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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제인 로더 (Lauder)... 연준FOMC "케빈워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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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제인 로더 (Lauder)... 연준FOMC "케빈워시 배우자"

제인 로더 케빈 워시 연준 의장 배우자/ 사진=제인 로더 이미지 확대보기
제인 로더 케빈 워시 연준 의장 배우자/ 사진=제인 로더
[김대호 인물 오디세이] ‘뷰티 제국’의 황태녀 제인 로더와 연준의 지휘자 케빈 워시

세계 금융 대통령과 뷰티 제국이 빚어낸 거대한 권력의 축도

뉴욕증시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흔히 ‘세계의 금융 대통령’이라 부른다. 기축통화 달러의 총본산이자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최종 수장이 지닌 파급력이 전 세계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돈줄을 사실상 좌우하기 때문이다.지금 이 중차대한 자리에 앉아 글로벌 유동성의 키를 쥐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이다.

워시 의장이 세계 금융의 사령탑에 오른 배경을 들여다보면, 그 뒤편에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 인물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그의 배우자인 제인 로더(Jane Lauder)다. 케빈 워시를 연준 의장으로 전격 발탁해 지명한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워시 의장을 잇는 가교의 정점에는 제인 로더의 부친이자 워시의 장인인 로널드 로더(Ronald Lauder)가 존재한다.
미국 최대의 럭셔리 뷰티 제국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Companies)’를 이끄는 로널드 로더는 세계유대인회의(WJC) 회장을 역임한 글로벌 유대계의 거물이자, 수십 년간 트럼프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온 공화당의 핵심 거액 후원자다. 월가와 정가 안팎에서 로더 가문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끈끈한 인연과 정치적 후원이 워시의 연준 의장 입성에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해석하는 이유다. 나아가 케빈 워시의 아내인 제인 로더는 에스티 로더 가문의 핵심 경영인이자 유력한 차기 승계자다.

향후 제인 로더가 그룹의 경영권을 완전히 틀어쥐게 된다면, 케빈 워시는 ‘세계 금융 대통령’인 동시에 ‘글로벌 뷰티 재벌 회장의 부군’이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최근 워싱턴 정가와 월스트리트의 시선은 한층 미묘하고 위태로운 국면으로 쏠리고 있다. 저금리와 공격적인 통화 완화를 압박하는 백악관과, 인플레이션 재발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케빈 워시 체제의 FOMC가 기준금리 향방과 대차대조표 축소(QT) 문제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최고 권력자와 연준의 수장, 그리고 그 사이에 얽힌 부인 제인 로더와 에스티 로더라는 거대 재벌, 나아가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였던 장인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통화 주권을 둘러싼 트럼프와 워시의 충돌이 단순한 정책 갈등을 넘어 ‘권력과 자본, 패밀리 네트워크가 빚어낸 세기의 드라마’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다.

제인 로더, 가문의 후광을 넘어선 전문 경영인의 궤적

제인 로더(Jane Lauder Warsh)는 1973년 뉴욕의 유서 깊은 유대계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세계 뷰티 산업의 전설적인 창업주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여사이며, 아버지는 전 주오스트리아 미국 대사이자 세계유대인회의 회장인 로널드 로더다. 뉴욕 맨해튼의 최고 명문 사립학교인 채핀 스쿨(Chapin School)을 졸업한 제인 로더는 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 진학해 과학기술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1995년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재벌가 자제들이 흔히 월가의 사모펀드나 투자은행에서 안락한 경력을 쌓거나 사교계 명사로 머무는 것과 달리, 그녀는 1996년 에스티 로더 본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였다. 가업의 밑바닥부터 밟아가겠다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였다.
현장 실무에 뛰어든 제인 로더는 제품 개발, 패키징, 마케팅, 글로벌 유통 라인 등을 두루 거쳤다. 그녀의 경영 역량이 본격적으로 입증된 첫 무대는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오리진스(Origins)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오리진스의 마케팅 전략을 진두지휘한 그녀는 2010년 오리진스의 글로벌 사장으로 승진한 뒤, 달팡(Darphin)과 오존(Ojon) 등 가문의 주요 스킨케어 브랜드를 총괄 관리하는 그룹 총괄사장(Global Brand President) 자리에 올랐다.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분기점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가문의 핵심 캐시카우 브랜드인 크리니크(Clinique)의 글로벌 브랜드 총괄 대표를 역임한 시기였다. 당시 크리니크는 백화점 매장 중심의 전통 유통망에 안주하며 브랜드 노후화라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제인 로더는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선언하고 이커머스와 옴니채널 마케팅,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 협업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였다. 그녀의 리더십 아래 크리니크는 밀레니얼과 Z세대 고객을 대거 흡수하며 글로벌 연매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초우량 브랜드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이후 제인 로더는 그룹 전체의 최고 마케팅 및 엔터프라이즈 데이터 책임자(Executive Vice President, Enterprise Marketing and Chief Data Officer)를 맡아 에스티 로더 전 브랜드의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2024년 말 집행임원 직함에서 물러나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나, 2009년부터 줄곧 지켜온 지주회사 이사회(Board of Directors) 이사직은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가문의 실질적 대주주이자 핵심 전략가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에스티 로더는 어떤 회사인가, ‘부엌 냄비’에서 피어난 뷰티 제국


