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유럽 가전 텃밭 흔들렸다"… 中 가전, 유럽 세탁기·냉장고 점유율 '20% 돌파'

글로벌이코노믹

"유럽 가전 텃밭 흔들렸다"… 中 가전, 유럽 세탁기·냉장고 점유율 '20% 돌파'

현지 브랜드 M&A·수직 통합 앞세워 10년 만에 점유율 7~10배 폭증… 가격 넘어 AI 스마트홈으로 진화
하이얼, 향후 5년간 R&D에 130억 유로 투입… 로보락은 '수영장 청소 로봇' 첫선
징둥닷컴의 메디아마르크트 인수 추진에 EU '반보조금 조사' 착수… 유통망 장악 차단 규제 가동
베를린 IFA 2026에서 AI 기반 스마트 가전을 대거 공개하며 유럽 시장 점유율 20%를 돌파한 중국 하이얼. 사진=하이얼이미지 확대보기
베를린 IFA 2026에서 AI 기반 스마트 가전을 대거 공개하며 유럽 시장 점유율 20%를 돌파한 중국 하이얼. 사진=하이얼

유럽의 전통 가전 종주국들을 호령하던 독일 보쉬(BSH)와 스웨덴 일렉트로룩스의 아성에 균열이 생겼다. 중국의 거대 가전기업 하이얼(Haier)과 하이센스(Hisense)가 현지 유력 브랜드 인수합병(M&A)과 강력한 공급망 수직 통합을 무기 삼아 유럽 세탁기와 냉장고 시장 점유율 20%를 단숨에 돌파하며 유럽 가전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과거 단순 저가형 백색가전에 머물던 중국 기업들은 인공지능(AI) 기반 고효율 스마트홈 생태계로 체질을 완벽히 전환했으며, 제조를 넘어 유럽 최대 전자제품 유통 체인까지 집어삼키려 하자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이 역외보조금 규제를 앞세워 본격적인 제동에 나섰다.

9월 5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 보도에 따르면, 유럽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IFA 2026’ 공식 개막을 앞두고 목요일 독일 베를린에서 미디어 행사를 개최한 하이얼 유럽은 현지 소비자를 겨냥한 차세대 AI 가전 솔루션을 전격 공개했다.

닐 턴스톨(Neil Tunstall) 하이얼 유럽 최고경영자(CEO)는 행사에서 "하이얼은 유럽 소비자들이 스마트홈을 구축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하는 '퍼스트 초이스'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하이얼은 식기 오염도를 실시간 감지해 세척 알고리즘을 최적화함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최대 70% 절감하는 AI 식기세척기와 내부 식자재를 모바일 앱으로 실시간 추적·관리하는 차세대 스마트 냉장고를 선보였다.

아울러 유럽 내 스마트홈 기술 리더십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에 총 130억 유로(약 23조 7,400억 원)를 쏟아붓겠다는 대규모 투자 로드맵도 전격 발표했다.

M&A로 브랜드 흡수… 10년 만에 점유율 2.9%에서 20.5%로 수직 상승


중국 가전 공룡들의 성공 방정식 뒤에는 철저한 현지화 인수합병(M&A)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하이얼은 지난 2019년 이탈리아의 전통 가전 제조사인 캔디(Candy)를 4억 7,500만 유로에 인수하며 유럽의 국민 청소기 브랜드인 '후버(Hoover)'와 현지 생산 거점을 통째로 흡수했다.
하이센스 역시 2018년 슬로베니아의 백색가전 강자 고렌예(Gorenje)를 집어삼켰고, 메이디(Midea) 그룹은 2025년 독일 프리미엄 주방 설비 기업 테카(Teka) 그룹을 인수해 빌트인 가전 경쟁력을 보강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의 분석 데이터는 중국 가전의 경이적인 팽창 속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이얼과 하이센스의 유럽 세탁기 합산 점유율은 2016년 2.9%에서 2025년 20.5%로 7배 폭증했으며, 유럽 냉장고 시장 점유율은 같은 기간 5.6%에서 18.7%로 3배 이상 수직 상승했다.

베로니카 칸두소바(Veronika Kandusova) 유로모니터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유럽의 엄격한 에너지 효율 규제와 스마트홈 수요에 누구보다 기민하게 대응하며 현지 거점을 파고들었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현지 브랜드 파워에 안주하던 독일 BSH 하우스게라테(보쉬·지멘스 가전)와 일렉트로룩스는 가격 경쟁력과 최신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겸비한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밀려 뚜렷한 차별화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

'수영장 청소 로봇'·'계단 타는 청소기'… 혁신에서도 韓·유럽 위협


중국의 질주는 전통 백색가전에 그치지 않는다. IFA 2026 현장에서는 첨단 로보틱스 스타트업들의 기술적 진화가 두드러졌다.

글로벌 로봇청소기 1위 기업인 로보락(Roborock)은 수영장 바닥과 벽면의 찌든 때를 완전 자율로 제거하는 특수 수중 청소 로봇을 공개했다. 단독주택 수영장 보유율이 높은 북미와 유럽 부유층 시장을 정조준해 2027년 상반기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또한, 로보락은 바퀴 대신 특수 다리 구조를 탑재해 스스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복층 주택을 청소하는 혁신 로봇청소기를 선보여 현지 바이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기존 제품의 미세한 기능 개선에 머물던 유럽 가전사들과 달리, 폼팩터 자체를 파괴하는 발칙한 아이디어로 프리미엄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겠다는 의도다.

징둥닷컴의 메디아마르크트 인수 추진… EU '역외보조금 규제' 칼 빼 들어


중국 자본의 확장은 연구·제조를 넘어 이제 유럽 최대의 오프라인 유통망 통제권 확보로 향하고 있다.

중국 2대 전자상거래 공룡인 징둥닷컴(JD.com)은 2025년 7월 유럽 최대 가전 양판점 체인인 ‘메디아마르크트(MediaMarkt)’와 ‘새턴(Saturn)’을 운영하는 독일 세코노미(Ceconomy)를 기업가치 22억 유로(약 3조 4,470억 원)에 인수하겠다는 메가톤급 제안을 발표했다.

징둥의 옴니채널 물류 노하우를 접목해 유럽 가전의 제조-물류-유통 전 과정을 하나로 잇는 거대한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 제국을 완성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유럽 당국의 경계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지난 5월 징둥닷컴이 중국 정부의 불법 보조금과 특혜 금융을 지원받아 유럽 내 공정 경쟁을 왜곡했는지 여부를 가리는 '역외보조금 규정(FSR)' 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이에 대해 중국 상무부는 "중국 기업의 정당한 상업 활동에 대한 부적절한 치외법권적 관할권 남용"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IFA 2026 전시장 중심부는 가장 거대한 부스를 차린 하이얼, TCL, 하이센스 등 중국 기업들이 완벽히 장악했다.

일본 가전사들의 존재감은 사실상 소멸 직전으로 내몰렸으며, 한국의 삼성전자가 메인 홀을 떠나 도심 별도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등 글로벌 가전 패권의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급격히 이동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중국 가전사들의 유럽 시장 대공습은, 향후 ‘자국 공급망 수직 통합과 현지 브랜드 M&A를 결합해 서유럽 프리미엄 가전 시장의 과점 구도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변곡점’인 동시에 ‘유럽연합의 반보조금 통상 장벽과 정면 충돌하며 미·중에 이은 또 다른 글로벌 경제 안보 분쟁의 최전선’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