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성장·중동 긴장에 실질금리 2.3% 돌파…물가 지표와 워시 증언 주목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경제의 탄탄함과 이란 전쟁발 중동 긴장이 달러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지만 미국 국채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달러는 높은 금리와 상대적으로 강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에 미국 국채는 같은 요인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금리 인상 우려가 커지면서 약세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자들이 달러에는 유리하지만 미국 국채에는 불리한 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실질금리는 1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고 투기적 거래자들의 달러 강세 베팅은 지난 2015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커졌다.
미국의 10년 만기 물가연동국채 실질금리는 지난주 2.3%를 넘어섰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 영향을 뺀 수익률로 투자자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뒤 얻을 수 있는 실제 수익률을 뜻한다. 실질금리가 높아지면 달러 자산의 매력은 커지지만 채권 가격에는 부담이 된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 강한 미국 경제가 만든 달러 강세
달러 강세의 배경에는 미국 경제의 상대적 우위가 있다.
미국 경제는 다른 주요국보다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다시 높아지면서 안전자산 선호도 달러를 떠받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주말 사이 추가 공방을 벌였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 여부를 둘러싼 엇갈린 주장도 시장 불안을 키웠다.
달러는 높은 금리와 성장 우위를 동시에 갖춘 통화로 평가받고 있다. 윈스럽캐피털매니지먼트의 애덤 쿤스 최고투자책임자는 “달러가 높은 수익률과 우수한 경제 성장이라는 두 가지 장점을 동시에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쿤스는 달러 강세 포지션을 유지하되 장기 미국 국채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가 계속 다른 지역보다 강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지고 장기 금리가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로와 엔을 매도해 달러 포지션을 구축하고, 장기채에서는 미국보다 영국과 유럽 채권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실질금리 상승이 국채 압박
미국 국채 약세의 핵심은 실질금리 상승이다.
인사이트인베스트먼트의 브렌던 머피 북미 채권 책임자는 “실질금리가 높은 이유는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연준이 더 매파적으로 바뀌었고, 경제 지표는 견조하며,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환경이다. 미국 실질금리가 다른 주요국보다 높아지면 글로벌 자금은 달러 자산으로 들어오려 한다. 그러나 미국 국채를 사면 금리 상승에 따른 가격 하락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장기 국채는 인플레이션과 성장률, 재정 부담에 더 민감하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하고 에너지 가격이 다시 오르면 장기 금리는 더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 이 경우 장기 국채 투자자는 평가손실을 볼 수 있다.
실질금리 상승은 차입 비용도 높인다. 기업과 가계가 실제로 부담하는 금융비용이 커지면 경제 활동에는 시차를 두고 부담이 된다. 미국 달러 강세와 실질금리 상승이 이미 금융 여건을 긴축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투기세력 달러 강세 베팅 2015년 이후 최대
투기적 거래자들도 달러 강세에 베팅하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일로 끝난 주간 투기적 거래자들의 달러 파생상품 순매수 포지션은 400억달러(약 60조원)를 넘었다. 이는 2015년 이후 가장 강한 달러 강세 베팅이다.
브랜디와인글로벌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잭 매킨타이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이 더 매파적인 연준을 반영하고 있어 최근 달러 강세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탄탄한 미국 경제를 이유로 미국 국채 비중은 낮게 유지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블룸버그달러스팟지수는 지난주 올해 고점 부근에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같은 기간 정책금리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7bp(1bp=0.01%포인트) 오른 4.21%를 기록했다.
이같은 흐름은 연준 금리 전망이 달러 향방의 중심에 다시 놓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으로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며 달러와 실질금리의 관계가 약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두 지표의 연결성이 다시 뚜렷해지고 있다.
◇ 이번 주 CPI와 워시 증언이 분수령
시장은 이번 주 나올 미국의 6월 물가 지표를 주목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는 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전 마지막 주요 물가 지표다. 블룸버그 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들은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와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가 전년 대비 기준으로 5월보다 소폭 둔화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두 지표 모두 연준 목표인 2%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의 추가 긴축 기대도 커졌다. 스와프 시장은 12월까지 약 40bp의 금리 인상을 반영하고 있다. 지난달 초의 약 15bp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미 의회 증언도 중요하다. 워시 의장은 14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15일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반기 통화정책 보고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취임 이후 금리 전망에 대한 전진 지침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투자자들은 워시 의장이 중동발 유가 상승과 끈적한 물가, 미국 경제의 견조함을 어떻게 평가할지 살필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내놓으면 달러 강세와 국채금리 상승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
◇ 모두가 금리 인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준이 연말 전에 반드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데 시장이 완전히 합의한 것은 아니란 지적이다.
인사이트인베스트먼트의 머피는 “성장세가 강하지만 노동시장은 6개월 전보다 더 복합적인 신호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책당국자들이 금리를 동결하는 쪽이 더 자연스러운 경로라며 실질금리가 이미 고점에 가까웠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MUFG증권의 조지 곤칼베스도 “강한 달러와 높은 실질금리가 이미 금융 여건을 조이고 있다”고 봤다. 이는 연준이 실제로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차입 비용을 높이는 효과를 낸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주요 금융회사는 매파적 연준과 높은 실질금리가 앞으로도 달러를 지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전략가들은 3분기 달러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낮은 수익률의 통화에 대해 달러를 매수하라고 권고했다.
시장 내부의 시각은 엇갈리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는 관측이다. 미국 경제가 강하고 물가가 목표보다 높게 유지되는 한 달러는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같은 환경은 미국 국채 투자자에게 금리 상승 위험으로 돌아온다.
◇ AI 투자와 재정 차입도 실질금리 지지
실질금리가 높은 이유는 단기 물가와 연준 전망만이 아니다.
블룸버그 마켓츠라이브의 앨리스 안드레스 거시 전략가는 “미국 예외주의가 높은 실질금리를 설명한다”고 분석했다. 인공지능 투자, 재정 차입, 자본 수요 증가 같은 구조적 변화가 실질금리를 높은 수준에 머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 투자는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한다. 미국 정부의 재정 차입도 국채 공급을 늘린다. 자본 수요와 국채 공급이 동시에 커지면 장기 금리가 낮아지기 어렵다.
이는 미국 국채시장의 구조적 부담이다. 물가가 다소 완화되더라도 AI 투자 붐과 재정 적자가 장기 실질금리를 떠받칠 수 있다. 달러는 이런 높은 수익률 덕분에 강세를 유지할 수 있지만, 국채 가격은 그만큼 압박을 받는다.
◇ 달러와 국채의 동행이 깨진 시장
투자자들은 달러 강세와 미국 국채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는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자산이 안전자산으로 묶여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위기가 커지면 달러와 미국 국채가 함께 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경제의 강함과 연준 긴축 가능성이 달러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국채금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단순히 미국 자산을 사는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달러는 보유하되 장기 미국 국채 노출은 줄이거나, 미국 국채 대신 유럽·영국 장기채를 선호하는 식의 분화된 전략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주 미국 물가 지표와 워시 의장 증언은 이 흐름이 이어질지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물가가 예상보다 높거나 연준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강하게 열어두면 달러 강세와 국채 약세는 더 뚜렷해질 수 있다. 반대로 물가 둔화가 확인되고 노동시장 냉각 신호가 커지면 실질금리는 고점을 통과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을 수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