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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MS 빌게이츠(Bill Gates) 테라 파워 "SMR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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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MS 빌게이츠(Bill Gates) 테라 파워 "SMR 전도사"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사진=로이터
[김대호의 인물 오디세이] 빌 게이츠, 독점의 제왕에서 ‘원자력 구도자’로: 영광·스캔들·차세대 에너지의 궤적

<서울에 나타난 ‘기후 전도사’>

빌게이츠가 또 서울에 나타났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제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이자 한때 자본주의의 최정점에 군림했던 빌 게이츠(Bill Gates)가 한국 땅을 밟을 때마다 여론의 시선은 복합적인 궤적으로 갈린다. 과거에는 윈도우(Windows) 운영체제로 전 세계 PC를 쥐락펴락하던 ‘테크 황제’의 방문이었고, 그 후에는 지구촌 보건과 빈곤 퇴치에 천문학적 사재를 쏟아붓는 ‘세계 최대의 자선사업가’로서의 행보였다. 최근 몇 년간 그가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국회, 그리고 대기업 총수들을 연쇄적으로 만나는 진짜 이유는 명확한 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바로 그가 2006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차세대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개발사 즉 테라파워(TerraPower)의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적 동맹 구축이다.

게이츠는 저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화석연료 기반의 문명이 초래할 종말적 위기를 경고하며, 탄소 배출 없는 안정적 기저부하(Base load) 전력원으로서 원자력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왔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지닌 간헐성(Intermittency)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2050년 넷제로(Net-Zero)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공학적 진단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인가. 테라파워가 설계하는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SFR)와 용융염원자로(MSR)는 서류상의 설계를 넘어 실제 건설과 상용화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야 한다. 미국은 원전 원천 기술과 기초 물리 연구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십 년간 신규 대형 원전 건설이 정체되면서 원전 기자재 제조, 정밀 시공, 공급망 엔지니어링 역량이 크게 쇠퇴했다. 반면 한국은 바라카 원전 수출과 꾸준한 국내 원전 건설을 통해 주기기 제작(두산에너빌리티 등)과 EPC(설계·조달·시공), 공급망 관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다.
게이츠의 방한은 단순한 환경운동가나 자선가의 순방이 아니다. 테라파워의 청사진을 실제 발전소로 구현하기 위해 한국의 정밀 제조업 역량을 끌어들이고, SK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의 지분 투자 및 공동 기술 개발 협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글로벌 벤처 캐피털리스트’의 산업적 결단이었다.

<인터넷 닷컴버블 시대 제왕>

빌 게이츠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닷컴버블의 정점에서 그가 누렸던 영광과 그 이면의 칼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5년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이래, 게이츠는 컴퓨터 산업의 패러다임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완전히 전환시킨 주인공이었다. 1995년 출시된 ‘Windows 95’는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대중화하며 전 세계 책상 위에 MS의 소프트웨어를 올려놓았고, 빌 게이츠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그는 기술적 통찰력뿐만 아니라 경쟁자를 압도하는 무자비한 사업 전략으로 악명이 높았다. 시장을 선점한 뒤 자사 소프트웨어를 끼워 팔아 경쟁 소프트웨어 업체를 고사시키는 전략은 실리콘밸리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1990년대 후반 넷스케이프(Netscape)가 웹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자, 게이츠는 웹 브라우저가 향후 운영체제를 대체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MS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윈도우 운영체제에 강제로 결합(Bundling)하여 무료로 배포했고, 넷스케이프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이 승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1998년 미 법무부와 20개 주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전면적인 반독점 소송(United States v. Microsoft Corp.)을 제기했다. 법정 증언에서 오만하고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게이츠의 영상은 전 세계에 공개되며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1심 법원이 MS의 기업 분할 판결을 내리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몰렸으나, 항소심 화해를 통해 분할은 면했다. 반독점 사건은 게이츠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법적 공방 속에서 그는 2000년 CEO 자리를 스티브 발머에게 넘겼다. 이후 기술 독점자의 자리에서 물러나 사회적 공헌과 자선사업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
수십 년간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소아마비 퇴치, 말라리아 백신 보급, 아프리카 위생 개선 등에 수십조 원을 기부하며 성자(聖者)의 반열에 올랐던 게이츠의 명성은 2019년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수감 중 사망한 금융업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과의 연루설이 터져 나오면서 타격을 입었다. 게이츠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엡스타인과의 만남을 "거대한 실수"였다고 인정하며, 그의 인맥을 통해 노벨재단 및 글로벌 자산가들로부터 수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보건 펀드를 조성하려 했던 의도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성범죄 전력이 명확했던 인물과 수차례 만남을 지속했다는 사실 자체는 그가 공들여 쌓아온 도덕적 권위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겼다. 2021년 27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와의 이혼 과정에서, 멜린다가 게이츠와 엡스타인의 지속적인 관계에 대해 강한 불쾌감과 우려를 표명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게이츠는 사생활과 윤리성 측면에서 커다란 검증의 시험대에 올라야 했다.

