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판 설비를 팔겠습니다.”
40대 후반의 인도 사내는 70대의 한국인이 머무는 호텔로 전화를 걸어 정중히 인사와 함께 후판 설비 매각 비즈니스를 마무리 지었다. 40대의 인도 청년은 멕시코 국영 철강기업이 후판 공장 건설과정에서 중단된 설비를 인수하여 이를 되팔고 있었다. 이때 구매자로 등장한 인물이 한국인 70대의 노신사였다.
40대의 인도 청년은 비싼 가격을 불렀다. 이 청년은 70대의 한국 철강기업 오너가 언제 귀국할 것이지 관련된 일정을 상세히 꿰뚫고 비즈니스를 압박했다. 70대의 한국인은 이 설비를 꼭 사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만큼 후판설비는 최상급이었고 한국에서는 후판공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서둘러 설비 구매를 결정해야 했다. 귀국할 비행기 시간도 임박했다.
인도 청년은 멀리 한국에서 멕시코까지 달려온 한국인 구매자에게 후판 설비 가격을 높게 불렀다. 그러나 70대의 한국인은 노련했다.
“철강 설비는 꼭 필요한 곳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진정한 철강인은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당장 가격을 올려 이윤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철강인의 자세가 아니다. 나는 이 후판 설비가 꼭 필요하지만 높은 가격으로 구매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70대의 노련한 한국 철강인은 이 말을 남기고 협상 테이블을 떠났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후판설비 구매가 어렵게 됐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 낙담하는 분위기였다.
한국인이 협상을 거절하고 귀국을 위해 짐을 챙기던 시각에 호텔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40대 인도 청년이 걸어온 전화였다. 전화 통화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가격에 후판 설비를 팔겠다”는 내용이 분명히 들렸다.
1997년도 즈음, 아르셀로미탈의 락시미 니와스 미탈과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과의 비즈니스 장면이다. 당시 거래된 설비는 동국제강 포항 2후판공장의 메인 설비로 장착되었고, 2020년 이전까지 운영되다가 인도네시아로 설비 전체가 매각 이전되었다. 동국제강의 후판 축소 정책에 따른 것이다.
락시미 니와스 미탈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고 장상태 회장의 큰 아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세계철강협회 회의에서 조우했을 때 “당신의 부친은 와이즈 맨(Wise Man)이었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6월 15일은 아르셀로미탈을 이끄는 락시미 니와스 미탈의 73세 생일이다. 2005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선정된 미탈은 2006년 아르셀로와 미탈스틸을 합병하면서 아르셀로미탈이라는 세계 2위의 철강 거인으로 성장했다.
락시미 니와스 미탈은 적자투성이 회사를 인수해서 수익성 있는 벤처로 탈바꿈시킨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가난한 인도 시골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미탈은 맨손으로 철강 기업을 일군 인물이다. 지금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켄싱턴 팰리스 가든 18-19번지에 침실 12개짜리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 집은 타지마할 건축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대리석으로 장식했다. 이 대리석은 샤 자한이 채굴한 광산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한다.
락시미 니와스 미탈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를 뛰어넘는 21세기의 명실상부한 철강왕으로 불린다. 그에게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4가지 행동이 있다.
첫 번째는 자선 활동이다. 그는 조국 인도를 위해 활발한 자선활동을 펼쳤다. 2003년 미탈은 라자스탄 주 정부와 손을 잡고 자이푸르에 자율적인 비영리 단체인 LNM 정보기술연구소(LNMIIT)를 설립했다. 미탈은 잠재력이 뛰어난 인도 선수 10명을 후원하기 위해 미탈 챔피언스 트러스트를 설립했다.
2008년 아비나브 빈드라가 인도에 첫 올림픽 사격 개인전 메달을 안겨주었을 때 미탈은 그에게 적지 않은 포상금을 수여했다. 같은 해 미탈은 런던의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에 1500만 파운드(약 246억 원)를 기부했다. 병원이 받은 민간 기부금 중 가장 큰 금액이다. 이 기부금은 미탈 어린이 의료 센터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두 번째는 여러 권위 있는 상의 수상자이다. 미탈은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던 토바고와 트리니다드의 국영 제철소를 인수하여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전환했다. 그는 2004년에 올해의 유럽 기업인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포브스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미탈이 관여하는 다양한 이사회이다. 콜카타의 세인트 자비에 대학을 졸업한 미탈은 골드만삭스, 유럽 항공 방위 및 우주 회사 등 여러 회사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세계철강협회 집행위원회의 중요한 일원이자 인도 총리의 글로벌 자문위원회, 모잠비크 대통령 국제자문위원회, 카자흐스탄 외국인투자위원회, 세계경제포럼의 국제비즈니스위원회 등 다양한 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하다.
미탈은 현재 런던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 중 한 명이다. 그는 1970년 연수생으로 제철소에 입사해 6년 후 인도네시아에 제철소를 설립했다. 미탈은 먼 길을 걸어오면서 인도 최고의 부호로 칭송받고 있지만, 대도시 런던에 거주하는 호화로운 시민들과 비교하면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네 번째는 딸의 사치스러운 결혼식으로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점이다. 그는 딸의 결혼식을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어 최초의 개인 행사로 주목을 받았다.
락시미 니와스 미탈은 최근 철강 산업 전체가 불황이어서 그다지 활발한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가 이룬 철강 왕국의 전설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