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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간판 바꾼 기업들, 주가 효과 단기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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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간판 바꾼 기업들, 주가 효과 단기 그쳐

FT 분석, 시총 최고점 106% 뛰었지만 절반 이상 반납…SEC ‘AI워싱’ 단속도 강화
기업들이 AI 간판을 내걸고 주가 부양을 노리지만 시장에서는 단기 상승 뒤 되돌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기업들이 AI 간판을 내걸고 주가 부양을 노리지만 시장에서는 단기 상승 뒤 되돌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챗GPT
인공지능(AI) 열풍에 올라타기 위해 회사 이름과 사업 방향을 바꾼 미국 상장사들이 단기 주가 상승 효과를 봤지만 상당수는 이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AI라는 이름표가 투자자 관심을 끌어내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실제 사업 성과와 수익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주가 프리미엄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023년 이후 최소 28개의 미국 상장사가 회사 이름에 AI 관련 표현을 넣거나 AI 중심 사업 전환을 내세웠다고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은 암 치료제 개발, 금광 사업, 소셜네트워크, 신발 제조, 가상화폐 채굴 등 서로 다른 업종에서 AI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궤도경제 같은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FT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은 리브랜딩 발표 전주와 비교해 발표 이후 최고점에서 87억달러(약 13조1000억원), 106% 늘었다. 그러나 지난달 말 기준으로 상승분의 절반 이상은 사라졌다. 7개 기업은 리브랜딩 발표 이전보다 시가총액이 더 낮아졌다.

◇ AI 이름표에 몰린 단기 매수세


AI 리브랜딩 효과는 상장 초기나 실적 부진 기업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표 사례는 올버즈다. 친환경 운동화 브랜드로 알려졌던 올버즈는 지난달 스마트버드로 이름을 바꿨다. 신발 판매 기업에서 AI 반도체를 탑재한 고급 서버 사업에 집중하는 회사로 전환하겠다는 전략도 내놨다.

올버즈는 한때 소비재 성장주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을 겪었다. 이 회사가 AI 인프라 전환을 발표하고 새 이름을 쓰기 시작하자 주가는 급등했다. 시장은 신발회사보다 AI 데이터센터와 서버 기업에 더 높은 성장 기대를 부여했다.

이런 반응은 AI 투자 열기가 얼마나 강한지를 반영한다. 투자자들은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클라우드 컴퓨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존 사업이 부진한 기업이 AI 인프라로 방향을 틀겠다고 밝히면 단기적으로 새로운 성장 서사가 생긴다.

그러나 FT는 “이같은 주가 효과는 대부분 오래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바꾸는 것과 실제 AI 사업을 구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 소액주·장외주식에 집중된 리브랜딩


AI 리브랜딩 기업의 상당수는 초소형주나 장외시장 핑크시트 종목이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리브랜딩 이전부터 재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암 치료제 개발 기업 호스테라퓨틱스는 5월 로켓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반도체 기술과 궤도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두 달 전 감사인은 이 회사의 계속기업 존속 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 상태였다.

소셜네트워크 기업 마이시엄은 지난 4월 마이시엄.AI로 이름을 바꿨다. 이 회사의 2025년 매출은 550달러(약 83만원)에 그쳤다.

또 다른 장외 종목은 2007년 골프 관련 사업으로 출발한 뒤 온두라스 금광 사업을 거쳐 2025년 1월 블루스카이AI라는 이름으로 데이터센터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이름을 네 차례 바꿨다.

영국에서는 소비자금융 핀테크 기업 인베스트먼트에볼루션크레딧이 지난해 5월 어메이징AI로 이름을 바꿨지만 올해 1월 상장폐지됐다.

이런 사례들은 AI 리브랜딩이 실제 사업 전환보다 투자자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회사 이름과 설명은 빠르게 바꿀 수 있지만 데이터센터 부지, 전력 계약, 반도체 조달, 고객 확보, 기술 인력 구성에는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

◇ 가상화폐 채굴사의 전환은 일부 예외


FT에 따르면 모든 AI 전환이 단순한 유행 추종으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가상화폐 채굴 기업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AI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들은 전력망 접속권과 대규모 전력 사용 경험, 컴퓨팅 설비 운영 노하우를 갖고 있어 AI 인프라 시장으로 옮겨갈 기반이 상대적으로 크다.

사이퍼마이닝은 지난 2월 사이퍼디지털로 이름을 바꾸고 데이터센터 건설에 초점을 맞췄다. 이후 시가총액은 약 50% 늘어 거의 100억달러(약 15조원)에 이르렀다.