제인 로더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간이자 케빈 워시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에스티 로더 컴퍼니스는 과연 어떤 기업인가. 오늘날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에스티 로더는 1946년, 한 유대인 여성의 집요한 집념과 뛰어난 세일즈 본능에서 출발하였다. 헝가리·체코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조세핀 에스더 멘처(에스티 로더)는 피부과 의사였던 외삼촌으로부터 스킨케어 크림 배합법을 전수받았다. 그녀는 남편 조셉 로더와 함께 뉴욕의 좁은 아파트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서 냄비로 직접 크림을 끓여 병에 담아 팔며 사업의 닻을 올렸다.

에스티 로더 여사는 현대 글로벌 뷰티 마케팅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꾼 두 가지 혁신을 창안하였다.첫째는 ‘무료 샘플 증정(Gift with Purchase)’ 기법이다. 본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정교한 미니어처 화장품 샘플 세트를 증정하는 방식은 당시 유통가에 일대 충격을 주었으며, 전 세계 화장품 업계의 표준 공식으로 정착하였다.둘째는 고객의 피부를 직접 어루만지며 문제를 진단하는 ‘터치 세일즈(Touch Sales)’였다.

1947년 뉴욕 최고급 백화점인 삭스 피프스 애비뉴(Saks Fifth Avenue)에 전격 입점한 에스티 로더는 고급 백화점 전용 명품 화장품이라는 독보적 위상을 구축하였다.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에스티 로더는 자체 브랜드 론칭과 공격적인 글로벌 M&A를 병행하며 거대한 왕국을 완성하였다.

에스티 로더는 프랑스의 로레알(L'Oréal)과 함께 전 세계 럭셔리 뷰티 시장을 양분하는 양대 산맥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지배구조는 일반적인 상장 기업과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1995년 뉴욕증권거래소(NYSE: EL)에 상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더 가문은 ‘차등의결권(Dual-class Shares)’ 제도를 완벽하게 고수하고 있다.일반 투자자가 거래하는 Class A 보통주는 1주당 1표를 갖지만, 로더 가문이 쥐고 있는 Class B 보통주는 1주당 무려 10표의 의결권을 갖는다. 외부 자본이 아무리 지분을 사들여도 가문 전체가 이사회 의결권의 과반 이상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철옹성이다.

제인 로더는 이 패밀리 지배구조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서 있다.제3장: 수조 원대 자산의 상속녀, 로더 가문의 위상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의 집계에 따르면, 제인 로더의 개인 순자산은 주가 변동에 따라 통상 20억 달러에서 40억 달러(한화 약 2조 8,000억 원~5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억만장자다.그녀의 언니인 에린 로더(Aerin Lauder) 역시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 있으며, 사촌인 윌리엄 로더(전 에스티 로더 회장)와 삼촌 레너드 로더(Leonard Lauder) 명예회장에 이르기까지 로더 가문의 총자산은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제인 로더는 단순한 배당 수령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스의 지주회사 의결권을 행사하는 패밀리 트러스트의 핵심 축이며, 회사 운영 전반에 걸쳐 발언권을 행사하는 오너 일가의 핵심이다.더욱이 그녀의 부친 로널드 로더는 문화 예술계와 보수 정계의 막후 거물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주요 후원자이자 오스트리아·독일 예술품 전용 미술관인 노이에 갈러리(Neue Galerie)를 설립한 그는 뉴욕 사교계의 정점에 군림해 왔다. 동시에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과의 두터운 네트워크를 자랑하며,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각별한 교분을 유지해 온 최측근 후원자다.제인 로더는 바로 이러한 부와 권력의 황금 동아줄을 한 손에 쥐고 태어난 상속녀다.제4장: 스탠퍼드에서 맨해튼 시나고그까지, 케빈 워시와의 결혼 풀스토리그렇다면 화려한 뷰티 제국의 황태녀 제인 로더와 연준의 지휘자 케빈 워시는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을까.

스탠퍼드 캠퍼스에서의 운명적 조우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대 초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의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 뉴욕주 올버니에서 태어난 케빈 워시는 스탠퍼드에서 공공정책학(Public Policy)을 전공하며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웅변술로 두각을 나타내던 학구파 엘리트였다. 비슷한 시기 스탠퍼드에서 수학하던 제인 로더는 캠퍼스 모임에서 케빈 워시를 처음 만났다. 최상류층 출신이었지만 요란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던 제인 로더는 케빈 워시의 탁월한 거시적 안목과 신중하고 지적인 매력에 깊이 끌렸다.

