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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한 교수의 상생주택정책] 차기 정부에 보내는 싱가포르 부담가능주택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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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한 교수의 상생주택정책] 차기 정부에 보내는 싱가포르 부담가능주택의 메시지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
1959년 5월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 51명 후보자는 청념의 상징으로 흰옷을 입고 자치정부 헌법에 의거해 실시한 최초의 총선에 출마했다. 그들은 건설적 경제와 사회 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그리고 51개 선거구에서 43석을 석권했다. 그로부터 63년이 지난 2022년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6만6천불로 아시아 최고이고, 국가신용등급(피치 기준)도 AAA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처음처럼 싱가포르의 청념, 실용, 혁신 정부는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싱가포르의 自家 중심 사회는 동서고금에서 빛나는 성과이다. 이는 싱가포르의 실정에 맞는 독창적인 주택 정책 창안과 강력한 공공 추진 체계, 그리고 싱가포르인의 정부에 대한 신뢰로 창조된 금자탑이다. 주택대란을 겪는 우리 사회는 싱가포르 주택을 보면서 성찰해야 할 것들이 많다. 주택의 근본적인 기능은? 사회 문제 해결에서 주택의 역할은? 주택 정의와 주택 시장 경제 등이 그것이다.
먼저, 제주도 면적의 약 0.4배로 매우 작은 나라인 싱가포르가 어떻게 빈국에서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되었을까?

싱가포르의 현대사는, 한국과 유사하게, 고난, 도전 그리고 기적의 연속이었다. 싱가포르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 식민지, 영국 식민지(1946년~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1963년~1965년)을 거쳐 1965년 분리 독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싱가포르에 비해 강대국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위협과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군대와 예비군을 창설하고, 내부적으로는 중국계가 주도했던 공산주의 세력과 투쟁하면서 그리고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인종간의 극심한 갈등을 해결해야 했다. 이 주역들이 리콴유와 그의 인민행동당이다. 리콴유 총리는 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간 봉직했으며, 인민행동당은 지금까지 63년 동안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어떠한 이념도 거부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 주택, 교육, 보건 등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은 정부라고 믿었다.

싱가포르는 복지사회라기보다는 자립사회라고 해야 한다. 서구식 복지국가 모델을 과감히 탈피하고 국민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주택, 의료,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 의료보험제도(Medifund)는 빈곤층에 한하여 제공하고 있다. 1980년대 초에 영국식 의료보험제를 폐지하고 의무적인 적립식 저축제도인 메디세이브(Medisave)를 구축했다. 모든 국민은 자기 소득의 일정 비율을 중앙후생기금(CPF) 특별계좌인 메디세이브 계좌에 적립하여 의료비 지출에 대비한다. 리콴유 총리는 정부 재정으로 의료비를 부담하는 시스템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급증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며, “현세대의 복지비용을 다음세대에 떠넘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 메디세이브를 강력히 추진했다. 주택 문제의 해법도 영국식의 공공임대주택 대량 공급 방식이 아니라 공공분양주택 공급 방식이었다. 분양받은 공공주택에 일정기간 거주 후에 매도하여 시세 차익을 얻고 또한 고급 민간 주택으로 갈아탈 수 있게 하였다. 스스로 노력하면 그만큼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지향했다.

1959년 싱가포르 주택보유율은 9%였으며, 1960년대 싱가포르의 주택은 대부분 슬럼가로 이루어져 있고 극심한 주택난에 시달렸다. 리콴유는 심각하게 오염된 채 가난하게 살아가는 값싼 임대 지역과 자기 집을 소유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 간의 현저한 격차를 보았다. 그는 “자가 사회(A Home-owning Society)는 국민에게 국가와 국가 미래의 지분을 주는 것이다. 자가 사회를 실현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리콴유 정부는 1960년부터 대대적인 주택 보급 사업에 착수했다. 타 기관보다 앞선 1960년에 주택개발청(Housing and Development Board, HDB)을 설립했다. HDB는, 한국의 LH공사와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의 기능을 합한 기관으로, 근로자용 저가 주택(HDB flat)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기관이었다. 현재, HDB는 국가개발부 산하 기관으로, 공공주택의 공급과 대출, 국유지 매각 그리고 도시개발을 담당한다. 정부와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받아서 모기지 자금 및 임대료를 대출해주고 주택건설사업자에게도 지원해준다. HDB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의 집(Affordable Homes!)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식 30평대라고 볼 수 있는 방 5개 HDB 아파트(110㎡, 침실 3개)의 가격은 대략 1.5억원 수준이다.

