 공멸하는 ‘상속 흑자도산’을 맞을 수 있다. 최근 일부 중견기업 승계 과정에서 후계자 교육 부재와 유동성 확보 실패로 지분을 매각하거나 경영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다.
60대에 받는 유산…저성장 시대 ‘자산가치 훼손’ 리스크
자산 가격 상승으로 상속 규모는 커졌지만,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되면서 자산 운용 능력 격차에 따른 가문 간 자산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상속은 이제 단순한 부의 이전이 아니라 운용 역량의 이전 문제다.
알티 티데만 글로벌의 질 시플리 거버넌스 부문 책임자는 자녀가 30~40대일 때 자산을 일부 이전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자녀가 비교적 적은 돈으로 투자 실패를 경험하며 자산관리 역량을 키울 수 있어서다.
부모 역시 자녀가 자산을 활용해 사회 성취를 이루는 모습을 살아생전에 함께 지켜보는 기쁨을 누린다. 부의 목적을 공식 문서로 만들고 실행에 옮긴 가구는 올해 48%로 지난해 33%와 비교해 15%포인트 늘었다. 부의 이전이 아니라 자산 운용 시스템을 이전해야 복리의 마법을 대를 이어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조기 증여에 따른 세금 부담이 일시에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가구주가 감당해야 할 현실 제약이다. 세무 전문가들과 사전 조율을 거쳐 증여세 분납이나 공제 제도를 활용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역량 이전에 초점 맞춘 세 가지 승계 경로
자산가가 자녀에게 부를 넘겨줄 때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자산 손실률과 운용 효율에 따라 세 가지 방향으로 갈린다. 이들 경로의 핵심 차이는 자산에 대한 통제 수준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의 운용 역량 이전 여부에 있다.
첫째는 부의 목적을 공유하지 않고 사후에 자산을 일시에 넘기는 통제형 경로다. 이 방식은 준비 없는 자녀가 자산을 넘겨받아 운용하다 손실을 보거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자산가치가 시장가격 대비 훼손되는 자산 디스카운트 리스크에 직면하기 쉽다.
둘째는 자녀 나이나 역량에 상관없이 조기에 부를 전액 넘기는 방임형 경로다. 이 경우 자녀가 근로 의욕을 잃고 자산을 생산 투자가 아닌 사치와 유흥 같은 소비 자산으로 탕진할 위험이 크다.
마지막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가장 안정적 형태인 목적 기반 승계 경로다. 자녀 나이와 역량에 맞춰 부의 목적을 단계적으로 교육하고, 30대부터 소액을 이전해 관리 경험을 쌓게 함으로써 가문의 자산 규모와 복리 효과를 안정 상태로 유지하는 전략이다.
시스템 전수를 위한 단계별 대화법
국내외 자산 전문가들은 가문 자산 운용 시스템을 전수하기 위해 단계별 실행 프레임을 구축하라고 권고한다. 시작은 자녀에게 가문의 자산 구조와 유동성 현황을 점차 공개하며 범위를 넓히는 일이다. 이후 연 1~2회 정기 미팅을 열어 부의 가치관과 사회 역할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
자녀가 30대에 접어들면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소액 자산을 넘겨 직접 투자를 실습하게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는 자산 운용 능력을 키우는 기회로 인정하고 보완점을 함께 논의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가문의 기부와 창업, 투자 지침을 담은 부의 목적 선언서를 작성해 해마다 수정 보완하며 시스템을 완성한다.
부의 이전은 타이밍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다. 사후에 천문학적인 유산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살아생전 자산을 지키고 키울 운용 능력을 남길 것인가가 가문의 미래를 가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