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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심판이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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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심판이야. 바보야!"

유권자 성향에 따라 경제 인식 판이, 경제 상황보다 인식이 변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지난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현직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를 꺾은 슬로건이다. 클린턴 선거 참모 제임스 카빌이 만든 이 구호는 그 이후 미국과 세계의 주요 선거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이것도 생명을 다한 것 같다. 이 말이 나온 미국에서 “문제는 경제가 아니야, 바보야!”라는 현실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아이러니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의 이 낡은 구호를 카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은 줄곧 “트럼프 정부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 경제 사정이 얼마나 비참하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여론 조사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경제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물가가 18% 올라 바이든이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 바이든 재임 기간 중 누적 임금 상승분이 누적 물가 상승분에 미치지 못해 먹고살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느끼는 미국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공동 조사에서도 바이든의 경제 정책 지지율36%에 그쳤고, 반대59%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거의 60%가 일자리와 생활비 같은 경제적 문제가 대선 결과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유권자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는 80%가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그렇지만, 미국 경제는 유로존,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과 달리 ‘나 홀로’ 질주하고 있다. 경제 성장, 고용, 주식 시장, 소비 지출 등을 보면 ‘군계일학’이다. 미 경제 전문지 배런스는 미국 경제 지표 강세에도 미국인들은 심리적 불경기(vibecession)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소비자들의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에 반영되지 않은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생활비 상승이 미국 소비자짓누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 심리가 정치 성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퓨리서치가 1월에 미국 성인 514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올해 대통령과 의회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응답자의 73%가 경제 강화를 들었다. 그렇지만, 경제가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는 응답률이 민주당 지지자는 63%, 공화당 지지자는 84%에 달했다.

여론 조사 기관 유고브(YouGov)가 지난 1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유권자가 정치 프리즘으로 경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지지자 중 바이든 정부에서 경제가 나아졌다는 비율이 48.9%였으나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이 비율이 6.4%에 불과했다. 바이든 재임 중 경제가 나빠졌다는 응답 비율은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18.8%였으나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71.8%로 올라갔다.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응답률도 민주당 지지자는 39%, 공화당 지지자는 67%를 기록했다.

컬럼비아대 링컨 미첼 정치학 교수는 “1990년대 말까지는 정치 성향이 경제 상황 인식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정치 성향, 개인 경험, 미디어 소비 등에 따라 경제를 달리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4월 총선에서도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 맞선다. 한마디로 총선 결과는 누가 심판대에 오르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심판이야. 바보야!”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