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 조달 위해 금리 낮게 두지 않는다”…물가 재상승 속 연준 독립성 부각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 대한 견제 발언이 연방준비제도 내부에서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가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통화정책을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모틀리풀은 월러가 최근 열린 콘퍼런스에서 “미국 정부가 적자를 조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는 통화정책이 독립적으로 유지돼야 하며 연준의 경제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같은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준금리를 1%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연 3.50~3.75% 범위에 있다.
◇트럼프는 금리 1% 이하 요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연준을 향해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해왔다.
연준은 2024년 9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여섯 차례 기준금리를 낮췄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의 차입 비용을 낮추고 고용과 투자를 자극하려면 더 낮은 금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AI 인프라 투자도 금리 인하 요구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 구축에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다. 낮은 금리는 빅테크와 관련 기업의 AI 인프라 확장을 뒷받침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 큰 배경은 연방정부 부채다. 미국의 미상환 국가채무는 39조4000억달러(약 5경9500조원)에 이른다. 금리가 높게 유지되면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도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거듭 요구하는 데는 재정 운용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러 “재정 조달은 연준 역할 아니다”
월러 이사의 발언은 이같은 정치적 압박에 대한 직접적 반박으로 풀이된다.
그는 연준이 정부의 부채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연준의 책무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월러 이사는 경제 지표가 금리 인하를 요구한다면 기준금리 인하를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도 함께 열어뒀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물가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려면 물가가 안정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반대로 근원 물가가 다시 올라가면 금리 인하보다 동결이나 추가 긴축 가능성이 더 커진다.
모틀리풀은 월러 이사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차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연준이 재무부의 자금 조달 사정을 배려해 통화정책을 완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관세와 이란 전쟁이 물가 압박
모틀리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는 물가 재상승 흐름과 충돌하고 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2% 올라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근원 CPI도 2.9%로 상승했다. 연준의 물가 목표 2%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물가 압력에는 두 가지 충격이 작용하고 있다.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무역정책이다. 미국 대법원이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의 일부 관세 조치를 무효화했지만 광범위한 글로벌 관세는 여전히 상품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남아 있다.
다른 하나는 이란 전쟁이다. 미국의 군사작전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운송이 차질을 빚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물가 전반에 부담을 줬다.
최근 원유 가격이 두 달 사이 하락했지만 에너지발 가격 충격은 다른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물가가 다시 높아지는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낮추기는 어렵다.
◇워시 의장도 물가 안정 강조
케빈 워시 연준 신임 의장도 물가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 연준 이사 시절에도 비교적 매파적 성향을 보였던 워시 의장은 중앙은행이 가격 안정을 달성하겠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내놨다. 시장에서는 워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보다 물가 안정 책무를 우선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재정정책의 영역에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입장도 밝힌 바 있다. 월러 이사의 발언은 이런 기조와 같은 방향에 있다는 관측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