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코스피 밸류업과 ELS 배상… 자상한 아버지 (paternalism)

공유
0

[김대호 진단] 코스피 밸류업과 ELS 배상… 자상한 아버지 (paternalism)

홍콩징기 부진으로 H주 연동 ELS 손실이 눈덩이로 늘어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홍콩징기 부진으로 H주 연동 ELS 손실이 눈덩이로 늘어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뜨겁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벽두인 1월 2일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거래소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KBS와 진행한 신년 대담에서도 “외국 자본가들도 국내 투자를 할 수 있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여나가야 한다”며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 해결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우리나라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돼 있는 현상을 말한다. 성장성·유동성·수익성 등의 측면에서 유사한 우리나라 기업과 외국 기업을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식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우리나라의 상대적으로 낮은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증거로 주로 활용된다.
그중에서도 PBR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 심각하다. PBR은 주가와 순자산을 비교해 나타낸 비율이다. 계산 산식은 PBR=주가/주당 순자산가치다. 즉 주가가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을 더한 순자산의 합계에 비해 1주당 몇 배로 거래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PBR은 장부상의 가치로 회사 청산 시 주주가 배당받을 수 있는 자산의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주가를 판단하는 기본 척도가 된다. 예를 들어 PBR이 1이라면 특정 시점의 주가와 기업의 1주당 순자산이 같다는 뜻이다. 이 수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해당 기업의 자산가치가 증시에서 저평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PBR이 1 미만이면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인 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증시에는 이런 기업들이 많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는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 등이 꼽힌다. 회계 불투명성,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 역시 기업가치 평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북한과의 대치 관계에서 오는 지정학적 리스크, 대기업 중심의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가족 중심적 경영권 승계, 경영권 다툼, 편법적인 상속, 높은 외국인투자자 비율로 인한 큰 변동성, 노사구조 그리고 낮은 배당성향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에 투자자들은 환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17일 한 번 더 거래소를 찾아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국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표명 이후 금융위원회는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간담회를 개최해 일본식 성공 모델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예고했다. 한국거래소는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강제성이 결여돼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으나 정부가 앞으로도 시장 의견을 수렴한 뒤 6월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기대는 여전하다. 특히 기업 이익의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한 세정 지원 방안과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벤치마크 지수로 활용할 수 있는 기업가치 우수 기업 중심의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그리고 상법 개정 등에 대한 기대가 크다.

정책은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좀 늦더라도 확실한 지향점을 갖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마련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안은 밸류업을 향한 정부의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금감원 배상안은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들이 투자자들의 손실 중 최대 100%를 대신 물어주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시뮬레이션 결과 실제 배상비율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20~60%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민의 억울한 피해를 최대한 막아보자는 금융당국의 충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면 금융기관이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렇다고 감독 당국이 나서 배상 원칙과 비율까지 획일적으로 제시하고 나선 것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배상해 준다는 금감원의 배상기준은 글로벌 시장 국제 금융시장에서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금감원 배상기준대로라면 워런 버핏이 한국 금융기관을 통해 ELS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보았다고 했을 때에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 손실을 보상해줘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배상안은 판매사 책임을 최대 50%로 설계한 반면 투자자 책임을 최대 45%로 한정하고 있다. 판매사 책임이 더 높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의 이번 배상 지침은 사회학에서 말하는 ‘인자한 아버지(paternalism)’을 연상케 한다. 자식이 잘되도록 헌신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식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돕게 된다. 문제는 아버지가 너무 나서면 오히려 자녀의 경쟁력을 말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사회학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부나 조직이 그 종사자에 대해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모델에 따라 보호·규제하는 체계를 인자한 아버지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이때 그 관계는 아버지가 자녀에 대해 명령적이고 인자한 관계와 유사하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권력자가 지배를 피지배의 최상의 이익 보호라고 주장하여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을 합법화한다. 모든 사람을 어린아이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집단은 점점 더 무능해진다는 것이 인자한 아버지 이론이다. 관치금융이 그 전형적인 예다. 정부가 시시콜콜 나서면서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아왔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지수 조사에서 한국의 금융산업이 아프리카의 우간다보다 뒤처진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이를 "도덕적 해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관치금융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홍콩 H지수에 연동된 ELS 투자 손실은 현재의 주가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6조원 내외로 추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배상기준을 따를 때 은행과 증권사들은 약 2조원 내외를 물어줘야 한다. 배상금은 수익의 악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들 금융기관에 투자한 주주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바로 이러한 예기치 못한 손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쪽으론 밸류업을 하겠다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관치금융으로 우리 기업의 평가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