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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한국은행의 ‘양적완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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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한국은행의 ‘양적완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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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단숨에 ‘왕창’ 풀 수 있지만, 실물경제는 그럴 수 없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그 돈이 실물경제를 곧바로 움직여주지는 않는 것이다.

돈을 환수해서 통화량을 줄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과열되었다고 판단, 긴축정책을 펴도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화정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돈을 갑작스럽게 늘리거나 줄이면 살리겠다는 경제가 되레 망가질 수도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도 그랬다. 미국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부터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리듯’ 풀어댔다. 그렇다고 경제를 하루아침에 좋아지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그 바람에 양적완화는 1차, 2차, 3차에 걸쳐서 6년 동안이나 실시되어야 했다. 그 사이에 풀린 돈이 자그마치 4조 달러에 달했다.

그렇게 풀었는데도, 돈은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중산층 스퀴즈’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2011년 올해의 단어로 ‘쥐어 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을 선정했을 정도로 중산층에는 돈이 돌지 않았다.

중산층은 이른바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에 시달려야 했다.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Screw)’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말이다.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스크루플레이션 상황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왔을 정도였다.

풀려나간 돈은 소위 ‘1%’의 차지였다. 1%만 풀려나간 돈을 굴려서 더욱 큰돈을 벌고 있었다. ‘99%의 1%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 양적완화 얘기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왔었다. ‘한국판 양적완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당시 새누리당이 ‘한국형 양적완화법’을 발의하겠다고 한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재정과 통화정책의 ‘폴리시 믹스(정책 조합)’가 중요하다”고 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무차별적인 돈 풀기 식 양적 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 완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양적완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채권을 인수하는 방법이 있고, 한국은행이 직접 출자할 수도 있다. 둘 다 돈을 푸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양적완화 얘기가 또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2020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국채 매입을 늘리고 대출 지원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금융회사에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잡는 적격담보증권의 범위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한은은 “국채 매입은 유동성 조절기반 확충과 시장안정화 조치의 일환”이라면서 “대규모 채권매입 등 유동성 확대를 통해 장기 채권 금리의 하락을 유도하는 양적완화와는 다른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돈은 풀지만, 양적완화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돈은 지금도 엄청나게 풀려 있다. 우리나라의 통화량이 국내총생산(GDP)의 151.5%에 달했다고 세계은행이 분석했을 정도다. 경제 규모와 비교한 통화량이 홍콩, 일본, 중국 다음으로 많았다고 했다. 세계에서 4번째로 돈을 많이 푼 셈이다. 양적완화라는 얘기 자체가 나오지 않았어야 좋았다.

풀려나간 돈은 후유증이 간단치 않을 수 있다. 일부 자금은 투기로 돌아 집값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돈을 더 풀겠다는 한국은행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