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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미야시셰프 설계국, 초음속 폭격기 좌절…ICBM 만능주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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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미야시셰프 설계국, 초음속 폭격기 좌절…ICBM 만능주의 장벽

엔진출력 한계로 마하 1.8 무산, 임시기체 M-50A 아음속 굴욕
흐루쇼프 유인기 폐기 독트린…美 발키리 취소와 안보시차 일치
냉전기 소비에트 연방의 거대한 기술적 야망을 투영하고 있는 미야시셰프(Myasishchev) M-50A 바운더(Bounder). 동체 내부 연료 이동을 통한 정밀 제어 아키텍처와 주익 끝단 및 하부 파일런에 특이하게 분산 배치된 4발의 터보제트 엔진 파드, 그리고 거대한 삼각익 구조가 돋보인다. 이 초대형 항공우주 프로젝트는 당시 현재 가치 환산 시 수천억 원 이상의 막대한 국가적 개발비가 투입되었으나, 엔진 출력의 기술적 한계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심의 미사일 만능주의 패러다임 변화에 가로막혀 실전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포르사스 드 데페자이미지 확대보기
냉전기 소비에트 연방의 거대한 기술적 야망을 투영하고 있는 미야시셰프(Myasishchev) M-50A 바운더(Bounder). 동체 내부 연료 이동을 통한 정밀 제어 아키텍처와 주익 끝단 및 하부 파일런에 특이하게 분산 배치된 4발의 터보제트 엔진 파드, 그리고 거대한 삼각익 구조가 돋보인다. 이 초대형 항공우주 프로젝트는 당시 현재 가치 환산 시 수천억 원 이상의 막대한 국가적 개발비가 투입되었으나, 엔진 출력의 기술적 한계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심의 미사일 만능주의 패러다임 변화에 가로막혀 실전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포르사스 드 데페자

냉전기 미·소 양국의 군비 경쟁이 극에 달했던 1950년대 후반, 소련의 항공우주 기술력을 과시하며 등장했던 거대한 초음속 폭격기가 있었다. 미야시셰프(Myasishchev) 설계국이 야심 차게 개발했으나, 시대의 변화와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핵폭격기 M-50(나토 코드명 바운더)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7월 18일(현지 시각) 포르투갈 국방 전문 매체 포르사스 드 데페자(Redação Forças de Defesa)의 냉전 항공사 심층 보도에 따르면, M-50은 당시 서방의 촘촘한 방공망을 초고속으로 돌파하여 장거리 핵 타격을 감행할 수 있는 고속 전략 폭격기로 기획되었으나, 결국 군사 패러다임 변화와 독특한 설계적 딜레마로 인해 냉전기 자본 경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엔진 개발 지연과 초음속 비행의 좌절


지난 1955년 블라디미르 미야시셰프(Vladimir Myasishchev)가 이끄는 OKB-23(제23설계국)은 미국의 컨베어 B-58 허슬러에 대응하기 위해 최고 속도 마하 1.8(시속 약 1950km), 항속거리 1만 3000km, 무장 탑재량 5000kg에 달하는 초대형 초음속 폭격기 개발에 착수했다. 동체 길이 57.48m, 최대 이륙중량은 145톤에 달하는 거구였다. 외형상으로는 마치 미그-21(MiG-21) 전투기를 거대하게 확대해 놓은 듯한 날렵한 삼각익(Delta wing)과 미래지향적인 포토제닉 설계를 자랑했다. 기수 전면에는 고고도 작전을 위해 가압복을 착용한 조종사 2명이 앞뒤로 나란히 탑승하는 종렬(Tandem) 형태의 독특한 조종석 아키텍처를 구축했다.
그러나 핵심 동력계통인 엔진이 발목을 잡았다. 당초 계획된 애프터버너(후기연소기) 장착 주베츠(Zubets) RD-16-17 터보제트 엔진의 개발이 심각하게 지연되면서, 지난 1958년 출고된 프로토타입에는 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애프터버너 미장착 도브리닌(Dobrynin) VD-7BA 엔진이 임시로 탑재되었다. 이 임시 기체는 M-50A로 명명되었으나 고질적인 출력 부족에 시달렸다. 얇은 주익의 한계로 인해 모든 연료를 동체 내부에만 수납하여 비행 중 실시간으로 전후방 탱크의 무게중심을 제어해야 하는 까다로운 연료 제어 유연성을 요구받았고, 활주 시 동체 중심축을 기준으로 앞뒤 바퀴가 일렬로 배치된 자전거(Bicycle) 형태의 메인 랜딩 기어와 주익 끝단 보조 바퀴 구조를 채택해 이륙 시 기수를 유압으로 강제로 들어 올려야 하는 기하학적 맹점까지 안고 있었다. 이 탓에 M-50A는 시험 비행에서 지속적인 초음속 순항 비행에 완전히 실패했으며 완만한 강하 비행 시에도 마하 0.99의 아음속 영역에 머무는 구조적 굴욕을 겪었다. 여기에 지난 1960년 5월 12일에는 지상 엔진 테스트 중 고임목을 이탈해 대기 중이던 자사 3ME 폭격기 시제기를 들이받아 완파시키는 대형 지상 충돌 사고까지 겹치는 악재를 겪었다.

미사일 만능주의의 도래와 거인의 퇴장


그럼에도 M-50A는 냉전기 심리전과 선전 무대에서 강력한 주연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1961년 7월 9일, M-50A는 투시노(Tushino) 에어쇼에 깜짝 등장해 두 대의 MiG-21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위력 비행을 펼쳤다. 서방 정보기관은 이 거대한 폭격기의 압도적인 실루엣과 엄청난 소음에 경악하며 바운더(Bounder)라는 코드명을 부여하고 긴장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M-50A의 통산 19번째 비행이자 역사적인 마지막 비행이었다. 엔진 문제를 대대적으로 개선하고 조종석을 가로배치형 3인승 구조로 개량하여 주익 하부에 순순함미사일 탑재 기능을 추가하려던 차세대 M-52 프로젝트 역시 기체가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음에도 단 한 번도 하늘을 날지 못한 채 정치적 기류에 밀려 전격 폐기되었고, 1970년대에 흔적도 없이 해체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M-50 프로그램의 결정적인 종말은 1960년대 초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가 주도한 군사 독트린의 대전환 때문이었다. 당시 소련 지도부는 건조 및 유지·보수·정비(MRO)에 천문학적인 방산 자본이 소모되는 유인 전략 폭격기보다, 우주 공학 기술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핵심 핵 억제력으로 삼는 미사일 만능주의를 국가 안보의 축으로 선언했다. 이러한 현상은 서방 진영에서 미국의 노스아메리칸 XB-70 발키리(Valkyrie) 스텔스 폭격기 프로젝트가 고고도 방공 미사일의 발전과 ICBM의 경제성에 밀려 전격 취소된 것과 완벽히 일치하는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결국 유일하게 살아남은 M-50A 프로토타입 기체는 지난 1968년 모니노의 중앙 공군 박물관으로 이송되어 냉전 과도기의 상징물로 남게 되었다. 비록 실전 배치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완벽한 초음속 시대로 도약하려던 소비에트 해군 공학의 위대한 실패작이자 안보 패러다임의 황혼을 장식한 거대한 메시지로 기록되고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