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전문기업 한화의 유일한 좌절 기업, 결국 품 안에
무리 없이 인수 성공시킨 김동관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 강화,
자산총액 100조원 육박, GS‧HD현대 제치고, 6위권 진입 도전
무리 없이 인수 성공시킨 김동관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 강화,
자산총액 100조원 육박, GS‧HD현대 제치고, 6위권 진입 도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23년 신년사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후 육성 방안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2008년 4월 17일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한 뒤 무려 15년이 걸렸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그해 11월 17일 한화와 산업은행이 인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직후 김승연 회장은 “한양화학과 대한생명 인수에 이어 제 인생의 가장 큰 승부수를 대우조선해양에 걸고 있다”고 밝힐 만큼 총력을 기울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장차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글로벌 사업 포트폴리오의 핵심축으로 삼기 위한 최적의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듯했던 대우조선해양은, 그러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의 여파로 떨어져 나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기업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며 오너 가운데 가장 뛰어난 M&A 전문 오너로 불리고 있는 김승연 회장으로서도 전 세계적인 위기를 극복하기란 어려웠다.
이후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재추진할 때마다 한화그룹은 꾸준히 후보 기업으로 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한화는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던 중 그룹 전체 사업구조 개편 작업을 추진하면서, 방산 부문을 키우기 위한 관련 기업의 추가 M&A 필요성이 대두했고, 때마침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고 했던 HD현대그룹이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불승인으로 좌초되면서 한화가 대상으로 다시 거론됐다. 결국 산은은 다시 한화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지난해 인수전에 김승연 회장은 나서지 않았다. 대신 전권을 쥐고 지휘한 주인공은 장남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다. 오너 3세 3형제 간 담당 분야가 정해지면서 김동관 부회장은 방산‧화학‧태양광을 맡아 그룹 전체와 미래를 담보할 핵심 사업을 맡았다.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은 금융,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전무)은 유통‧건설‧기계를 담당한다.
이에 따라 김동관 부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팀 최고책임자로서 전체 과정을 총괄 지휘했다. 이는 김승연 회장이 후계 총수로서의 역량을 테스트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의도에 맞게 김동관 부회장은 인수 전 과정을 큰 잡음 없이 매끄럽게 진행했다. 특히 노동조합의 강력한 견제를 예상했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현장 실사도 충돌 없이 원만히 진행했고,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심사도 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로써 부친의 숙원을 풀어낸, 한화 경영 대권을 물려받는 김동관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은 더욱 커졌다.
대우조선해양을 품에 안은 한화그룹은 재계 순위도 더욱 높아진다. 공정위가 25일 발표한 ‘2023년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2023년 기준 한화의 자산총액은 83조280억원으로 7위, 대우조선해양은 12조3420억원으로 38위다. 이를 단순 더하면 95조3700억원으로 100조원에 육박해 GS(81조8360억원, 7위)와 HD현대(80조6680억원, 8위) 등 턱밑까지 쫓아온 그룹을 압도한다. 2022년 기준 매출액(금융‧비금융 포함)은 한화가 71조6720억원, 대우조선해양 4조9890억원으로 합산하면 76조6610억원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2021년부터 LNG(액화천연가스)선을 중심으로 수주가 급증해 3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로 올해부터 매출이 늘어나고 영업이익 흑자전환도 가능하다. 이러면 한화그룹의 매출액은 80조원 돌파도 가능할 전망이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빅 사이클’ 초입에 진입한 조선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그룹 주력인 방산 분야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인 위기로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주요국의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통합 방산 생산능력과 글로벌 수출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해양 방산의 강자인 대우조선 인수로 기존의 우주·지상 방산에서 해양까지 아우르는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갖추고 유지보수(MRO)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
또 중동, 유럽, 아시아에서의 고객 네트워크를 공유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의 무기체계는 물론 대우조선의 주력 방산 제품인 3000톤(t)급 잠수함 및 전투함의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대우조선에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확보한 미래 방산기술을 민간 상선에 적용할 수도 있다. '함정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전투체계(CMS)를 대한민국 해군 함정에 사실상 100% 공급하고 있는 한화시스템의 해양첨단시스템 기술이 대우조선의 함정 양산 능력과 결합하면 자율 운항이 가능한 민간 상선 개발 역량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잠수함에 친환경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탑재한 한화디펜스의 기술을 향후 수요가 급증하는 친환경 선박에 적용할 수도 있다.
한화는 기후 위기와 에너지 안보에 대한 이슈로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이 빨라지는 시점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조선·해양 기술을 통해 ‘글로벌 그린 에너지 메이저’로 확고히 자리 잡을 계획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의 ‘브리지 기술’로 평가받으면서 최근 가격이 급등한 LNG 분야에서도 대우조선해양과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한화는 이미 LNG를 미국에서 수입해 통영에코파워가 발전하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대우조선의 LNG 해상 생산 기술(FLNG)과 운반(LNG운반선), 연안에서 재기화 설비(FSRU)까지 더해지면 향후 수요가 급증하는 LNG 시장에서 전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게 된다.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생산 및 발전사업과 한화임팩트의 수소 혼소 발전기술, ㈜한화의 에너지 저장수단으로서의 암모니아 사업 등을 대우조선해양의 에너지 운송사업과 연결하면 ‘생산-운송-발전’으로 이어지는 그룹사의 친환경 에너지 밸류체인도 새롭게 구축할 수 있다.
또 대우조선해양이 경쟁력을 갖춘 해상풍력설치선(WTIV)을 활용해 한화솔루션은 미국과 유럽에서, 한화건설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해상풍력 발전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특히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선박용 엔진 전문업체인 HSD엔진 인수도 눈앞에 두고 있다. HSD엔진을 인수하면 대우조선해양은 HD한국조선해양에 이어 선박의 핵심 기자재인 엔진을 자급할 수 있어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신사업 추진을 위한 핵심 계열사로 여기는 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투자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 확대로 이어져 HD한국조선해양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