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민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 협회장
이미지 확대보기내일 오전 감독 점검이 예정돼 있어서다. 위험성 평가서와 교육 이수 현황, 점검 일지를 정리해야 하는데 서류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최신 법령 개정 내용을 반영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같은 시각, 서울 저지대 상권의 배수구에는 낙엽과 생활 쓰레기가 쌓여 가고 있다. 내일 새벽 집중호우가 예보됐지만, 누구도 이 배수구를 점검하지 않는다.
오송 참사, 서울 반지하 침수 사망 사고, SPC 사고. 반복되는 중대재해 앞에서 우리 사회는 법 강화와 처벌을 외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고, 처벌 사례도 늘었다. 그러나 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숫자가 현실을 말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산업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598명이다. 이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 사망자가 354명으로 전체의 59%를 차지한다. 안전관리 인력도 예산도 부족한 곳에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법 규정과 실제 현장 실행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중소기업 안전관리자는 위험성 평가, 현장 점검, 법정 교육 관리, 사고 보고서 작성 등 수십 가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한다. 인력은 부족하고, 법령은 복잡하며, 현장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영세 사업장은 더 심각하다. 안전관리자를 채용할 여력조차 없는 곳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 경고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안전 시스템이다.
침수 사고도 마찬가지다. 도심 침수의 상당수는 하천 범람보다 낙엽, 모래, 생활 쓰레기 등이 배수구를 막아 발생한다. 이물질이 쌓이면 배수 흐름이 차단되고, 도시 배수 시스템은 설계 용량과 무관하게 기능을 상실한다. 침수 피해는 강수량보다 배수 속도를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협회가 한국산업보건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공개한 인공지능(AI) 기반 안전관리 솔루션은 이 간극을 메운다. 시스템은 위험성 평가를 자동화하고, AI 챗봇이 사업장별 법령 요구사항을 실시간 안내한다. 안전관리자는 법령집을 뒤적이며 해석하는 시간을 줄이고, 현장 점검과 개선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 안전 플랫폼은 영세 사업장의 안전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법률 자문, 온라인 교육, 위험성 평가, 단체상해보험 연계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 확산해야 한다. 안전관리자를 고용할 수 없는 사업장도 최소한의 안전 인프라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침수 예방 분야에서는 배수구 내부 이물질 적체를 완화하고, 이물질이 쌓이더라도 배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설계된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침수 위험을 인지한 다수의 지자체가 이를 도입·운영 중이며, 현장에서 배수 기능 유지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반지하 밀집 지역, 저지대 상권, 지하차도 유입부 등 침수 취약 지점에 선제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안전관리는 사람의 경험과 주의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 사람은 실수하고, 피로하며, 한계가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24시간 작동하고, AI는 패턴을 학습하며, 시스템은 반복 가능하다.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는 사고 이력, 점검 결과, 위험 요인을 축적하고 분석해 예방 조치를 자동 제안한다.
현장 관리자는 시스템이 제시한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놓치는 것이 줄어든다.
우리는 사고가 나면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사고 전, 시스템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오늘 준비하지 않은 위험은 내일 누군가의 생명으로 청구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지연된 청구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ESG 시대,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투자다. 환경 못지않게 사회(Social)와 지배구조(Governance)의 기본은 구성원의 안전과 생명권 보장이다. ICT 기반 안전 시스템 도입은 단기적으로 비용이 들지만 사고로 인한 손실, 법적 처벌, 브랜드 훼손을 막는다.
침수 예방은 선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장치와 관리 시스템으로 완성된다. 중대재해도 마찬가지다. 법의 엄격함보다 현장 조건에 최적화된 실질적 위험 저감 효과가 더 중요하다.
데이터·기술·교육·문화가 함께 어우러질 때 안전은 비로소 산업의 기반 인프라가 된다.
이제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법 집행 기관을 넘어 예방 인프라를 설계하는 플랫폼 정부로 전환해야 한다. 처벌과 단속 중심의 사후 대응에서 기술과 데이터에 기반한 사전 예방 체계로 정책의 무게 중심이 이동해야 한다.
새벽 3시, 이제 김 씨는 AI 챗봇에게 묻는다. "이번 주 점검 항목이 뭐죠?" 시스템은 답한다. 우선순위, 법령 근거, 체크리스트까지. 서울 저지대 상권의 배수구에는 배수 공간 확보장치가 설치돼 있다. 낙엽이 쌓여도 물은 흐른다.
ICT는 이렇게 중대재해를 막는다. 처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그 길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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