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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아르키메데스 지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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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아르키메데스 지렛대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기원전 3세기, 시라쿠사의 국왕 히에론 2세는 바닷가에 거대한 무역선 한 척을 띄워놓고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육중한 짐을 가득 실은 채 모래사장에 옴짝달싹 못 하고 얹혀버린 대형 선박을 바다로 되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장정과 소 떼를 동원해도 거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때 천재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나타났다. 도르래와 지렛대로 연결된 기괴한 장치를 배에 연결한 뒤 살짝 당겼다.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백 명이 덤벼도 움직이지 않던 거대한 무역선이 마치 평지를 굴러가는 수레처럼 부드럽게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르키메데스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나에게 서 있을 자리와 충분히 긴 지렛대만 준다면 이 지구도 들어 올려 보이겠나이다."

물리학의 역학 법칙에서 '지렛대의 원리(Principle of the Lever)'는 작고 약한 힘으로 가당치 않은 거대한 무게를 움직이게 만드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지렛대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즉 힘의 배율(레버리지)이 커질수록 그것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Fulcrum)'에 가해지는 압력은 가공할 수준으로 증폭된다. 만약 받침대가 빈약하거나 무리하게 지렛대 끝을 내리누르면 어떻게 되는가. 지렛대는 단번에 부러져 파편이 되며, 그 강렬한 반동은 지렛대를 누르던 주체의 허리를 꺾어버리고 만다. 이것이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역학적 진리다.

근년에 들어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나라는 단연 튀르키예이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증시의 BIST 100 지수는 최근 수년간 가파른 수직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튀르키예는 세계에서 가장 경제가 번창하고 투자 매력이 넘쳐나는 낙원처럼 보인다.아이러니컬하게도 현지 국민들의 삶의 질은 주가 상승에 반비례했다.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 튀르키예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은 바닥을 쳤고 서민들은 하루 한 끼 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그 나라와 국민이 잘살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사례는 없다.

튀르키예 증시 폭등의 비결은 정부의 미친 듯한 통화 팽창과 초저금리 정책이 불러온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이었다. 물가가 연 50~80%씩 폭등하면서 자국 통화인 리라화의 가치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현금을 쥐고 있으면 앉아서 자산을 빼앗기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주식과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으로 마지막 남은 돈을 쏟아부었다.정부는 여기에 연금펀드까지 강제로 동원하여 주가를 떠받치는 극단적인 관제 레버리지를 사용했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주가 부양의 실탄으로 소모하며 지렛대 끝을 강하게 내리누른 결과, 튀르키예 경제는 물가 폭등과 통화 가치 절하라는 치명적인 역풍을 맞이하고 말았다.
주가가 오른다는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경제 펀드멘탈이 좋아진 결과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져야지 오래갈 수 있다. 지렛대를 무리하게 남용하면 그 지렛대가 부러질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의 레버리지 대란을 보고 있노라면 튀르키예 비극이 강건너 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가 5월27일 신규 허가한 '단일종목 2배(2X) 레버리지 ETF' 광풍이 우리 자본시장의 받침대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튀르키예의 비극이 국가 차원의 돈풀기 레버리지가 초래한 파국이라면, 최근 한국 자본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일종목 2X 레버리지 ETF'의 남발은 투자자와 금융 시장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치명적인 금융적 레버리지 폭주다.

정부가 이번에 허가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루 주가 변동 폭을 2배로 추종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금융 당국은 환율 안정과 투자 선택권 확대 그리고 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이러한 고위험 상품을 내놓았다. 그 뜻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나친 도박성이다. 기초체력이 약한 투자자들에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가장 길고 위험한 지렛대'를 쥐여준 것과 다름없다. 레버리지 상품은 매일의 변동률을 2배로 추종한다. 주가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횡보할 경우, 자산 가치는 가만히 있어도 지속적으로 깎여 나간다. 단일종목은 지수보다 변동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이 '음의 복리' 파괴력이 가공할 수준으로 증폭된다. 기업의 장기 성장성과 내재 가치에 투자하는 건전한 자본시장의 본질이 마비되고, 단기 한탕주의와 롤러코스터식 투기판으로 전락한다. 개별 종목에 2배의 레버리지 자금이 쏠리면서 작은 악재에도 투매가 쏟아지며 수시로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고 있다. 이는 결국 금융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극대화하여 예기치 못한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처럼, 변동성이 극심한 단일종목에 2배의 배율을 적용하는 것은 받침대가 부실한 상태에서 지렛대 길이를 무리하게 늘리는 행위다. 주가가 조금만 흔들려도 지렛대는 부러지고, 그 파편은 개미 투자가들의 계좌를 순식간에 토막 내버린다. 우리 정부가 단일 종목 2X 레버리지 ETF를 도입한 것은 일단 환율 안정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서학개미가 해외투자를 국내로 데려옴으로써 달러 유출을 막고 그 힘으로 원화 가치를 올려보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한국 증시를 도박판으로 몰아가고 있다. 환율 방어 효과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눈앞의 주가지수 수치나 일시적인 거래 대금이 아니다. 튀르키예가 통화 팽창과 연기금 강제 동원이라는 인위적 지렛대로 주가를 띄웠다가 경제 펀더멘털이 파괴되었듯, 단일종목 2X 레버리지 ETF와 같은 과도한 금융 레버리지를 방치하는 것은 자본시장의 건강한 생태계를 스스로 파괴하는 자해 행위다.정부의 역할은 투자자들에게 고배율 지렛대를 쥐여주고 투판을 깔아주는 것이 아니다. 투기적 변동성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고, 기업들이 정당하게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단단한 '받침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단일종목 2X 레버리지 ETF와 같은 금융 공학적 변칙으로 껍데기 수치를 부풀리는 것은, 거울 속의 졸렬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거울 위에 칠을 하는 것과 같다. 변동성의 파도가 밀려오면 그 칠은 순식간에 벗겨지며, 그 뒤에 남는 것은 원금을 탕진한 국민들과 피폐해진 자본시장뿐이다.정부가 구축해야 할 자본시장의 미래는 바로 이 건전한 선순환 구조다. 레버리지라는 위험천만한 도구에 의존하는 시장은 작은 충격에도 사상상각(砂上樓閣)처럼 무너져 내린다.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로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비유일 뿐이다. 현실의 자본시장에서 기초체력이라는 받침대 없이 2X 레버리지라는 과도한 지렛대에만 의존해 시장을 들어 올리려 하면 결국 지렛대가 부러질 수 있다. 지렛대가 부러지면 그 지렛대로 만용을 부린 사람들은 목숨을 잃게 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