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국채 바이백'이라는 엄청난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40조 달러라는 미증유의 영역에 진입하고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연 5.3%를 돌파하며 19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자, 미국 재정의 총사령관인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이 장기 국채 바이백(Buyback·국채 조기 환매) 규모를 2배로 전격 확대한 것이다.
스콧 베센트는 1962년 8월 2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Conway)에서 태어났다.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던 부친이 심각한 사업 실패로 파산하면서 그의 유년기는 급격한 경제적 궁핍과 불안정에 휩싸였다. 9세의 어린 나이부터 여름마다 잡일을 도맡아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던 혹독한 환경은 그에게 뼈저린 생존 본능과 실물 경제의 냉정한 현실 감각을 각인시켰다. 어린 시절 겪은 가정의 파탄은 훗날 그가 거시경제 지표 이면에 도사린 자산 시장의 균열과 거품의 붕괴 조짐을 남들보다 한발 앞서 포착해내는 동물적인 트레이딩 직관의 원천이 되었다.
예일대(Yale University)에 진학해 정치학을 전공한 베센트는 당초 예일대 학보인 *예일 데일리 뉴스(Yale Daily News)*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며 탐사보도 기자를 지망했다. 편집장 선거에서 낙선하는 좌절을 겪은 후, 전설적인 원자재 투자자 짐 로저스(Jim Rogers) 밑에서 인턴십을 수행하며 금융계로 인생의 방향타를 틀었다. 베센트는 훗날 "수많은 팩트를 취재하고 조합해 하나의 기사 앵글을 도출하는 저널리즘과, 방대한 글로벌 매크로 데이터를 교차 검증해 승부처에 베팅하는 트레이딩은 본질적으로 같은 작업"이라고 회고했다. 대학 졸업 후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BBH)과 사우디계 글로벌 투자회사인 올라얀 그룹(Olayan Group), 숏셀링 전문 헤지펀드인 카이니코스 어소시에이츠(Kynikos Associates)를 차례로 거치며 글로벌 외환, 채권, 공매도 전략의 정수를 익혔다.
드라켄밀러는 베센트의 데이터와 통찰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조지 소로스를 설득했고, 파운드화 폭락에 100억 달러 규모의 공격적인 레버리지 숏(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다. 결국 영란은행은 천문학적인 외환보유액을 탕진한 끝에 백기 투항하며 ERM 탈퇴를 선언했고, 소로스 펀드는 단 하루 만에 1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차익을 거두었다. 이른바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 작전의 실질적인 정보 분석과 전략적 뼈대를 구축한 핵심 브레인이 바로 스콧 베센트였다. 이후 2011년 SFM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 복귀한 베센트는 아베 신조 내각의 무제한 돈 풀기 정책을 간파하고 엔화 숏 및 일본 주식 롱(매수) 포지션을 취해 12억 달러 이상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 2015년에는 소로스로부터 20억 달러의 시드머니를 유치하며 독립 헤지펀드인 '키스퀘어 그룹(Key Square Group)'을 설립, 월가 정상급 매크로 전략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미국 경제의 양대 축인 재정 정책(재무부)과 통화 정책(연준)의 수장 자리에 스콧 베센트와 케빈 워시(Kevin Warsh)가 나란히 포진하면서, 두 사람의 공통 멘토인 드라켄밀러를 중심으로 한 '삼각 네트워크'가 월가의 최대 핵심 권력으로 부상했다. 케빈 워시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연준 최연소 이사로 금융위기 수습을 지휘한 뒤, 드라켄밀러의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Duquesne Family Office) 파트너로 합류해 10년 이상 한솥밥을 먹으며 하루에도 10여 차례씩 통화할 정도로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을 낙점하는 과정에서도 드라켄밀러의 강력한 추천과 막후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로써 미국 재정과 통화 정책의 정점에 드라켄밀러의 30년 수제자(베센트)와 15년 동업자(워시)가 나란히 서게 되었다. 이들이 공유하는 경제관인 '드러케노믹스(Druckenomics)'의 핵심은 방만한 재정적자 규율, 인플레이션의 철저한 억제, 중앙은행의 자의적인 시장 개입 반대와 엄격한 시장 규율 중시로 요약된다. 재무부와 연준이 한 스승의 철학 아래 전례 없는 유기적 정책 공조를 펼칠 수 있는 구조적 토대가 완성된 것이다.
스콧 베센트는 전통적인 관료나 관념적인 학자 출신 정책 입안자가 아니다. 실전 시장에서 단련된 그는 2024년 대선 국면에서 플로리다 팜비치 등지에서 단일 행사 5,000만 달러 이상의 대규모 선거 자금을 유치하며 도널드 트럼프의 핵심 자금줄이자 수석 경제 참모로 자리 잡았다. 베센트는 트럼프의 과격한 관세 드라이브를 단순한 보호무역이 아니라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교정하고 전략적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레버리지'로 월가에 시장 친화적으로 설득하는 이론적 방어막을 제공했다. 아울러 ① GDP 대비 재정적자를 3% 이내로 감축하고, ② 연간 실질 경제성장률 3%를 달성하며, ③ 일일 원유 생산량 300만 배럴 증대를 통해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3-3-3 정책'을 직접 설계하여 트럼프 2기 경제 정책의 청사진을 완성했다. 이러한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그는 제79대 미국 재무장관으로 상원 인준을 통과했다.
미국 재무부(U.S. Department of the Treasury)는 10년, 20년, 30년 만기 장기 국채를 유통시장에서 사들이는 조기 환매(Buyback) 규모를 기존 회당 20억 달러에서 40억 달러 이상으로 2배 확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베센트 장관이 이 같은 시장 개입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세 가지 긴박한 구조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연 5.3%를 돌파하며 2007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돌파한 상황에서 장기 금리의 추가 폭등은 미국 정부의 연간 순이자 지급액을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치로 밀어붙인다. 베센트는 장기물 공급을 직접 줄여 채권 가격을 끌어올리고 금리 급등을 강제로 진정시키고자 했다. 둘째, 빅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AI 회사채 발행과의 수급 충돌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확충을 위해 수천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쏟아내면서 민간 채권 자금이 회사채로 쏠렸고, 이에 따라 미 국채 장기물의 수급 공백이 극심해졌다. 재무부의 바이백은 시장의 막힌 유동성을 뚫어주는 긴급 수혈 조치다. 셋째,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QE)를 우회하는 재무부판 기동전이다.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로 연준이 양적완화를 즉각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베센트는 재무부가 보유한 현금과 단기 국채(T-bill) 발행을 활용해 장기 국채를 흡수하는 정교한 부채 만기 구조 조절(Operation Twist 성격의 기법)을 단행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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