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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정유업계, 미국산 원유 구매 다시 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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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정유업계, 미국산 원유 구매 다시 타진

호르무즈 통항 사실상 멈추자 현물 협상 재개…20% 통행료·운송 지연비가 변수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슨의 마라톤페트롤리엄 로스앤젤레스 정유소에 있는 원유 저장탱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슨의 마라톤페트롤리엄 로스앤젤레스 정유소에 있는 원유 저장탱크. 사진=로이터

미국과 이란의 충돌 격화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멈추면서 아시아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 구매를 다시 타진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공급망이 흔들리자 미국산 현물 물량이 대체 공급원으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아시아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 현물 구매 협상을 재개하고 있다고 14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산 원유 판매와 아시아 정유사 조달에 관여한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산 화물 현물 거래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고 전했다. 다만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의 가격 차는 여전히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이 이란 항만 봉쇄를 재개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화물에 20%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구상이 나오면서 중동 원유 수송 위험이 급격히 커진 데 따른 것이다.

◇ 호르무즈 통항 사실상 중단


아시아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를 다시 들여다보는 가장 큰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급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현재 선박자동식별장치로 관측되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이란이 일부 원유 유조선을 자동식별장치를 끈 채 페르시아만 밖으로 빼내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추적되는 운항 흐름은 거의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의 핵심 수송로다. 아시아 정유사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UAE 등 걸프 산유국 원유에 크게 의존해왔다. 해협 통항이 흔들리면 원유 자체보다 운송 일정과 보험료, 선박 대기 비용이 먼저 문제가 된다.

최근 며칠 사이 선박 공격도 늘었다. 미국은 이란 항만 봉쇄를 다시 시행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지원 아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품에 20%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 초대형 유조선 한 척에 449억원 부담


트럼프 대통령의 20% 통행료 구상은 원유 거래 비용을 크게 바꿀 수 있는 변수다.

블룸버그는 현재 유가 기준으로 만재 초대형 유조선 한 척에 해당 비용이 약 3000만달러(약 449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전쟁 초반 이란이 비슷한 항해에 부과하던 약 200만달러(약 30억원)보다 훨씬 큰 규모다.

통행료가 실제로 적용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부과 대상이 선박인지, 화물인지, 걸프 산유국의 수출 물량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해운사와 정유사 입장에서는 이런 구상이 제시된 것만으로도 운송 비용과 계약 조건을 다시 계산할 수밖에 없다.

미국산 원유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항해 거리가 길고 운임이 높을 수 있으며 원유 품질과 정제 설비 적합성도 따져야 한다. 이 때문에 아시아 정유사들이 미국산 구매 협상에 나섰더라도 가격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실제 거래는 제한될 수 있다.

◇ 중동 물량 공백 우려에 협상 재개


미국산 원유 협상은 한동안 잠잠했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이후 중동에서 밀려 있던 원유 물량이 현물시장에 쏟아지면서 아시아 정유사들의 미국산 구매 논의는 주춤했다. 중동산 원유 공급이 회복되는 듯 보이자 굳이 먼 미국산 원유를 비싼 운임으로 들여올 유인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휴전이 흔들리고 해협 통항이 다시 막히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중동산 원유 흐름이 다시 위협받자 정유사들은 미국산을 포함한 대체 물량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정유사들은 보통 장기 계약 물량과 현물 구매를 섞어 원유를 조달한다. 장기 계약 물량이 지연되거나 선박 운항이 불확실해지면 현물시장에서 대체 원유를 찾아야 한다. 미국산 원유는 물량이 풍부하고 정치적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거론된다.

◇ ADNOC 현물 입찰에도 리스크 반영


중동 현물시장도 호르무즈 위험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 ADNOC은 14일 현물 원유 공급 입찰을 마감할 예정이다. 입찰 참여를 검토하는 관계자 최소 2명은 걸프 안팎의 위험이 커진 점을 반영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낮은 입찰가를 검토하는 이유는 운송 지연과 선적 차질 가능성 때문이다. 선박이 항만에 묶이거나 통항 절차가 지연되면 체선료가 발생한다. 전쟁과 봉쇄, 선박 공격이 겹치면 이런 비용은 빠르게 커질 수 있다.

원유 가격만 보고 거래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정유사는 원유 구매가와 운임뿐 아니라 선박 확보, 보험료, 체선료, 대체 항만 가능성까지 함께 계산해야 한다.

ADNOC 물량은 아시아 정유사들에게 중요한 중동 공급원이다. 그러나 UAE 유조선 피격과 호르무즈 통항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는 안전한 인도 여부가 가격 못지않은 변수로 떠오른다.

◇ 미국산 원유의 기회와 한계


미국산 원유는 이번 위기에서 다시 전략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셰일혁명 이후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걸프 지역 공급망이 흔들릴 때 미국산 원유는 아시아 정유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표적 비중동산 물량이다.

다만 모든 정유사가 곧바로 미국산으로 갈아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유 설비는 원유의 황 함량과 밀도, 생산 제품 구성에 따라 최적화돼 있다. 중동산 중질·중간질 원유에 맞춰진 설비가 미국산 경질유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기는 어렵다.

물류 시간도 변수다. 미국 걸프만에서 아시아로 원유를 보내려면 장거리 항해가 필요하다. 파나마 운하나 남아프리카 희망봉, 수에즈 운하 등 항로 선택에 따라 비용과 시간이 달라진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크더라도 미국산 가격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으면 구매 확대는 제한될 수 있다.

이번 협상에서 매수·매도 호가 차가 크다는 점은 이런 제약을 반영한다. 판매자는 중동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려 하고, 정유사는 운송비와 정제 적합성, 도착 시점을 감안해 낮은 가격을 원한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