<테라파워>

스캔들과 비판 속에서도 빌 게이츠가 결코 멈추지 않는 프로젝트가 바로 원자력 벤처 ‘테라파워’다. 그는 왜 컴퓨터 과학자로서의 삶을 넘어 핵공학(Nuclear Engineering)이라는 위험천만하고 막대한 자본이 소모되는 영역에 인생 후반기를 걷고 있을까? 기존 상용 대형 원전은 경수(Light Water)를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하는 경수로 방식이다. 높은 압력(150기압 이상)을 유지해야 하므로 거대한 격납용기와 복잡한 비상 냉각 시스템이 필수적이며, 건설 비용과 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테라파워의 핵심 모델인 나트륨(Natrium) 발전소는 액체 금속인 소듐(Sodium)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다.

액체 소듐은 끓는점이 약 883°C에 달해 고온에서도 1기압 수준의 대기압 상태로 운전할 수 있다. 고압 배관 파손으로 인한 냉각재 유출 및 폭발 위험이 구조적으로 낮다. 전력이 완전히 끊기더라도 자연 대류와 복사열 방출만으로 노심의 열을 식힐 수 있어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멜트다운 참사를 원천 차단한다. 열 저장 시스템(Thermal Energy Storage)도 뛰어나다. 용융염 탱크를 활용해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한 피크 시간대에 출력을 순간적으로 345MW에서 500MW까지 5시간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이는 전력망 유연성(Grid Flexibility) 확보에 결정적인 기술이다.

게이츠의 테라파워 구상은 인공지능(AI) 혁명과 맞물려 더욱 강력한 현실성을 얻고 있다. 거대언어모델(LLM)과 데이터센터의 확장은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24시간 중단 없는 청정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원전 업계와 직접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형국이다. 게이츠의 원자력 베팅은 기후변화 대응뿐만 아니라 그가 잉태한 디지털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셈이다.

빌 게이츠의 삶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극적인 자화상이다. 청년기의 그는 뛰어난 기술적 혜안과 서늘한 비즈니스 감각으로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집어삼킨 냉혹한 독점의 화신이었다. 장년기의 그는 축적된 막대한 부를 통해 인류의 질병과 빈곤을 해결하려는 박애주의적 사회공학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그는 미성년자 성범죄자 연루라는 도덕적 상처를 안은 채, 기후위기와 에너지 고갈이라는 인류 최후의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 ‘원자력 르네상스’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여 원전 제조 역량과의 연대를 타진하고, 와이오밍주의 폐쇄된 석탄화력발전소 부지에 차세대 원전을 착공하는 그의 행보는 단순한 노년의 이상주의가 아니다. 공학과 자본, 그리고 현실적 공급망을 결합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한 엔지니어의 일관된 집념의 연장선이다. 빌 게이츠라는 인물 오디세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가 남긴 독점의 상흔과 도덕적 논란은 역사의 냉정한 기록으로 남겠지만, 그가 던진 테라파워라는 거대한 주사위가 기후위기와 AI 시대의 에너지 갈증을 해결하는 해답이 될 수 있을지, 전 세계는 다시 한번 그의 다음 계산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