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이자율이 5% 선을 훌쩍 넘어섰다.언뜻 보면 "국가가 돈을 빌리면서 5% 이자를 주는 것이 왜 그렇게 큰일인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숫자는 단순한 채권 상품 하나의 금리가 아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10년짜리 국채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돈의 가격'으로 통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이자가 5%라면, 그보다 신용이 낮은 다른 모든 주체는 5%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자를 얹어주어야만 돈을 빌릴 수 있다. 전 세계 은행의 아파트 담보대출 금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장을 짓기 위해 돈을 빌릴 때 내는 회사채 금리, 한국 정부와 기업이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올 때 내야 하는 금리의 출발점이 바로 이 미국 10년짜리 국채 이자다.
이 기준 이자가 5% 위로 뚫고 올라갔다는 것은 전 세계 모든 경제 주체의 이자 부담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일부 사람들은 "미국 경제가 워낙 튼튼해서 금리가 올라간 것이니 좋은 신호"라고 낙관한다. 채권시장의 실상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의 금리 급등은 경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르고 정부 빚이 통제되지 않을 것 같다"는 시장의 불안과 의심이 폭발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만약 앞으로 10년 동안 라면값, 기름값, 월세가 매년 3~4%씩 오른다고 가정해 보자. 10년 전에 1억 원을 빌려주고 연 3% 이자를 받기로 했다면, 10년 뒤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아도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은 10년 전보다 오히려 줄어든다. 물가가 오르면 화폐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깎여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돈을 묶어두어야 하는 투자자들은 계산기를 두드린다. "물가가 매년 이렇게 오를 것 같으면, 내 돈의 가치가 갉아먹히는 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 연 5% 이상 이자는 받아야 본전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 물가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으니, 채권 투자자들이 부르는 호가(요구 이자)가 5% 위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원인은 '미국 정부의 차용증 남발'이다. 시장에 사과가 흔해지면 사과 가격이 똥값이 되듯이, 채권도 시장에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면 가격이 폭락한다. 지금 미국 정부는 나라 살림에 쓸 돈이 부족해 매달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채를 찍어내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문제는 이 빚문서를 사주던 큰 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미국 중앙은행(연준)이 달러를 찍어 국채를 사들였고, 중국이나 일본 같은 해외 정부도 미국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준조차 보유한 채권을 내다 팔며 돈줄을 죄고 있고, 해외 국가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미국 채권을 덜 사고 있다. 파는 차용증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사려는 손님이 적다. 결국 미국 정부는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이자 4% 줄 테니 사달라", "안 되면 5% 줄 테니 제발 사달라"며 이자를 계속 올려 부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수렁에 빠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한다. "채권 이자가 너무 높아서 난리라면, 미국 중앙은행(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려주거나 인상을 멈춰야 대출 이자나 국채 이자도 함께 내려가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통화정책의 1차원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물가 불안과 채권 불신이 팽배한 국면에서는 이 상식이 완전히 거꾸로 작동한다. 만약 연준이 "경기가 힘드니 기준금리를 멈추거나 내리겠다"고 발표한다면, 시장은 이를 "연준이 물가 잡는 것을 포기했다"는 항복 선언으로 받아들인다.
"중앙은행이 손을 놨으니 앞으로 물가는 더 무섭게 치솟겠구나. 물가가 폭등하면 10년 뒤 내 돈 가치는 휴짓조각이 된다."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은 손에 쥐고 있던 10년짜리 국채를 시장에 헐값으로 내던져 버린다. 채권을 팔려는 사람만 가득하고 사려는 사람이 사라지니 채권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이자는 치솟게 된다. 장기금리를 낮추려다 오히려 폭등의 불씨를 지피는 꼴이다.
이 확신이 드는 순간, 전 세계의 돈 많은 기관투자가들과 자산가들은 일제히 미국 국채를 사기 시작할 것이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면 미국 정부는 더 이상 5%라는 비싼 이자를 부를 필요가 없어진다. 채권 가격이 오르면서 10년짜리 국채 이자는 5%에서 4.5%, 4%로 미끄러지듯 뚝뚝 떨어지게 된다. 결국 중앙은행이 눈앞의 기준금리(단기금리)를 강하게 밀어 올려야만, 시장의 물가 기대 심리를 꺾어놓아 저 멀리 있는 10년짜리 국채금리(장기금리)를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거대한 산불이 온 산을 집어삼키며 마을을 향해 번져올 때 소방관들이 쓰는 최후의 기술이 있다. 바로 산불이 번져오는 길목의 나무를 미리 태워버리는 '맞불 작전'이다. 불이 탈 물질을 미리 없애버림으로써 불길의 숨통을 끊는 방법이다. 지금 미국 연준이 취해야 할 통화정책이 바로 이 맞불 작전과 같다. 연준이 눈앞의 경기 둔화 비판을 두려워하거나 시장의 눈치를 보며 어설프게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완화 신호를 흘리는 것은, 산불 앞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름없다. 물가 불안을 방치하면 장기 국채금리는 5%를 넘어 6%로 폭주할 것이고, 결국 전 세계 경제는 더 큰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기준금리를 올려 돈줄을 죄는 것은 매우 쓰고 고통스러운 약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먼저 치러야만 시장의 인플레이션 불안 심리가 단숨에 꺾이고, 글로벌 큰손들이 10년짜리 국채를 안심하고 사들이기 시작한다. 장기 국채금리 5%라는 괴물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연준의 강력하고 단호한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정공법뿐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