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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엔비디아 빚더미? 젠슨황 "무서운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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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엔비디아 빚더미? 젠슨황 "무서운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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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황 엔비디아 CEO/사진=엔비디아
엔비디아(NVIDIA)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또 한번 흔들고 있다. 월가의 뭉칫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뉴욕증시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가 5년 만에 발행한 회사채에 당초 목표액의 4배가 넘는 850억 달러(약 128조 7000억 원)의 주문이 쏟아졌다. 폭발적인 수요에 고무된 엔비디아는 발행 규모를 250억 달러로 증액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대비 얹어주는 가산금리마저 깎아버릴 만큼 시장의 구애는 뜨거웠다.

이 눈부신 '완판' 신화의 이면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엔비디아는 왜 굳이 지금 돈을 빌리는가?" 지금 엔비디아는 역사상 가장 장사를 잘하고 있는 기업이다. 굴러들어오는 현금이 차고 넘친다. 올해 1월 기준 연간 잉여현금흐름(FCF)만 해도 무려 966억 달러(약 146조 원)에 달한다. 매달 수십 조 원의 쌩쌩한 현금이 금고에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여타 기업들과는 처지가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8조 원이라는 역대급 규모의 '빚'을 자처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 답은 엔비디아를 이끄는 가죽 재킷의 경영자, 젠슨 황(Jensen Huang) 최고경영자(CEO)의 머릿속에 있다. 장사도 잘되고 돈도 많은데, 왜 굳이 회사채를 발행할까?상식적인 경제 관념에서 채권 발행은 '돈이 부족할 때' 선택하는 카드다.

엔비디아가 넘치는 현금을 두고도 회사채 시장을 찾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 첫째가 재무적 유연성(Financial Flexibility)이다. 회사의 현금 흐름이 아무리 좋아도, 보유한 현금을 전량 투자나 운영 자금으로 소진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엔비디아처럼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초대형 인수합병(M&A)과 전략적 투자를 감행하는 기업에 '현금'은 곧 전쟁터의 탄약과 같다. 회사채를 통해 장기 저리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두면, 기존의 잉여현금은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유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언제든 매력적인 매물이 시장에 나오거나 급격한 기술 변곡점이 찾아왔을 때, 시차 없이 곧바로 돈을 투입할 수 있는 '재무적 완충 지대'를 구축한 것이다.

둘째는 자본 비용의 최적화와 레버리지 효과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신용등급은 무디스와 S&P 기준 최고 등급에 준하는 'AA' 단계다. 시장에서 엔비디아라는 기업을 국가 신용도 못지않게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신용도가 정점에 달했을 때 채권을 발행하면 가장 저렴한 비용(낮은 금리)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심지어 이번 수요예측에서는 흥행에 성공하며 가산금리를 0.5%포인트 수준까지 낮췄다. 저금리로 빌린 돈을 활용해 그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자기 자본만 쓰는 것보다 부채를 적절히 활용하는 '레버리지 효과'가 훨씬 이득이다.
셋째는 빅테크 연쇄 발행에 따른 '군비 경쟁' 대응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풍경을 보면 엔비디아만 유별난 행동을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알파벳(200억 달러), 오라클(250억 달러), 아마존(370억 달러), 메타(250억 달러) 등 내로라하는 빅테크 공룡들이 약속이나 한 듯 수십 조 원 규모의 회사채를 무더기로 찍어냈다. 이들은 모두 AI 생태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사활을 건 전면전을 벌이는 중이다. 엔비디아의 이번 채권 발행 역시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판을 주도하기 위한 'AI 실탄 확보' 경쟁의 연장선에 있다. 젠슨 황이 이 38조 원의 실탄으로 그리려는 미래 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구상은 단순히 더 좋은 GPU(그래픽처리장치) 칩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자'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독점 생태계의 고착화'를 노리고 있다.

엔비디아의 투자 행보를 보면 젠슨 황의 의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인텔 지분 50억 달러 상당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생성형 AI의 선두 주자 중 하나인 앤트로픽에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올해 2월에는 챗GPT의 창시자인 오픈AI(OpenAI)에 무려 3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동의했다. 엔비디아는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유망 AI 기업과 플랫폼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이들 투자사는 엔비디아의 자금을 수혈받는 동시에, 엔비디아의 가장 강력하고 충성스러운 고객(Customer)이 된다.

