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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말글산책]'브렉시트' 속의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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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말글산책]'브렉시트' 속의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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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이재경 기자] "0.1%P차 엎치락뒷치락" "유래 없는 EU 탈퇴 현실화" "브렉시트 투표 엇갈린 여론조사에 안개 속, 투표시간은?"

24일 하루동안 포털에 오른 일간지 제목들이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일명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23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우리나라 시간 23일 오후 3시부터 24일 오전 6시)까지 영국 전역에서 실시됐다.

이번 '브렉시트'는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라 24일 하루 내내 국내 각 신문사는 '브렉시트' 개표 과정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는 각 신문에서 올린 제목에 관심이 갔다. 위 제목에서 보이는 '엎치락뒷치락' '유래 없는' '안개 속'은 과연 맞는 말일까?

우선 '엎치락뒷치락'을 보자.

앞의 '엎치락'은 맞는 표기인데 뒤의 것이 '뒷치락'과 '뒤치락'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느냐이다.

현재의 '표준어 규정과'과 '한글 맞춤법'은 28년 전인 1988년 1월 19일 고시해 1989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 당시 국어심의회 한글분과 위원회가 '한글 맞춤법'을 심의하면서 난상토론을 벌였던 부분이 바로 사이시옷 규정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이시옷을 붙일지, 안 붙일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의 사이시옷 규정을 보면 명사와 명사 사이에는 사이시옷을 붙이는데, 뒷말의 초성이 된소리인 ㄲ·ㄸ·ㅃ·ㅆ·ㅉ이나 거센소리인 ㅋ·ㅌ·ㅍ·ㅊ일 때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다고 돼 있다.

개(똥)·나무(칼)·뒤(쪽)·뒤(처)리·뒤(탈)·뒤(통)수·보리(쌀)·배(탈)·아래(쪽)·아래(층)·위(쪽)·위(층)·쥐(뿔)·쥐(똥) 등이 그 예다. 괄호에 있는 말들은 전부 된소리나 거센소리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게 있다. '첫째' '셋째' '넷째'도 언뜻 보면 '처째' '세째' '네째'가 되어야 한다고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관형사 '첫' '셋' '넷'에 접미사 '째'가 붙어 '첫째' '셋째' '넷째'가 된 것들이다. 명사와 명사 사이에 붙는 사이시옷 규정과는 다르다.
"일이 벌어진 뒤나 끝난 뒤끝을 처리하는 일"은 '뒷처리'가 아니라 '뒤처리’가 맞다. "놀고 난 뒤에는 뒤처리를 잘해야 한다." "지난번 교통사고 뒤처리를 하느냐 얼마나 바쁜지 몰라." 등이 그 예문이다. '뒤치락'도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다.

'유래(由來)'와 '유례(類例)'도 구별해서 써야 할 말이다.
한자 세대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한자어가 나오면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자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유래'와 '유례'도 그런 사례로 한자의 뜻만 알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말이다.
'유래'는 사물이 어디에서 연유(緣由 → 인연 연, 말미암을 유)하여 온다거나, 그 내력을 일컫는다. "시골 마을의 이름에는 대부분 유래가 있다." "작도를 할 때에는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이용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처럼 쓰인다.
그러나 '유례'는 대개 '없다'거나 '적다'는 뜻의 서술어와 함께 쓰여, 같거나 비슷한 예를 뜻한다. '유례없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당당히 올라 있다. "그러한 사실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가 없다." "한국 국민은 1997년 외환위기로 유례없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등이 그 예이다. 이에 따라 위 제목은 "유례없는 EU 탈퇴 현실화"가 맞다.

'안개 속'도 안개와 속을 띄어 쓰면 안개의 속 부분이 말하지만 사이 ㅅ을 넣은 '안갯속'은 "어떤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위 제목은 "브렉시트 투표 엇갈린 여론조사에 안갯속, 투표시간은?"이 되어야 한다.

이재경 기자 bubmu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