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인간의 능력은 기계와 결합하면서 눈부시게 진보중이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업무량을 한국인들은 기계의 도움을 빌어 뚝딱 처리하곤 한다. 타자속도 400타면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나고, 전 국민 500타의 시대가 열렸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동시에 노트북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SF적 장면이 한국에선 매일 반복된다. 트랜스 휴먼은 이미 여기 와 있다.
'내가 직장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기계가 됐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2017년 나왔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거다. 한국에서 인간은 기계 없이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간단한 실험 하나면 증명된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딱 한나절만 스마트폰을 직장인과 분리시켜 본다. ‘니가 사람이냐, 제 정신이냐’는 소리가 분명 누군가에게서 목청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기계 없이는 사람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액체금속 인간형 로봇 T-1000을 보고 느낀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T-1000은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인류를 멸종시키기 위해서. 2017년 한국의 T-1000은 바로 카카오톡, 라인 등 메신저다. 기계와 분리되는 시간을 용인할 수 없는 듯이 카톡은 휴일에도 어김없이 직장인을 소환해 노트북 앞에 앉힌다.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니 스트레스는 쌓이고 인간성은 메말라간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