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총선에서 표는 흩어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표는 야당의 분열을 좇아 사분오열할 것으로 예견되었다. 모일 수 없는 표에는 민의도 민심도 실릴 수 없는 것이어서 여당의 압승은 뻔해 보였다. 사방에서 쏟아진 여론조사 결과는 야권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말하고 있었다. 관심의 초점은 다만 여당이 차지할 의석의 수에 집중되어 있었다. 야권 승리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불가능은 가능이 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서 등을 돌릴 수 없었던 국민 개개인의 참여가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었다. 민심이 겨냥한 것은 오만한 정치의 심장부였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민심의 활은 붉은 화살을 시위에 걸어 과녁을 향해 곧게 쏘아 보냈다. 화살은 표심이었고, 체념을 이겨 낸 참여의 실천은 튼튼한 활시위였다. 날아가 박힌 표심이 꼬리를 힘차게 떠는 동안 여당의 독주는 불가능의 세계로 쫓겨나 버렸다.
새로운 국회에서 다수당과 소수당 간의 대화와 토론은 일의 전제 조건이 될 것이었다. 불통의 정치는 귀를 열고 입이 있는 곳으로 방향타를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재편된 정치적 역학 관계 하에서 정부의 독단은 강제로라도 억제될 것이었다. 경제 민주화, 복지, 정의를 화두로 한 시대적 담론을 계속해서 모호한 정치적 수사로 교묘히 회피하는 것은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었다. 지역구도와 과거에 대한 향수, 정치적 무관심에 기댄 보수진영의 장기집권 전략은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민심이 표에 얹힌 덕분이다.
국민 다수의 삶, 국민 다수의 정서와 괴리된 정치는 그 자체로 악이다. 악한 정치는 이익집단 간의 첨예한 갈등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지 않는다. 대신 일방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의 정치는 권력과 금력을 가진 기득권층에 휘둘려 왔다. 공고한 부패와 부정의 카르텔 안에서 그들이 승자의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다수의 국민은 헬조선에서 흙수저로 절망을 떠먹으며 나날을 보내야 했다. 표는, 악을 향해 몸부림치며 날아갔다.
정치가 선해질 때 세상은 용납 가능한 곳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선한 정치는 곧 정의로운 정치다. 국민의 지속적인 참정 없이 정치는 저절로 정의로워지지 않는다. 유권자 42%가 기권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좌절은 국민의 참정이 사실상 봉쇄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 온다. 정치권이 내년 대선을 향해 질주하는 과정에서 민심은 다시 왜곡되고 정치는 국민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참정의 기회가 막혀 있는 한 정치는 쉽게 선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세월호 2주기를 맞는다. 2년 동안 세월호는 바다 아래 있었고 국민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국민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진실이 남아 있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어쩐지 궁색하다. 표에 마음을 담는 것만으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민심의 심판은 위대했지만 위대한 심판의 기회는 국민의 마음대로 추가할 수 없다.
표심이 꽂혀 있는 과녁 뒤로 갈 길이 멀리 이어져 있었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