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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혁의 프롭테크 '썰'] 트래픽 시대는 끝났다, 다음은 '데이터 자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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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혁의 프롭테크 '썰'] 트래픽 시대는 끝났다, 다음은 '데이터 자산'의 시대

주상혁 알스퀘어 IT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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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혁 알스퀘어 IT부문장
10년 전 스타트업의 가치는 숫자로 매겨졌다. 가입자 수, 동시 접속자, 페이지 뷰. 플랫폼에 사람이 몰리면 그 자체가 기업 가치였다. 투자자는 매출이 없어도 트래픽만 보고 수천억 원을 베팅했다. 그런데 이 공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 경쟁력의 무게 중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느냐'에서 '얼마나 쓸 만한 데이터를 축적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사람은 떠나지만 데이터는 남는다. AI가 학습할수록 데이터의 가치는 복리처럼 불어난다. 트래픽이 휘발성 자산이었다면, 데이터는 축적형 자산이다. IT 현장에서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다.

중국은 데이터를 '자산'으로 규정

이 흐름을 가장 빠르게 제도화한 곳은 중국이다. 머니투데이 정유신 서강대 교수의 최근 칼럼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데이터 20조(二十條)'를 통해 데이터의 소유권·유통권·수익권을 법적으로 분리했고, 2024년 1월부터는 중국 회계기준(CAS)에 따라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등재할 수 있도록 공식화했다. 부동산이나 기계설비처럼 데이터도 회사 재산 목록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 제도를 채택한 기업은 시행 첫해인 2024년 3월 20여 곳에서 올해 3월 기준 400~500곳(추정)으로 급증했다.
중국 국가데이터국이 제시한 프레임은 명료하다. 데이터의 가치 실현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서버에 쌓여만 있는 '자원(资源)', 소유권이 확정되고 재무제표에 등재된 '자산(资产)', 투자·융자·거래의 수단이 되는 '자본(资本)'이다. 국내 기업 대부분은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데이터를 열심히 모으고 활용하지만, 재무적으로 얼마짜리인지 평가해본 적은 없다.

데이터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현장


자산 단계를 넘어서면 실제 금융거래가 가능해진다. 중국 경제 전문가 임선영 작가가 오마이뉴스에 최근 기고한 글에 따르면, 저장성 리수이시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리수이시 데이터국은 공공 정무 데이터, 상점 경영 데이터, 은행 신용 데이터를 융합한 플랫폼을 구축해 2026년 1월 기준 전국에 흩어진 리수이 출신 소상공인 3만2900여 곳에 79억5300만 위안(약 1조5000억 원)의 신용을 공여했다. 부동산이 아니라 운영 데이터와 신용 데이터가 담보가 된 것이다.

여기에 블록체인이 결합된다. 상하이 데이터거래소는 2025년 7월 'RDA(Real Data Assets)'를 제안하며 데이터 자산을 토큰화해 거래하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암호화폐 투기와는 다른 맥락이다. 데이터를 생산한 주체, 가공한 주체, 유통한 주체가 각자의 기여분에 따라 스마트 콘트랙트로 수익을 자동 분배받는 구조다. 블록체인이 투기 수단이 아닌 데이터 소유권과 수익 분배를 보증하는 인프라로 전환되고 있다.

문제는 '데이터의 품질'이다

IT 업계에서 데이터를 다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데이터는 양이 아니라 품질이 가치를 결정한다. 아무리 방대해도 누가 어떻게 수집했는지 불분명한 데이터는 AI 학습 단계에서 오류와 편향을 만들어낸다. 반면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검수한 데이터는 그 자체로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 같은 100만 건이라도 크롤러가 긁어모은 데이터와 현장에서 검증된 데이터는 전혀 다른 자산이다. 중국의 제도가 데이터를 '자산'으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도 소유권과 이력을 추적 가능하게 만들어 품질을 제도적으로 담보했기 때문이다.

상업용 부동산 영역에서 알스퀘어가 축적해온 데이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국내 30만 개, 베트남 등 동남아 10만 개를 합쳐 총 40만 곳에 이르는 빌딩 데이터는 전문 인력이 현장을 직접 전수 조사한 결과물이다. 웹에서 긁어모은 정보가 아니라 빌딩 하나하나를 찾아가 구조와 임대 현황, 거래 이력을 확인하고 구조화한 검증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한 설루션 RA는 현재 150여 개 기업이 부동산 의사결정의 근거로 쓰고 있다. AI 시대에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이렇게 현장에서 검증된 버티컬 데이터다. 중국식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미 '자산' 단계로 넘어갈 조건을 갖춘 데이터라고 본다.

제도를 기다리는 사이, 격차는 벌어진다

그러나 국내에서 데이터가 '자산'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여럿 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제도가 아닌 인식이다. 거래가·순영업수익(NOC)·자본환원율(Cap Rate) 같은 부동산 핵심 데이터에 대가를 지불하고 확보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장이다. 검증된 데이터에 구독료를 지불하는 것 자체에 대한 저항이 초기에는 상당했고, 지금도 설득의 허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해외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의 코스타 그룹은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와 분석 서비스를 구독 모델로 제공하며 2024년 연 매출 25억 달러(약 3조6000억 원)를 넘겼고, 이 중 95% 이상이 구독 기반 수익이다. MSCI 산하 Real Capital Analytics(RCA)는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거래 50조 달러 규모의 데이터와 12만 개 이상의 투자자 프로파일을 축적해 기관투자자들이 의사결정의 근거로 구독한다. 브로커·투자자·감정평가사·대출기관이 검증된 데이터에 제값을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시장이다. 같은 데이터라도 한국에서는 '비용'으로 읽히고, 해외에서는 '투자'로 읽힌다. 데이터가 자산으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데이터에 값을 매기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제도적 공백도 크다. 데이터가 공공재인지 사유 자산인지에 대한 법적 정리가 선행되어야 하고, 데이터 자산을 담보로 받아줄 금융 프레임도 아직 없다. 정부의 데이터 가치평가 지원사업도 2025년 기준 가치평가 70건, 품질인증까지 합쳐 115개 기업 규모에 그친다. 지원금도 기업당 최대 1500만 원 수준으로, 제도의 마중물이지 생태계를 바꾸는 동력은 아니다. 그러나 제도가 완비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양질의 데이터를 먼저 쌓고, 검증 프로세스를 체계화한 기업은 판이 바뀌는 순간 가장 앞줄에 서게 된다.

트래픽으로 기업 가치를 줄 세우던 시대는 저물었다. 데이터의 질과 양이 새로운 가치 기준이 되는 시대다. 출발점의 차이가 10년 뒤 격차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