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민경철의 법률톡톡] 선의가 위험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법

글로벌이코노믹

[민경철의 법률톡톡] 선의가 위험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법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이미지 확대보기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우리 형법 체계는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두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위험한 상황에 있는 타인을 반드시 도와야 할 법적 의무는 없고, 돕지 않았다고 해서 형사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도덕적 의무까지 강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구조이다.

그러나 이 구조는 역설적으로 “도우면 위험해지고, 안 도우면 안전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의뢰인의 사건이 있었다. 심야 버스에서 A는 만취해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좌우로 흔들리는 B를 보았다. 버스는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했고, B는 언제든 좌석에서 굴러 떨어질 위험이 있어 보였다.

A는 과거 실제 발생한 심각한 버스 사고 사례를 떠올렸고, 결국 버스가 크게 흔들릴 때에만 약 2초간 B의 머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다. 정차하면 즉시 손을 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A는 공중밀집장소추행 혐의로 고소되었고, 경찰과 검찰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결국 기소되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의가 오히려 형사절차로 이어진 것이다. 실의에 빠진 A는 재판을 앞두고 우리측에 이 사건을 의뢰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CCTV 영상이 제출되었고, A가 정차 중에는 B에게 손을 대지 않았으며 버스가 흔들릴 때에만 잠시 지지해 준 사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측 변호인단은 추행의 고의가 없음을 강조했고 결국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A가 무죄를 얻었다고 해서 고통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 신분으로서 수사와 재판을 겪는 과정 자체가 심대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특별한 사례라고 말하기 어렵다.

술 취한 직원을 집에 데려다주다 준강제추행 신고를 당하는 사례, 토사물로 젖은 사람을 도우려다 오해받는 사례, 호의를 베푼 뒤 오히려 민형사상 책임을 주장당하는 사례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치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피해자’로 포장해 이득을 얻으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형사절차는 무혐의를 받아도 피의자 단계에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 시간·비용·평판의 리스크가 발생한다. 그 자체로 개인에게는 커다란 위험이다.

그렇다고 위험한 타인을 방치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주변인 확인, 상황 기록, 불필요한 신체접촉 회피 등 최소한의 대비가 필요하다.

선의가 언제든 오해로 연결되는 구조 속에서, 호의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와주기 위한 준비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형사 현실이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