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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 근로시간 단축에 '죽으라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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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 근로시간 단축에 '죽으라는 거냐?'

임금하락 방지책 등 선행돼야

[글로벌이코노믹=김종길기자] 최근 정부·여당이 내놓은 주당 근로시간 ‘52시간’ 축소안을 두고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초유의 불황에 청년층의 중소기업 및 3D업종 기피 현상으로 인력난마저 심한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이 줄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가야 한다”며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8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휴일근로(16시간)와 연장근로(주당 12시간), 법정 근로시간(주당 40시간) 등 주당 68시간인 현행 근로시간을 오는 2016년부터 52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를 통과시키기로 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기업들이 시간제 근로자를 추가 채용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대체휴일제에 이어 근로시간마저 단축된다면 기업의 경영 부담만 가중된다는 입장이다. 또 산업 현장의 생산성 저하, 인건비 부담 증가 등 고질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생각이다. 무엇보다 여권이 고용률이라는 구호에 집착하다 보니 얼치기 법안을 내놨다는 지적이 많다.
화성 소재 H염료의 김정일 부사장은 “초유의 불황으로 현행 임금 수준 유지도 어려운 상황에서 직원을 뽑고 싶어도 뽑을 수도 없는 기업들에게 다른 유인은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된다면 작은 기업들은 다 죽으라는 얘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기업인 A씨도 “지금 일하겠다는 사람이이 없어서 현재 인력을 잔업근무, 휴일 및 연장근무까지 동원해야 겨우 납기를 맞추는 상황”이라며 “기업 현실을 너무 모르는 공무원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탁상행정”이라고 성토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소기업들의 인력부족률은 3.4%, 약 25만5000명으로 전체 실업률(2.9%)보다 높았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인력난이 중소기업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문제는 사실상 개선 여지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처럼 안정적으로 생산인력을 운영하기는 어렵다. 특히 대기업 하청업체들의 경우 매달 주문량 내지 작업 요구량이 차이가 큰 상황에서 무작정 직원을 뽑을 수 없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생으로 순간순간 대처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에서 3년째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하정태씨(32세)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명분은 좋지만 열악해진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기업들이나 연장근로를 해서라도 소득을 더 가져가고 싶어하는 근로자들 모두에게 환경받기 힘든 정책”이라며 “정부가 중소기업들의 고충을 이해한다면 시행에 앞서 재정지원책과 관련 교육 및 컨설팅 등이 우선되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낮은 노동 생산성과 경직적인 노동 시장으로 인해 기업들이 경기 변동에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초과근로나 휴일근로가 이러한 경기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는데 이마저 총근로시간 제한으로 인해 활용할 수 없다면 기업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근로자들도 무작정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회사원 최정원씨는 “모든 샐러리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고 있는 때에 임금은 그대로인데 휴일만 늘어나는 것이 무작정 반가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직장인 이모씨는 “기업들이 법을 피해갈 다른 근무 형태를 개발할 것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일률적용하기도 어렵고 근로자 간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당장의 시행은 무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새 일자리 창출 내지 일자리 공유라는 개념에도 반론이 많다. 한국경총 이형준 본부장은 “시간제 일자리나 비정규직 혹은 다른 다른 정규직이 대체하면 되지 않냐고들 쉽게 말하지만 (정부가) 줄이겠다는 시간만큼의 일을 하는 근로자가 주 52시간 일하는 근로자와 생산성이나 작업 효율 면에서 보조를 맞추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기본급이 낮고 각종 수당, 특히 초과근무 수당을 통해 최종임금이 완성되는 임금 형태를 가진 나라에서 노동시간만 줄이면 삶의 질 향상과는 별도로 임금 하락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건 사회적 의미가 있지만 임금이 따라서 줄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개악이라는 것이다.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낮은 급여를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로 벌충해온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진보정의당도 자료를 내고 근로시간 단축의 전제로 “향후 5년간 최저임금을 매년 두 자리 수로 인상하고 정기상여금이나 각종 복리후생수당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