캔터피츠제럴드의 가상화폐 애널리스트 브렛 노블라우크는 가상화폐 채굴 기업들이 전력망 접속권과 GPU를 AI 인프라를 대규모로 사들이는 하이퍼스케일러에 제공하는 것은 사업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 채굴 기업보다 AI 데이터센터 기업을 보유하려는 투자자 수요가 훨씬 크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회사의 투자 논리 자체가 AI 인프라 전환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 역시 실행력이 관건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단순 채굴장보다 전력 안정성, 냉각, 네트워크, 고객 계약, 자본 조달 요구가 더 복잡하다. 기존 채굴 설비를 AI 추론이나 훈련용 인프라로 전환하려면 기술적 개조와 장기 고객 확보가 필요하다.

◇ 닷컴·가상화폐 거품과 닮은 흐름


AI 리브랜딩은 과거 기술 거품기와 닮은 점이 많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당시 미국 기업들은 회사 이름에 ‘닷컴’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주가가 급등했다. 2000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름에 ‘닷컴’을 추가한 미국 주식은 변경 발표 후 10일 안에 72%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2010년대 후반 가상화폐 열풍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음료회사 롱아일랜드아이스티는 2017년 롱블록체인으로 이름을 바꾼 뒤 주가가 500% 뛰었다. 그러나 202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내부자거래 조사와 관련해 이 회사 증권 등록을 취소하면서 열풍은 끝났다.

취리히대 연구진이 지난 2021년 발표한 논문도 가상화폐 열풍기 회사명 변경이 단기 주가 상승을 불렀지만 리브랜딩 기업은 단기적으로 이익이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AI 리브랜딩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 유행이 생기면 일부 기업은 사업 실체보다 이름과 설명을 먼저 바꾼다. 시장은 초기에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매출과 이익, 자본 지출, 고객 계약을 요구한다.

◇ SEC, AI워싱 단속 강화


규제당국도 AI 리브랜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지난 2024년부터 이른바 AI워싱을 명시적으로 겨냥하기 시작했다. AI워싱은 기업이 실제보다 AI 기술을 더 많이 쓰거나 더 큰 역량을 갖춘 것처럼 투자자에게 설명하는 행위를 뜻한다.

SEC는 2024년 3월 AI 사용에 대해 허위·오해 소지가 있는 설명을 한 투자자문사 두 곳을 제재했다. 이들 회사는 총 40만달러(약 6억원)의 민사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법률회사 DLA파이퍼의 AI 분야 변호사 숀 풀턴은 “회사명 변경이나 리브랜딩 자체에 명확한 금지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AI라는 표현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업 부문이나 역량을 암시한다면 SEC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관련 허위·과장 설명은 단순 홍보 문구 문제가 아니다. 상장사가 사업 방향과 기술 역량을 과장하면 투자자는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주식을 살 수 있다. 특히 소액주와 장외주식은 정보가 부족하고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개인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스마트버드 “단순 리브랜딩 아니다”


AI 전환을 선언한 기업들은 자신들의 변화가 단순 이름 바꾸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스마트버드의 나디아 칼스텐 최고경영자는 회사의 전환을 AI 리브랜딩이 아니라 새로운 AI 인프라 기업의 창출로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새 경영진을 갖췄고 재무구조도 강화됐으며 장기 전략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버드 사례처럼 일부 기업은 실제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경영진을 교체하며 새로운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문제는 시장이 이런 변화를 모두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AI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오를 수 있지만 이후에는 실제 데이터센터 구축과 고객 확보, 매출 창출 능력이 검증돼야 한다. AI 인프라 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단순한 사업 발표보다 전력 계약, 설비 투자, 장기 공급 계약, 기술 인력 확보 같은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AI 열풍의 다음 검증대


AI 리브랜딩 열풍은 투자자 심리의 방향을 드러낸다.

아카디언자산운용의 오언 라몬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 주식시장이 개인투자자 비중과 소셜미디어, 거래 앱의 영향을 더 크게 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이름 변경이 개인투자자를 겨냥한 전략으로 작동할 수 있다. 영구적 효과는 없더라도 단기 효과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FT는 “AI 열풍이 지금까지 기업의 실제 업종 전환을 과거보다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연례보고서의 산업분류를 기준으로 보면 AI 붐이 이전보다 더 많은 사업 전환을 촉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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