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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피케티? 문제의식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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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피케티? 문제의식을 읽어라!

[글로벌이코노믹=김종길 기자] 토마 피케티라는 40대 초반 프랑스 경제학자가 쓴 <21세기 자본론>이 세계인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진보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이 ‘피케티 패닉‘(Piketty Panic)이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그를 치켜세웠다. 주류경제학이 다루지 않던 분배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데다 그 날카로운 분석이 보수주의자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소위 ’장기 시계열 통계‘라는 매우 어려운, 그러나 폼나는 도구를 사용해 20여개국 400여년 경제사를 수치로 제시한다. 각국의 국민계정은 기본이고 세금 환급 자료,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재산 조사, 심지어 당시의 유명한 소설 작품, 정치학 서적도 그의 시계열 위에서 해체되고 재구성됐다. 그가 집요하게 찾아낸 것은 자본/소득 비율지표다. 현재 총자산이 국민소득의 몇 배에 해당하는가를 나타내는 이 수치에 수익률을 곱하면 전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이 나오고 이를 저축률/경제성장률과 비교하면 불평등 추이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 수익률은 역사적으로 4~5% 선이었고 인류가 살아갈 21C의 경제성장률은 기껏 1.5% 남짓에 불과하다는 비관적 분석이 도출된다. 피케티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한, 소득 대비 상속된 부()의 비율은 계속 증가한다결국 21세기 자본주의는 극심한 불평등에 빠져들 것이고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울 것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을 가져오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경고이자 세습적 자본의 시대에 소득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언이다.

사실 피케티 열풍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최근 수년간 다보스 포럼이, 프란체스코 교황이, 오바마 대통령이 부의 불평등 심화를 우려하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가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에 대중의 불만이 크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했고 영국 찰스 왕세자도 약자를 배려하는 새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기업이 공동체와 환경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파국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리스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늘어나는 소득 격차가 세계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고 IMF는 소득의 불균형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펴내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은 이 문제에 무심하다. 해방 후 우리는 친일파 청산 실패와 6·25 전쟁, 친미 군사정권의 집권을 겪으면서 그 대가로 얻어낸 평등을 특유의 근면과 교육열과 잘 버무려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성장의 그늘 속에서 인권은 소홀히 대해졌고 사회적 약자의 빈곤은 커졌다. 특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는 매우 빠르게 특정 계층의 품 안을 찾아들었다. 결국 소득 불평등과 분배의 문제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모순이자 숙제가 됐는데도 이 문제에 심각한 목소리를 낼라치면 국가발전에 해를 끼치는 불평론으로 몰아부친다.

하지만 심각하다.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말이다. 심하게 말하면 비참한 수준이다. 경력개발기구(OECD) ‘2014 통계연보'(Fact Book)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빈곤갭(Poverty Gap) 비율은 39%로 스페인(42%)과 멕시코(41%)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3위를 차지했다. 빈곤 가구의 소득이 빈곤선(최소 생활이 가능한 소득 수준)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표현한 수치다. 국가의 사회복지 공공지출 수준은 절망적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공공지출 정도는 국내총생산(GDP)9.3%로 최신 통계가 확보된 OECD 32개국 중 31위였다.

특히 부의 집중이 문제다. 201212.41%였던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외환위기를 지나며 급증하고 있다.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5%를 넘는다. 미국식 소득불균형 국가로 진입했다는 증거다. 원인은 경제성장 둔화와 낮은 고용률이다. 저임금 상태에서 일하는 청년여성노인계층 숫자가 많고 하위 90%의 소득 증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위 1%가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이를 높은 자본수익률로 운용해 부의 불균형을 심화한다. 피케티의 말처럼 돈이 돈을 버는 속도(자본수익률)’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소득증가율)’보다 빠르다. 상위 계층에서 근로소득이 아닌 금융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부의 불균형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난치병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의 연구에 반론이 만만치 않고 심지어 자료 조작 의혹마저 제기됐다. 하지만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부자는 계속 부자이고 빈자는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그래서 부자가 몸집을 불릴 때 빈자와 약자들의 처지가 위태로워진다는, 그의 문제의식은 그 의미가 크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헤드쿼터인 미국에서마저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 우리가 듣고싶은 것은 피케티의 자료 인용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불평등 문제에 대해 세계 각국이 진지한 검토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세월호라는 자본의 탐욕이 빚은 초유의 비극을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특히 그렇다.

산업/IT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