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배터리 키우기 어려워진 전기차”…승부처는 전비 경쟁

글로벌이코노믹

“배터리 키우기 어려워진 전기차”…승부처는 전비 경쟁

모터·SiC·공력·열관리 설계로 같은 배터리 더 오래 쓴다…완성차·부품업계, ‘전기차 연비’ 기술 경쟁 본격화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5. 사진=현대차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5. 사진=현대차


전기차 시장 경쟁의 기준이 배터리 용량에서 전비 효율로 이동하고 있다. 보조금 축소와 가격 경쟁, 배터리 원가 부담이 맞물리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같은 전력으로 더 멀리 달리는 기술 경쟁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전비는 전기차가 전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내연기관차의 연비와 유사한 개념이다. 배터리 용량이 클수록 주행거리가 늘어난다고 보기 쉽지만 실제 효율은 모터와 감속기, 전력반도체, 열관리 시스템, 공력 설계 등 차량 전반의 기술력에 따라 달라진다.

전기차 시장 환경도 효율 경쟁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테슬라 중국 생산분과 BYD, 폴스타 등을 포함한 제조국 기준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점유율은 2022년 4.7%에서 2025년 33.9%로 상승했다. 중국산 전기차의 저가 공세와 보조금 축소 흐름이 맞물리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용량 확대보다 효율 개선을 통한 상품성 확보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시장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수록 배터리 증설 경쟁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용량 확대는 원가 상승과 차량 무게 증가로 이어진다. 무게가 늘어나면 전력 소모도 커져 효율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같은 배터리로 얼마나 더 멀리, 더 안정적으로 달리느냐가 핵심 상품성으로 부상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비 개선을 위해 주목하는 기술 중 하나는 전력반도체다. 최근에는 기존 실리콘 기반 IGBT 대신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SiC는 전력 손실과 발열을 줄일 수 있어 고효율 전동화 시스템의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한국전기연구원은 SiC 전력반도체 적용 시 전기차 에너지 효율이 향상될 수 있으며, 전력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구동 모터와 감속기 효율도 중요하다. 모터 효율이 높을수록 배터리 전력을 실제 구동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줄어든다. 감속기와 인버터는 배터리 전력을 모터 구동에 맞게 변환·전달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 과정에서 손실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전비 차이를 만든다.

공력 설계도 전비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전기차는 고속 주행 시 공기저항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업체들이 차량 전면부 형상과 휠 구조, 하부 설계, 후면부 라인까지 세밀하게 조정하는 이유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6는 공기저항계수(Cd) 0.21을 달성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환경부 인증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 568km를 확보했다. 주행거리 개선이 배터리 용량 확대뿐 아니라 공력 설계와 전동화 효율 개선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BYD 씰(SEAL) 역시 Cd 0.219 수준의 공력 성능을 구현하며 효율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다.

열관리 시스템은 소비자가 체감하는 전비 편차를 줄이는 기술이다. 겨울철 전기차 주행거리 감소는 대표적인 소비자 불만으로 꼽힌다. 배터리 성능이 낮은 온도에서 떨어지는 데다 실내 난방에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미국 전기차 데이터 업체 리커런트(Recurrent)는 저온 환경에서 전기차가 평균적으로 기존 주행가능거리의 70%대 수준을 유지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보완하는 기술이 히트펌프다. 히트펌프는 외부 공기와 차량 내 폐열을 활용해 난방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기존 전기 히터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어 겨울철 전비 방어에 유리하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와 모터, 인버터, 충전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통합 관리하는 방향으로 열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배경이다. 테슬라는 ‘옥토밸브(Octovalve)’ 기반 통합 열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 역시 통합 열관리 기술을 전동화 플랫폼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효율 중심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테슬라는 전력반도체와 통합 열관리 시스템, 공력 설계를 결합해 전비 경쟁력을 높여왔다. BYD는 모터·감속기·인버터 등을 통합한 전동화 시스템과 자체 배터리 기술을 앞세워 가격과 효율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전비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기아는 E-GMP 플랫폼 기반 전동화 기술과 회생제동 시스템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전동화 통합 모듈 개발을 확대하고 있으며, 철강업계는 고효율 모터에 쓰이는 무방향성 전기강판 시장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도 단순 용량 경쟁은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터리 셀 성능뿐 아니라 차량 전체 에너지 관리 효율을 함께 끌어올려야 실질적인 주행거리 개선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배터리와 모터, 전력반도체, 열관리,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통합 효율 경쟁이 전기차 상품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IR협의회 기업리서치센터는 우리산업 보고서에서 “전기차에서는 열관리 시스템을 통해 배터리의 효율을 높이고, 주행가능거리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전기차 열관리 시스템이 실내 공조뿐 아니라 모터·배터리 등 파워트레인 냉각, 전자장치와 센서의 열 제어까지 포함하는 통합 관리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다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h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