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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새를 보며 걷는 평화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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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새를 보며 걷는 평화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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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며 걷는 평화누리길, 백승훈 시인
가을 끝자락을 밟아 평화누리길 8코스를 걸었다.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승이 노후를 보냈다는 반구정(伴鷗亭)에서 시작해 임진각까지 약 13㎞의 들길이다. 반구정은 갈매기와 벗하는 정자란 의미인데 반구정에 올랐을 때 내 눈길을 끈 것은 V자 형태로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하늘을 배경으로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나는 모습이 신기해 자꾸만 고개가 젖혀진다. 찬 바람에 잎을 떨군 나무처럼 추수가 끝난 들판은 텅 비어 있다. 휑한 들판을 따라 걷자니 나도 모르게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백창우 시인이 노랫말을 짓고 가수 임희숙이 부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였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텅 빈 만추의 들판과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이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가을 끝자락이어서인지 꽃보다는 열매가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 노란 산국엔 나비와 벌이 꿀을 빠느라 날갯짓이 부산하고 찔레 열매, 노박덩굴 주위로는 새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심심한 들길을 걷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것은 논밭 위로 날았다 앉기를 반복하는 겨울 철새 떼의 움직임이다. 그중에도 우리가 가장 많이 본 것은 기러기와 재두루미였다.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옮겨 다니는 철새는 여름과 겨울 철새로 나뉜다. 겨울 철새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찾는 철새를 말하는데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철새는 130만 마리 120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가창오리·쇠기러기·청둥오리·큰기러기·흰뺨검둥오리 등 오릿과 조류가 가장 많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고니와 두루미·저어새·흑고니도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두루미는 한 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짝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재두루미는 시베리아에서 3000㎞ 이상 날아와 겨울을 보낸 뒤 이듬해 3월 시베리아로 다시 이동한다. 철새들이 이토록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번식하기 좋은 따뜻한 곳을 찾기 위함이다. 새들이 비행할 때 ‘V자’ 대형을 이루는 것은 공기 저항을 줄여 보다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다. 무리 중 가장 힘센 새가 맨 선두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다음 새와 자리를 바꾸어 가며 난다. 이렇게 서로 도와가며 이동하면 혼자 나는 것보다 70% 이상 더 비행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새나 사람이나 혼자일 때보다는 서로 도와가며 어울려 살 때 더 행복할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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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난 들판에 무리 지어 날았다 앉기를 반복하는 기러기 떼와 하늘을 나는 두루미들을 보며 임진각역을 지나 산길을 허위허위 올라 임진강을 굽어보는 장산전망대에 섰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해 연천·적성·파주를 지나 장단을 거쳐 서해로 빠져나가는 긴 강이다. 전망대에서 임진강을 바라보면 이 강의 유일한 섬인 들풀섬(초평도)이 눈앞에 있다. 섬은 우리와 비무장지대(DMZ)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는 형국이지만 그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건 새들뿐이다. 강물 너머로 연무에 가려 희미해진 산봉우리들이 보이는데 가깝지만 갈 수 없는 북녘의 산들이다. 안내판에 적힌 산 이름들을 하나씩 되뇌어 본다. 장군봉, 천덕산, 덕물산, 진봉산, 도라산, 송악산, 극락봉….

장산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화석정까지 걸었다. 율곡의 5대 조가 처음 세운 정자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란길을 밝히려 일부러 불을 내고, 한국전쟁 때 불타서 다시 세웠다. 어린 시절 율곡의 자취가 남아있는 화석정을 떠나 트레킹의 종착점인 율곡 습지를 찾았지만 마침 공사 중이라서 북녘땅 바라보듯 멀리서 일별하고 발길을 돌렸다. 새들은 수천㎞를 날아온다는데 종일토록 발바닥 아프게 걸어온 길이 겨우 13㎞ 남짓이다. 그동안 새들에 대해선 무심했는데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새들의 삶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게 자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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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