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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칼럼] 양곡관리법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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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칼럼] 양곡관리법 유감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쌀이 5000년 동안 국민 주식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인은 모두 밥심으로 살고 있다. 어린 시절 필자는 쌀밥보다 보리쌀과 좁쌀이 섞인 잡곡밥을 많이 먹었고, 유년 시절 학교 도시락에는 잡곡밥에 콩나물이 섞이고 멸치를 곁들인 반찬으로 채우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국민소득 증가와 다수확 신품종 도입 등 농업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환경이 변화되면서 잡곡밥보다는 쌀밥 식사가 증가해 왔다.

한국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식생활의 변화로 빵과 대체식품 등 식품 섭취가 증가하고, 쌀과 밀가루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매년 감소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쌀 위기가 더욱 가팔라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여소야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상정한 양곡관리법은 "양곡의 효율적인 수급관리 등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1950년에 제정되었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가 의무적으로 전량 매입하는 쌀 전량 수매법으로 변질되어, 정부와 여당이 엄청 반대했었지만, 절대다수 의석으로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쌀 소비량이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법 때문에 "천문학적인 추가매입비용과 시장격리비용 증가, 시장질서가 왜곡되고, 시장 수급조절 기능이 악화하여 만성적인 쌀 초과공급 구조를 한층 심화시킬 것"으로 판단하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국은 쌀이 남아돌고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으로 매년 의무적으로 쌀을 수입하는 상황에서도, 기계화율이 높아 쌀농사 진입이 쉽다. 이대로 두면 "쌀의 추가구매비는 물론, 보관료와 금융비용 등이 투입되는 시장격리비와 공공비축미 구매에 3조원, 논농사를 중심으로 공익직불금 등의 명목으로 3조원 이상의 국민 혈세가 매년 투입되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법안을 거부한 건 윤 대통령이 처음"이라며 "대통령의 독선으로 입법부의 권능이 무너졌다"고 규탄하고는 있지만, 이번 강제적인 쌀 매수로 인해 제일 혜택을 보는 지역은 호남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않은 것을 이재명 대표가 내년 총선을 의식하고, 떨어진 호남 민심을 무리하게 잡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논리도 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쌀 의무매입 비용과 보관 비용까지 쏟아붓는 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전국에서) 5곳 정도의 지역에만 (쌀) 저장 창고가 30% 이상 몰려 있다고 한다"면서 "농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 창고 복지법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자체가 매년 정부 양곡 보관료 예산이 증가하지만, 절반 이상은 정부·농협이 아닌 민간업체에 지급하고, 민간업체 선정에는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것에도 눈을 감고 있다. 산패된 쌀의 위험성과 제품선택 기준도 넘어가고 있다. 전기료, 상·하차비, 이송비 등도 모두 국비로 지원하는 것도 간과하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식량 안보하고도 사실적 관계 없다" "농민 표를 신경 쓴 것이다. 포퓰리즘이다"라는 비판도 피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는 풍족의 시대로 상징되는 상품의 홍수 속에서 인간 가치를 맛보면서 살고 있다. 시장에는 각종 농수축산물과 포장된 가공식품이 넘쳐 난다. 품질, 가격 말고도 디자인에서 차별화되는 브랜드를 만들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 쌀이 넘친다"고 국민에게 호소해도, 현명한 국민에게는 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정치는 갈등보다 대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안 없는 막말과 말꼬리를 잡고 끝장 정치를 계속하는 상황에서, 여당 핵심 의원의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 제안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헛소리로 공허함의 극치였다. 여기에다 내부조차 "점입가경"이라며, 어떤 대안도 없이 상대를 비판하는 것은 콩가루 집단으로 보인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당정 협의에서도 쌀 소비 촉진을 외치고 있고, "관·산·학(연) 협력체계, 가공제품 개발, 대국민 홍보, 품종 다변화, 고기능·고품질 브랜드화" 등 여러 좋은 말들이 많지만, 구체적으로 살필 의지도 보이지 않고, 난제를 풀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필자도 농민의 한 사람으로 농촌 현실은 인건비·연료비 등 생산비가 치솟는데, 쌀값은 전년과 비교해 내려가고, 시장격리 효과마저 미미한 현실에서 대안조차 없으니, 답답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로 되돌아온 이상, 국민여론전쟁으로 선동 또는 견강부회(牽强附會)하기보다는, 법안의 문제점과 대안 등을 반문하면서 자숙해야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재명 당보다 못해, 지지도가 떨어진다"는 여론에 유념해야 한다. 관계 장관과 국회의원들은 모든 것을 국민 혈세를 투입해 해결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국민 감동을 위해, 눈치를 보지 말고, 막걸리를 기울이는 노력으로 현장에서 묘책을 찾아야 한다.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