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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에너지 분권의 테스트베드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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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에너지 분권의 테스트베드 울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대한민국 에너지 시스템의 ‘동맥경화’가 임계점에 다다랐다. 전기를 만드는 곳과 사용하는 곳이 일치하지 않는 현재의 중앙집중형 전력망은 물리적·사회적·경제적 한계에 부딪혔다.
동해안의 원전,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내려는 송전망 건설은 천문학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으로 멈춰 섰고,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는 전력난 속에서도 인력 확보를 위해 수도권 입지를 고집한다. 이 모순의 돌파구는 ‘에너지 분권’이다.

분산에너지는 단순한 전력 효율 대책이 아니라, 지난 60년간 고착된 대한민국의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는 전략이다. 그동안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균형발전 정책이 추진됐지만, 생산과 고용을 유발하는 공급망의 중심인 기업이 움직이지 않아 실효성이 낮았다.
이제는 강제적 이전이 아닌, ‘에너지 가치’에 기반한 자발적 균형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자치권을 가진 지역이 저렴하고 깨끗한 전기를 무기로 기업을 끌어들이는 구조,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역 시대를 여는 길이다.

울산은 원자력, 해상풍력, 가스발전, 연료전지 발전, ESS 등 다양한 분산에너지자원을 보유하면서 동시에 이를 소비할 초대형 산업단지를 가진 세계 유일의 도시다.
지난해 지정된 ‘분산에너지 특구’는 에너지 분권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울산이 국가 에너지 전환의 테스트베드로 기능해야 하는 이유는 당위가 아니라 현실적 필연이다.

울산이 기업에게 투자 매력을 갖추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와 망 이용료 면제의 결합이다. 발전소 인근 지역은 송전 손실이 거의 없으므로, 울산에서 ‘거리 기반 요금제(LMP)’와 특구 내 직접 거래(PPA)에 대한 망 이용료 감면 실증을 시도해야 한다. 이는 한전의 손실이 아니라, 수도권 초고압 송전망 건설에 들어갈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율적 인센티브로 작동할 것이다.
둘째, RE100 달성을 위한 ‘탄소배출권 연계 PPA’ 모델이다. 부유식 해상풍력 전기를 구매한 기업에 탄소배출권 무상할당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기업은 전력비와 탄소비를 동시에 절감할 수 있다. 이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할 우리 기업의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혁신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행력을 담보할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울산은 지역 내 전력 거래를 중개하고 분산자원을 관리하는 ‘울산형 에너지 거래소’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한전과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 중앙계통의 부담을 덜어주는 지역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자체, 산업단지, 에너지 공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정착하면 울산은 명실상부한 ‘에너지 특별 자치시’로 도약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 변수인 주민 수용성도 공동체적 실리로 해결해야 한다. 울산은 해상풍력 수익 일부를 시민과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투자 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
어민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것은 기본이며, 모든 시민이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열어야 한다. 해상풍력이 기업만의 사업이 아닌 ‘시민의 비즈니스’가 될 때 전폭적인 지지가 가능하다. 이는 신안의 ‘햇빛연금’을 넘어, 전 시민이 에너지 주권과 배당을 향유하는 강력한 지방 모델이 될 것이다.

문제는 법적 체계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실제 운용은 여전히 전기사업법 등 일반법의 틀에 갇혀 있다. 특별법은 기존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풀기 위한 예외 규정이다. 그럼에도 하위 시행령이 일반법의 해석에 의존한다면 법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중앙정부와 국회는 분산에너지법이 실질적 상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령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울산을 특혜의 시각이 아닌 ‘국가 리스크 관리의 전진기지’로 봐야 한다. 전국 시행 전 가능성과 위험을 울산에서 실증·보완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울산에 전력 거래와 요금체계의 자율권을 부여하고, 분산에너지법 내 ‘국가 실증 특례 구역’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 울산이 먼저 시도를 통해 성공의 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패권은 이제 생산 규모가 아니라 ‘운영의 유연성’에서 결정된다. 중국이 자본과 속도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효율성과 민주성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분권으로 대응해야 한다. 울산에서 검증될 요금체계와 PPA 모델은 곧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와 실질적 지방 시대의 해법은 지금, 울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