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미국에 전략광물 ‘빅베팅’…10조 원 제련소로 탈중국 공급망 전면화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손잡고 10조 원 규모의 전략광물 제련소를 미국 남동부에 건립한다. 북미가 중국 의존도를 낮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에 대한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다. 이중 미국 정부와 방산 전략기업이 직접 2조 원 규모의 투자에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15일 외교·통상 당국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미국 제련소 건립을 위한 합작법인(JV) 설립과 투자 추진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제련소는 고려아연과 미국 측 파트너가 공동 출자하는 JV 형태로 설립된다. 전체 투자금은 현지 차입과 투자 유치를 통해 조달된다.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 방산 관련 전략 기업들이 약 2조 원 규모로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민간 투자 차원을 넘어 미국 정부 차원의 공급망 전략과 직결된 사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제련소는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등 전략광물을 현지에서 생산·공급하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울산 온산제련소에서 습식과 건식 공정을 결합한 통합 제련 기술을 통해 아연은 물론 다수의 전략광물을 생산해 왔으며, 미국 제련소 역시 이 같은 통합 공정을 기반으로 구축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반도체와 방산,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전략광물을 중국이 아닌 동맹국 공급망을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고려아연은 기술력과 생산 노하우를 제공하고, 미국은 자금과 정책 지원을 결합하는 구조다.

제련소 입지는 미국 남동부 주요 도시로 잠정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은 60여 곳에 달하는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용수와 전력 조달이 용이하고 물류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자는 지난 8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발표한 전략광물 협력 구상을 구체화한 결과로 해석된다. 당시 고려아연은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과 핵심 광물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했고, 국내에 약 1400억 원을 투입해 게르마늄 생산 공장 신설 계획도 발표했다.

중국이 지난해 하반기 희토류와 전략광물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미국은 고려아연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타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 대규모 물량 확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투자자로 참여할 경우 고려아연은 사실상 미국의 경제안보 자산으로 분류돼 인수합병 자체가 고도의 정치·외교적 부담을 안게 된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를 포함한 주주 구성에서도 전략광물 공급망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최윤범 회장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의 이번 미국 투자는 단순한 해외 생산기지 확대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태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ost42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