젠슨 황이 구상하는 그림은 거대한 선순환 고리다. 하드웨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자금을 모으고, 이 자금을 다시 AI 전방 산업에 재투자하여 엔비디아 칩에 대한 수요를 영구적으로 창출하는 구조다. 이번에 조달한 250억 달러 역시 이러한 타임라인을 앞당기기 위한 촉매제로 사용될 것이 자명하다. 경쟁사들이 감히 따라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기술적·자본적 진입장벽을 우주 끝까지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토록 대담하고 정교한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젠슨 황은 오늘날 전 세계 기술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이다. 공식 석상마다 입고 나오는 검은색 가죽 재킷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를 넘어 혁신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시가총액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일궈낸 그의 인생 역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인종차별을 딛고 일어서다젠슨 황(본명 황런쉰)은 1963년 대만 타이난에서 탄생했다. 어린 시절 거주지를 태국으로 옮겼다가, 동남아 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지자 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젠슨 황과 그의 형을 미국의 친척 집으로 보냈다. 9세라는 어린 나이에 단신으로 미국 땅을 밟은 것이다. 그가 처음 정착했던 곳은 켄터키주의 한 기숙학교였는데, 실상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거친 아이들이 가득한 낙후된 환경이었다. 매일같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 시절의 경험은 도리어 그에게 강인한 생존력과 끈기를 심어주었다. 이후 오레곤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오레곤 주립대학교에서 전자공학 학사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으며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졸업 후 LSI 로직과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서른이 되던 해인 1993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동료 엔지니어였던 크리스 말라초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미국 식당 체인인 '데니스(Denny's)'의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창업을 결의한 것이다. 당시 그들의 손에 쥐어진 자금은 단돈 4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3D 그래픽'의 미래였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그래픽은 조잡한 수준이었고 비디오 게임은 비주류 문화에 불과했으나, 젠슨 황은 직관적으로 이 시장이 폭발할 것임을 예견했다. 그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엔비디아다. 첫 번째 제품이었던 NV1은 시장에서 처참하게 실패했고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배수의 진을 치고 출시한 리바(RIVA) 시리즈가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겨우 살아난 엔비디아는 1999년, 세계 최초로 'GPU(Graphics Processing Unit)'라는 개념을 정립한 '지포스(GeForce) 256'을 선보이며 PC 그래픽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젠슨 황을 단순한 '게임 칩 제조사 사장'에서 'AI의 아버지'로 진화시킨 결정적 사건은 2006년에 일어났다. 그는 GPU를 그래픽 연산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복잡한 수학 계산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CUDA(쿠다)'를 개발했다.당시 월가와 주주들은 돈도 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년 수억 달러의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젠슨 황을 향해 "미친 짓"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주가는 폭락했고 경영권 흔들기 공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젠슨 황은 흔들리지 않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하게 CUDA 생태계를 밀어붙였다.

젠슨 황의 고집스러운 혜안은 2010년대 중반,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인공지능 혁명이 폭발하면서 비로소 빛을 발했다. AI 학자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병렬로 처리하는 데 엔비디아의 GPU와 CUDA 플랫폼이 가장 완벽한 도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랜 기간 묵묵히 다져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난공불락의 성벽이 되었다. 경쟁사들이 뒤늦게 고성능 AI 칩을 개발해 추격해 와도, 이미 전 세계 개발자들이 엔비디아의 'CUDA' 언어에 종속되어 있었기에 엔비디아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10년 전 주주들의 비난을 받던 젠슨 황의 '미친 짓'이, 오늘날 엔비디아를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넘나드는 지구상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든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가장 잘 나갈 때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경영자엔비디아의 250억 달러 회사채 완판 사건은 단순히 기업이 빚을 내어 자금을 조달했다는 금융 뉴스를 넘어선다. 이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젠슨 황식 '공격적 재무 전략'의 정수다.

그는 돈이 없어 목이 마를 때 우물을 파는 평범한 경영자가 아니다. 이미 강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을 때,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가뭄이나 더 큰 영토 확장을 위해 거대한 댐을 미리 건설하는 인물이다.이민자 소년 시절의 거친 환경을 이겨내고, 파산 위기 속에서도 1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며 CUDA를 뚝심 있게 밀어붙였던 젠슨 황의 DNA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지금, 시장의 저렴한 돈을 끌어모아 AI 제국의 영토를 더 넓히겠다는 그의 대담한 구상 앞에 월가는 기꺼이 128조 원의 주문서로 화답했다. 가장 풍요로운 순간에 가장 잔인한 무기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죽 재킷을 입은 거인 젠슨 황이 AI 시대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