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이 단점을 개선한 기술, 박슬래브 주조법(Thin Slab Casting)을 도입한 기업이 뉴코다. 일명 CSP제철법을 과감하게 도입한 인물은 케네스 아이버슨(1925∼2002)이다. 아이버슨은 1965년부터 1998년까지 34년 동안 뉴코의 최고경영자였다. 그는 코넬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하고 퍼듀대학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47년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물리학 담당 연구원이었다. 이후로 주조공장의 수석 엔지니어, 금속 판매업체의 판매담당자 겸 금속 엔지니어를 거쳤다.
아이버슨이 뉴코의 전신인 뉴클레어(Nuclear)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이다. 당시 뉴클레어는 핵 시설 관련이 주력 사업이었으나 철강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뉴클레어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자금 부족으로 파산 위기를 맞고 있었다.
아이버슨은 40세(1965년)가 되던 해에 뉴클레어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후 반도체·복사기 등의 사업을 중단시키고 흑자를 내던 불크래프트 공장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 공장은 US스틸로부터 봉강을 구입해 재가공한 후 건설 부문에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버슨은 원자재를 직접 생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미국은 공급 과잉과 불황에 의해 ‘철강 산업의 추운 겨울’을 맞이했다. 아이버슨은 위기가 닥쳤으나 인력 감축보다는 오히려 종업원을 격려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첫째 종업원, 둘째 고객, 그다음이 경영자와 주주”라고 할 정도로 종업원을 아꼈다.
아이버슨은 독일 슐레만 지마그가 1983년에 개발해 1986년도에 상업화한 CSP(Compact Strip Production·박슬래브 제조법)를 적극 도입했다. 전기로를 통해 1.5~2인치 정도의 슬래브를 생산하는 신공법은 대성공이었다. 대부분의 철강기업들은 CSP방법이 실패할 경우 5억 달러에 이르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아이버슨은 1987년 9월 CSP를 적용한 크로퍼즈빌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89년 7월부터 가동에 들어갔으나 두 차례나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크로퍼즈빌 제철소는 1989년 12월 2인치 두께의 슬래브를 성공적으로 생산해 냈다. CSP방법을 통해 뉴코는 톤당 250달러(고로원가는 500달러)라는 경이적인 원가로 열연제품을 생산해 냈다. 뉴코는 1992년과 1996년에 박슬래브 제철소를 잇달아 건설했다. 오늘의 뉴코는 미국을 대표하는 철강기업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아이버슨은 1998년 뉴코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91년 그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철강 경영자에게 주는 윌리코프상이 수여됐다. 친환경 철강 산업이 화두인 지금 뉴코는 글로벌 철강기업들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다.
김종대 글로벌i코드 편집위원 jdkim871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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