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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커플링의 종말, '삼분화'의 시대"… 美·EU·中, '법적 강제집행' 충돌에 세계 무역 대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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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커플링의 종말, '삼분화'의 시대"… 美·EU·中, '법적 강제집행' 충돌에 세계 무역 대재편

미국 '금융·수출통제' vs 유럽 '시장접근 규제' vs 중국 '외국 조사 협력 금지' 격돌
WTO 기능 마비 속 '치외법권적 집행력'이 새로운 권력… 넉텍·징둥닷컴 조사 둘러싼 공방 격화
다국적 기업 실사, '법적 분류(Triage)'로 전락… 韓·日·대만 등 핵심 공급망 병목 국가 영향력 시험대
2025년 11월 11일 베이징의 JD.com 분류 센터 직원들. EU는 JD.com 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나, 중국은 해당 회사와 관련 인사들에게 협력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25년 11월 11일 베이징의 JD.com 분류 센터 직원들. EU는 JD.com 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나, 중국은 해당 회사와 관련 인사들에게 협력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진=로이터

과거 냉전식 양자 대립을 뜻하던 '디커플링(탈동조화)'이나 '분기(Divergence)'라는 개념이 더 이상 파편화된 글로벌 무역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유럽연합(EU)·중국이라는 세 개의 거대한 주권 블록이 자국의 법률과 규제 집행력을 국경 너머로 투사하며 충돌하는 이른바 ‘삼분화(Trifurcation)’ 질서가 전면화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의 기능 마비로 국제 통상 분쟁의 다자간 중재 기능이 사실상 소멸하자, 각국 정부는 자국 법률의 치외법권적 적용과 '정보 접근 차단'을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은 한 국가의 조사에 응하면 다른 국가로부터 보복 제재를 받는 '법적 딜레마'에 갇히게 됐으며, 단순한 규정 준수(컴플라이언스)를 넘어 어느 국가의 처벌이 더 치명적인지 경중을 따지는 ‘법적 중환자 분류(Legal Triage)’가 기업 실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9월 16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에 게재된 지정학 전략가 세바스티안 콘틴 트릴로-피게로아(Sebastian Contin Trillo-Figueroa)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 글로벌 무역은 중첩되고 상충하는 3대 주권 체제 아래에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달러·시장·차단권의 3극 체제… 넉텍·징둥닷컴發 규제 격돌


분석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무역을 지배하는 세 극은 서로 다른 무기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화, 글로벌 금융 결제망, 그리고 미국산 기술이 1%라도 포함되면 제3국 제품까지 통제하는 강력한 재수출 규제(FDPR 등)를 무기로 삼는다.

EU는: 4억 5,000만 인구의 거대한 단일 시장 접근권을 무기로 '외국보조금규정(FSR)'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엄격한 규범을 글로벌 기업에 강제한다.

중국은 자국 법의 역외 적용을 추진하는 동시에, '외국 당국의 조사와 정보 요구에 대한 국내 협조를 원천 금지'하는 법률 차단벽으로 맞선다.
이러한 삼자 충돌은 공항 보안 스캐너 제조사인 중국 넉텍(Nuctech) 사태에서 본격화됐다.

2025년 12월 EU가 외국보조금규정에 따라 넉텍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자, 중국 정부는 2026년 5월 자국 기업이 '부적절한 역외 관할권'의 정보 요구에 협조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중국은 국무원령 제834호와 제835호를 통해 외국의 제재 및 조사 조치에 대한 협력을 원천 차단하는 법적 틀을 구축했으며, 제837호를 통해 국가 안보와 발전 이익을 명분으로 역외 투자 통제권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8월 19일에는 EU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징둥닷컴(JD.com) 조사에 대해 중국 기업과 개인의 일체 협력을 금지하는 명령이 두 번째로 발동됐다.

조사에 필요한 핵심 데이터 접근을 차단해 본안 심리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전략이다.

WTO 판사 공석이 낳은 진공… 韓·日 등 '병목 국가'의 독자 영역화


이러한 규제 충돌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은 근본 원인은 다자주의 분쟁 해결 기구의 붕괴에 있다.

2019년 12월 미국의 신임 판사 임명 거부로 WTO 상소기구의 정족수가 채워지지 못한 이래 글로벌 통상 판결의 심판 자리는 장기간 공석으로 방치됐다.

각국이 다자 규범 대신 자국 법률을 무기로 직접 강제집행에 나선 배경이다.

그러나 세계 질서가 이들 '빅3'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아래에는 독자적인 기술 요충지를 장악한 ‘2차 티어(Chokepoint Tier)’ 국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도쿄일렉트론, 니콘, 스크린홀딩스 등 반도체 핵심 장비망을 쥔 일본은 자국 수출 허가제를 통해 미·중 사이에서 강력한 레버리지를 행사한다.

올해 초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사태를 '존립위기사태'로 규정하자, 중국이 일본 20개 기업을 제재하고 20개 사를 감시 목록에 올리며 이중용도 품목 수출을 제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법률의 치외법권적 투사 능력은 부족하더라도, 핵심 기술 병목을 쥐고 있는 한국, 네덜란드(ASML), 대만(TSMC) 등은 언제든 강대국에 치명적인 고통을 안길 수 있는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다층적인 규제 격자를 형성하고 있다.

공급망 실사, '컴플라이언스'에서 '법적 중환자 분류(Triage)'로


세 주권자의 법률이 정면 충돌하면서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은 최악의 경영 리스크에 직면했다.

유럽 법률은 공급망 실사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지만, 중국 법률은 이를 국가 기밀 누설로 규정해 금지하고, 미국 법률은 또 다른 안보적 제한을 부과한다.

EU의 요구에 응하면 중국에서 형사 처벌을 받고, 중국 법을 지키면 유럽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구조다.

결국, 기업의 실사(Due Diligence)는 규범 준수가 아니라 "어느 정부의 처벌이 더 가혹한가", "어느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가", "누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으려 하는가"를 저울질해 위험 순위를 매기는 '법적 트리아지(Triage·중환자 치료 우선순위 분류)'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공급망을 이중·삼중으로 분리하고(Redundancy), IT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지역별로 쪼개며, 데이터베이스를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극단적인 운영 재설계에 내몰리고 있다.

'국경을 넘는 집행권'을 둘러싼 이번 3대 블록의 무역 재편은, 향후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규범이 완전히 해체되고 핵심광물·기술 병목·금융 인프라를 장악한 주권 국가들이 자국 법률을 제재의 무기로 휘두르는 신(新)중상주의 강제집행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세 극의 틈바구니에서 타협 없는 모순된 법률을 동시에 강요받는 글로벌 기업들이 막대한 분절 비용을 치르며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