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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철태만상(10)] 나무 레일에서 철도 레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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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철태만상(10)] 나무 레일에서 철도 레일까지

현대제철 자기부상열차 레일. 사진=현대제철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제철 자기부상열차 레일. 사진=현대제철
200여 년 전 기관차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관차의 속도 때문에 승객들이 숨을 쉴 수 없거나 진동 때문에 의식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레일이 변변치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분명한 것은 기차가 대중 교통수단으로 성장한 것은 수레가 레일을 밟기 시작한 이후라는 점이다. 철도 레일의 시초는 ‘왜건 웨이’라 불리는 나무 레일이다. 울퉁불퉁한 거리를 달리던 마차나 수레가 ‘왜건 웨이’ 위로 달리자 비포장도로에서도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 장면은 영국의 석탄광산 리틀 이튼 갱웨이에서 말들이 ‘왜건 웨이’(1795~1908년 개통)를 따라 석탄 마차를 이끄는 기록 사진으로 남아 있다. 사람의 인력으로 석탄을 이동시켜야 했던 당시 상황에서 레일 깔린 교통수단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1700년대 후반, 석탄 마차 길은 ‘트램 웨이’로 발전했다. 트램 웨이는 유럽 전역에 붐을 이룰 정도로 번성했다. 최초의 레일이었던 나무 레일과 마차 바퀴는 점점 더 강해져야 했다. 부서지거나 찌그러지는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더 강한 레일이 필요해지면서 나무 레일은 철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철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증기기관차가 나오기 이전인 1800년대 초까지 마차를 이끄는 동력원은 말이었다. 그 당시 말은 여러 형태의 운송 수단으로 사용됐다. 문제는 말똥이었다. 자율 조절 능력이 없는 말들은 이동하는 중에도 아무 곳에나 대소변을 갈겼다. 도로는 말똥 천지였다. 유럽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한 이유 중 하나가 말똥 때문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고민은 증기기관차와 자동차의 등장으로 해결됐다.

1760년대 후반에 영국의 브룩 데일 회사는 목재 레일 위에 주철판을 부착했다. 내구성과 하중지지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이 철 레일 위에서 마차를 운행시키게 되자 물류이동 물량이 대폭 늘어났다.

당시 수레바퀴는 플랜지가 없는 L자형 금속판 위에 달릴 수 있도록 개발했다. 이름하여 ‘플레이트 웨이’다. 이 발명은 1787년에 셰필드 제련소 관리자 존 커가 이뤘다. ‘플레이트 레일’은 버터리 제철소에서 제조됐다. 그리고 1803년 윌리엄 제시 솝은 런던 남부에서 이중 궤도 플랫폼 서리 철도를 개통시켰다. 같은 시기에 ‘엣지 레일’도 등장했다. 두 개의 레일은 공공철도의 시작을 알렸다.

L자형 ‘플레이트 레일’과 매끄러운 ‘엣지 레일’은 19세기 초까지 나란히 계속 존재했다. 이 레일들은 철도의 표준이 되기에 이른다. ‘엣지 레일’은 영국 크롬포드와 하이피크철도(1831년)에 사용하기 위해 버터리 철강회사의 제철소에서 아웃램이 제조됐다 주 성분은 주철이었다. 이 피시벨리 엣지 레일은 플랜지가 있는 바퀴용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주철은 무거운 하중을 받으면 부러지는 성질 때문에 완벽한 레일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1820년 존 버킨쇼가 발명한 연철 레일이다. 연철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가 교량에 사용하면서 교량부문의 혁신을 일으켰던 철강재였다.

연철은 부러지기 이전에 상당한 변형이 가능한 연성성질을 지니고 있어 철 레일을 제조하는데 적합했다. 연철은 1784년 헨리 코트가 퍼들링 공정 특허를 받기 이전까지는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 철 레일로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리고 1783년 코트는 망치질보다 15배 더 빠르게 철을 응집하고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압연 공정 특허를 획득하여 레일 제작을 향상시켰다.

단철은 부드러운 소재였다. 이 부드러움은 철제 레일이 뒤틀리고 박리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수명은 10년 미만이었다. 교통량이 많은 경우에는 1년도 채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철도 레일은 목재와 철을 복합시킨 전철 레일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철도가 대대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시기는 철강 생산과정에서 베세머 공법이 도입된 시기와 맞닿아 있다. 1860년대 후반 강철 레일은 주철이나 연철보다 몇 배 더 오래 사용될 수 있었다.

강철 레일은 무거운 기관차 운행으로 이어졌다. 긴 열차를 매달고 달리는 오늘날의 현상은 강철 레일 덕분이다. 이전까지 베세머 공법으로 만들어진 철도 레일은 질소가 함유되어 기간이 지날수록 부서지는 단점을 지녔지만 현대에 이르러 탄소를 적절히 조절한 강철을 대량 생산 하면서 철도 레일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에는 강철보다 더 강한 스테인리스 철로나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된 철로가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경제성을 감안할 때 범용적인 사용은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19세기 이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는 많은 철강기업들이 철도레일을 생산했다. 미국에서는 베들레헴스틸이 186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확장되는 철도용 레일 수요 덕분에 사세가 급성장했다. 이 성장 추세는 18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철강왕 카네기스틸과 레카와나스틸 등도 철도 레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레일 시장은 경쟁체제가 됐다. 철도레일 생산의 원조 베들레헴스틸은 철도 시장 점유율이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도에 철도 레일 사업을 접었다. 국내 철도 레일 생산 철강업체는 현대제철과 삼표레일웨이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오늘날의 레일은 이음새 없는 레일이 나올 정도로 성장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열차가 지나가면 반복적으로 들리던 소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차 길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폭...”

1960년대 우리의 철로 주변 풍경을 떠 올리게 하는 동요의 가사를 아마 지금의 초등생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철도의 기술개발도 수십 년 후에는 더욱 달라질 것이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