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데스크칼럼] 현역에서 다시 뛰는 대기업 명예회장들

공유
0

[데스크칼럼] 현역에서 다시 뛰는 대기업 명예회장들

채명석 산업1부 부장
채명석 산업1부 부장
‘명예회장(名譽會長)’을 사전은 “모임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퇴직 후 명예로 주는 칭호”라고 풀이한다.

기업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적용된 과정은 조금 다르다. 특히 사장‧회장은 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들도 올라서는 자리지만 명예회장만큼은 총수에게만 부여된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1세대인 창업주가 2세대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같은 회장이라는 직위를 쓰기가 곤란해지자 이를 구분하기 위해 도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명예회장을 단순히 직위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쓰는 건 아니다. 통상 창업주나 선대회장이 명예회장이 되면 뒤를 이은 자식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맡는다.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나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 회사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여생을 보냈다. 특히 이동찬 명예회장은 생전 “명예회장이란 그냥 가만히 놔둬야 명예롭다”며 기업가의 관점에서 명예회장을 정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회장들은 법적으로는 물러난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하면서 현역 때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은퇴한 현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칫 노욕(老慾)으로 비칠 수 있었지만, 명예회장으로 명예를 보존하려다 보니 회사 또는 그룹의 미래가 불안정해서, 즉 자식들의 경영 능력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일어난 뒤 그룹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다 보니 명예회장에서 파생된 직위도 많았다. 왕(王)회장, 총회장(總會長), 총괄(總括)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한 언론은 이러한 직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왕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주어진 독보적인 직위였다. 생전 정 회장의 주변에는 여러 명의 아들 회장과 조카 회장은 물론 전문경영인 회장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러자 그룹 내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를 왕회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별세 후에는 며느리 회장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추대됐다.

‘총회장’은 고 최준문 동아건설그룹 창업회장이 창안한 그룹 내부적 지위다. 토목 출신인 최 회장은 미국에서 공부한 장남 최원석 사장(당시, 2023년 별세)이 유학 인맥을 활용해 사우디아라비아 건설공사를 수주하자 회장직을 주고, 자신은 총회장이 됐다. 그 뒤 둘째 아들 최원영(전 경원대학교 이사장)도 사장으로 취임하자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유명세를 치렀던 고 정태수 한보그룹 창업회장도 자신은 총회장이라 칭하며 사세를 과시한 적이 있었다.

‘총괄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회장을 일컫는다. 나이 아흔을 넘어 장남 신동주 부회장(현 SDJ 회장‧광윤사 대표이사), 차남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현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되자 ‘총괄’이라는 명칭을 붙여 경영권을 행사했다.
한편, 재계에 처음으로 ‘회장’ 직위를 탄생시킨 삼성에선 고 이병철 창업회장이나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명예회장을 달지 않았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이병철 창업회장이 병고(病苦)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시기에도 부회장으로 호칭했고, 별세 후에 회장직을 승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이건희 선대회장이 별세한 뒤 2년 후인 2022년에 회장직에 올랐다.

2020년을 전후로 재계는 오너 3, 4세로의 세대교체가 완료됐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선대회장은 명예회장 직위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일부 명예회장은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최근 복귀를 선언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이 그렇고,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창업회장)은 “마지막 꿈”이라며 국내 최대 해운업체인 HMM 인수전에 직접 나섰다.

새로운 시대에 다시 현역에서 뛰는 이들 명예회장이 성공해 기업가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명예를 지켜낼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광경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