리콴유 정부는 1966년에 토지취득법을 제정하여 토지의 국유화율을 40%에서 90%까지 높였다. 이로 인하여 주택 분양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토지비의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정부는 낮은 보상금으로 사유지를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정부가 제안한 액수에 소유주가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토지는 일단 국가에 귀속되고, 법정에서 해결되기 전까지 소유주는 돈을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다른 여러 국가들이 기업의 국유화를 추진한 것과는 다르게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면서도 토지의 국유화를 강력하게 시행한 점은 싱가포르 리더십의 혜안이다. 또한,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국토면적이 1960년대보다 20%이상 증가했다.
HDB의 분양 대금 납부 조건은 계약금을 분양가의 20%로, 나머지 80%를 장기(20년) 분할 상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HDB 분양 초기에 구매 희망자들은 가난해서 계약금을 낼 수 없었다. 그 타개책으로 중앙후생기금(Central Provident Fund, CPF)를 활용했다. CPF는 1955년 영국 식민정부가 은퇴 후를 대비하여 도입한 저축계획으로, 초기에는 고용주와 근로자가 55세 정년까지 소득의 5%씩 적립하도록 되어 있었다. 1968년 CPF를 개정하여 적립비율을 5%에서 2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했다. 1985년에는 50%까지 상승했으며, 현재는 피고용자는 20%, 고용자는 17%로 총 37% 수준이다. 1968년 이후 공공아파트 분양이 탄력 받아, 공공아파트 거주 인구비율이 1975년에는 42%, 1985년 이후 80%이상이다. 이로 인해 1995년 이후 자가보유율은 90%이상을 달성했다.

2018년 싱가포르 시민권자의 자가보유율은 91%이다. 주택보급률은 110%를 초과했다. 총 주택에서 HDB 비중이 84%이며, 민간주택 비중은 16%이다. 공공자가주택이 82%, 공공임대주택이 2%로, 국민의 82~85%가 HDB 아파트에서 거주한다. 방 5실형(침실 3개) HDB아파트가 24.3%, 방 4실형은 41.9%, 방 3실형은 24.2%를 차지하며, 방 1실이나 2실 아파트는 0.03%나 0.2%에 불과하다.

HDB 아파트의 소유권은 지어진 시점에서 99년간이다. HDB 아파트는 환매조건부 건물분양 주택이며, 토지는 국가 소유이다. 신규 HDB 아파트 구입자가 5년이내 매매하려면 분양가 수준으로 HDB에만 되팔아야 한다. 5년경과 후에는 주택시장에 매매할 수 있다. 이때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시세 차익의 10~25%는 HDB에 환수된다. 일생동안 HDB 아파트 분양 기회는 2회이다. 최근 HDB의 주력 사업은 기존 HDB 아파트의 고품질화이다. 30년 이전에 건축된 저층 주택을 헐고 40, 50층대의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싱가포르 주택 정책이 우리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싱가포르는 건국초기부터 ‘자가보유사회’를 지향했다. 싱가포르는 주택 보급률의 증가하여 110%를 초과하면서 자가보유율도 증가하여 90%를 초과했다. 주택보급률이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자가보유율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주택보급률이 116%이나 자가보유율은 62% 수준이다. 한국도 최근 주택보급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104% 수준이나 자가보유율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하락하여 60% 수준이다. 정부는 주택 정책의 목표가 주택 공급의 확대인지, 아니면 무주택자의 자가보유율 확대인지 분명해야 한다.

둘째, 싱가포르가 추진한 주된 주택 공급 유형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라 공공분양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은 단지 2%이다. 1970년대까지 서구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주택 문제 해법을 대량 공공임대주택 모델에서 찾았으나, 1990년대를 거치면서 이 해법들이 후퇴했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립적 자아 형성을 저해하고 공공 재정 투자가 과다하다는 점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HDB 아파트는 공공이 건립한 주택이면서 개인이 소유한 주택으로서, 공공성과 개인의 자립성을 결합한 교묘한 모델이다. 2021년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8%로, 싱가포르보다 매우 높다. 현재 8%에서 지속적으로 높여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를 검토할 시점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보다는 환매 혹은 토지 임대 등 조건부 공공분양주택의 공급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HDB 아파트는 부담가능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이다. 결혼한 청년들이 구매가능한 주택 가격이며, 서민들에게 안성 맞춤형 금융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한국에서 20, 30평형인 싱가포르 아파트의 가격이 1-2억 수준인데, 소득대비 주택가격의 비율인 PIR 5내외로 매우 적정하다. 한국에서도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고, 택지비와 건축비를 정상화해야 한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는 스스로 적립한 저축으로 형성된 기금인 CPF 재원을 활용할 수 있다. CPF에서 계약금 20%를 지원받고 나머지 잔금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금제도가 주택 구입자금 융자 등으로 가입자에게 좀 더 오픈될 필요가 있다.

리콴유는 2000년에 발간된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에서 “새로운 사회적 제도가 회복된다면, 한국인들은 재도약하여 전진할 것이다. 그들은 역동적이며, 부지런하며, 굳건하며, 유능한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1959년 이후 청념하고 실용적이며 혁신적인 정부에 의하여 이끌어 온 지속가능발전, 공정하고 유능한 사기업 시스템이 경제 발전의 강력한 도구라는 신념의 공유, 그리고 자가보유사회를 지향하는 공공분양주택, 부담가능주택. 차기 정부에 바란다. 우리 위기 사회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제도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전 주택도시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