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산책을 즐기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산책이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통해 풍경 속을 걷다 보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록 시선은 밖의 풍경을 향해 있어도 곧 그 시선이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이란 우리를 되비추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산책이야말로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단 하나, 새벽 산책의 아쉬운 점은 내가 좋아하는 꽃을 볼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슴푸레한 어둠을 밟아 걷다 보면 꽃을 지나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이유는 없다. 굳이 ‘시절 인연’이란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고, 봐야 할 꽃은 결국 보게 마련이다. 그 새벽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붉은 꽃잎들이 나의 시선을 배롱나무 가지 끝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란 이명(異名)으로도 불린다. 열흘 붉은 꽃도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배롱나무는 석 달 열흘을 두고 피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래 꽃을 피울 수 있는 비밀은 한 번 피어 백일 붉은 것이 아니라 자잘한 꽃들이 릴레이하듯 끊임없이 피고 지기 때문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꽃을 피우며 석 달 열흘을 꽃나무로 사는 배롱나무를 볼 때면 쉬 지치고 절망하고 포기하기를 습관처럼 되풀이하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꽃들은 내일 질 것을 두려워하며 오늘 꽃 피우기를 망설이는 법이 없다.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이라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들은 태양이 뜨거워도, 폭풍우가 몰아쳐도 자신의 때가 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상을 향해 찬란하게 피어난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내가 오랫동안 꽃에 매료된 데에도 그런 것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한다. 꽃만 보면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맨날 보는 꽃인데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묻는다. 꽤 오랜 시간을 꽃에 관한 글을 써왔으니 그리 묻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세상엔 아직도 내가 아는 꽃보다 모르는 꽃이 더 많고, 익숙한 꽃도 볼 때마다 새롭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관심 또는 흥미를 뜻하는 영어 ‘interest’의 어원은 ‘다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interesse’라고 한다. 낯설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게 인간이지만 새로움은 꼭 처음 접하는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꽃이라도 보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고, 이전과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꽃이 피어나고 또 질 것이다. 찬란한 꽃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철 따라 피는 꽃을 다 볼 수는 없지만 되도록 꽃을 보는 시간을 늘려 가려고 노력한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꽃보다 좋은 거울은 없기 때문이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