케빈 워시 역시 가문의 막대한 부에 안주하지 않고 독립적인 직업적 성취를 추구하는 제인 로더의 진정성에 매료되었다. 두 사람은 캠퍼스에서 오랜 시간 지적 교감을 나누며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다.2. 각자의 무대에서 이룬 눈부신 도약대학 졸업 후 두 사람은 각자의 무대에서 최정상급 커리어를 개척하였다.제인 로더는 뉴욕으로 건너와 에스티 로더 본사에서 가업의 실무를 배우며 차근차근 경영자 수업을 받았다.케빈 워시는 하버드 로스쿨(Harvard Law School)에 진학해 법학박사(J.D.) 학위를 취득하였다.

로스쿨 졸업 후 곧바로 월스트리트의 심장인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투자은행 부서에 입사한 그는 M&A 부문 부사장(Vice President)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하였다. 대형 기업결합과 복잡한 자본시장 딜을 성사시키며 유동성과 금융 시장의 생리를 완벽하게 체득하였다.월가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발판으로 케빈 워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경제정책특별보좌관 겸 금융시장 담당관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통령에게 금융시장 현안을 직보하는 경제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세기의 결혼


2002년 맨해튼 센트럴 시나고그 결혼식서로의 커리어가 최정점을 향해 치닫던 2002년 7월, 두 사람은 뉴욕 맨해튼 55번가에 위치한 유서 깊은 유대교 회당인 센트럴 시나고그(Central Synagogue)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이 결혼식은 단순한 남녀의 결합을 넘어섰다. 뉴욕 파크 애비뉴의 막강한 전통 자본(로더 가문)과 월스트리트의 금융 네트워크, 그리고 워싱턴 백악관의 행정 권력이 한자리에서 맞물린 현대 미국 최상류층의 완벽한 삼각 결합이었다. 결혼 후 4년 뒤인 2006년, 케빈 워시는 만 35세라는 역사상 최연소 나이로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에 임명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그는 벤 버냉키 의장 곁에서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과 연준 사이의 물밑 조율을 총괄 지휘하며 명성을 떨쳤다.이처럼 케빈 워시가 단숨에 미국 금융의 정점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아내 제인 로더가 제공한 견고한 가문적 후광과 자본 네트워크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제롬 파월의 뒤를 이어 연준의 지휘봉을 잡은 케빈 워시 체제의 FOMC는 현재 글로벌 경제의 가장 뜨거운 뇌관이다. 그리고 그 뇌관의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극적인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을 당시, 백악관은 그가 대통령의 통화 완화 요구에 순응할 것이라 기대했다. 로널드 로더라는 강력한 후원자의 사위이자, 공급망 개혁을 통한 저금리 환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준 의장실에 들어선 케빈 워시는 트럼프의 금리인하 요구를 아직 따르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보편 관세 정책과 확장적 재정 지출은 미국의 근원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자극하고 있다.백악관은 경기 부양과 국가 채무 이자 부담 경감을 위해 FOMC가 기준금리를 대폭 낮춰줄 것을 연일 거칠게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케빈 워시가 이끄는 FOMC는 물가 안정이 담보되지 않는 금리 인하는 절대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를 뚫고 올라설 조짐을 보일 경우, 연준은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다시 인상하는 초강수 카드까지 배제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케빈 워시는 금리 정책보다 더 무서운 무기로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QT)’ 가속화를 꺼내 들고 있다. 연준이 보유한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시장에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강제로 흡수하는 양적 긴축을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채권 금리를 밀어 올리고 시중 자금을 경색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원하는 백악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장인-사위-대통령으로 얽힌 세기의 방정식

이러한 통화 정책 갈등은 개인적 역학 관계와 맞물려 더욱 기묘한 드라마를 연출한다.연준 의장직을 준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다.그 대통령을 수십 년간 거액으로 후원해 온 인물은 에스티 로더의 실권자이자 케빈 워시의 장인인 로널드 로더다. 그리고 워시 의장의 평생 반려자는 에스티 로더 제국의 차기 오너로 꼽히는 제인 로더다.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오랜 후원자의 사위를 앉혀 통화 정책을 통제하려 했으나, 케빈 워시가 연준의 독립성과 물가 안정을 내세워 백악관의 요구를 거부하자 정치적 당혹감에 휩싸여 있다.

장인인 로널드 로더와 아내 제인 로더 역시 백악관과 연준이라는 최고 권력 기구 사이의 살얼음판 같은 긴장 관계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제인 로더는 부엌 냄비에서 시작해 럭셔리 뷰티 왕국으로 성장한 에스티 로더 가문의 자본과 전통을 지키는 황태녀로 서 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케빈 워시는 전 세계 돈줄을 쥐고 흔드는 ‘세계의 금융 대통령’이다. 지금의 미국 경제 거시 경제 지표는 금리인상을 가리키고 있다. 물가가 너무 높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논리 대로라면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케빈워시의 선택이 주목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