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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영화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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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영화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영화음악을 말하다(하)]
19세기 음악극(Music Drama)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리하르트 바그너(R. Wagner, 1813-1883)는 극적 명료함과 형식상의 응집력을 위해 라이트모티브를 사용했다. 이는 극중인물이나 사물, 또는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와 연관되는 음악적 주제로서, 그 대상이 처음 나타날 때 흐르는 라이트모티브가 같은 대상이 나올 때 마다 재현되어 일종의 표식 역할을 하며 전후관계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누적되기도 하며, 대상이 무대 위에 없는 상황에서 그 대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이야기의 진전에 따라 변형·발전되기도 하며, 라이트모티브 간의 유사성은 그 대상이 서로 관련됨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미지와 모순되는 음악은 역설적으로 쓰여 등장인물 또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관객의 태도를 형성시켜주기도 한다. 로버트 알트만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에 나오는 레오나드 코헨의 노래는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관객은 멀리 떨어진 입장에서 사건을 보게 된다. 교회가 있는 탄광촌으로 팔려 온 창녀들의 모습 위로 울려 퍼지는 노래 ‘자비로운 수녀들’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와 모순된 효과를 준다.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미지 확대보기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음악의 심적 이미지를 영상 이미지로 은유하여 설명한 클리프톤의 개념은 이에 대한 중요한 음악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움직이는 화면에 은유하는 것은 움직이는 화면을 음악에 은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음악이 영화에, 영화가 음악에 은유된다는 것은 음악의 내면이 움직이는 화면이고 영화의 내면이 흐르는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영화음악 이론은 이런 관점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적절한 음악이 수반되었던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의 전투 장면을 본 사람들은, 그 부분이 영화사상 그 어떤 것보다도 훌륭했다고 증언한다. 당시 악보에는 브레일의 창작곡 뿐 아니라 기존의 교향곡, 오페라, 민속음악 등도 삽입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주역들에게 음악 모티브가 주어졌고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나타내기 위한 음악과 특정한 장면을 위한 음악도 쓰였다.
타비아니 형체의 <파트레 파드로네>는 <베를린 천사의 시>같은 이야기의 설정 없이, 인물 내면의 주관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관객 뿐 아니라 극중인물들이 서로의 생각, 심지어 염소의 불평도 들으며 꿈을 꾸며 잠들어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비참한 장면, 혁명의 불길에 휩싸인 장면 위로 흐르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는 주인공의 심리상태, 희망과 동경을 암시한다.

론도와 같은 반복의 구조는 톰 티크베어의 <롤라런(LolaRennt)>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가지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세 가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처음 상황의 시점으로 돌아가 똑같이 반복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주인공이 새로운 선택을 하여 결과를 보여주고, 마지막에 또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여 처음의 상황으로 관객을 이끈다.

색채를 이용한 분리효과는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에서 볼 수 있다. 흑백화면에 붉은 색의 코트를 입은 어린 아이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은 당연히 관객의 주목을 끈다. 이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나약한 존재를 내려다보고 있는 세계를 전쟁의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분리시킨 기법이다. 이런 기법은 단순한 아이러니 효과의 차원을 넘어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여, 커다란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영화는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 없이 여러 개의 상이한 커트를 임의로 이어 붙인 나열(succession)이 아니라, 어떤 목적에 알맞은 의미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계획 하에 이루어지는 진행(progression)이다. 의미의 창출이 필요 없는 다큐멘터리나 영화의 타이틀 백에 장면의 특이성을 보여주기 위해 나열과 같은 편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도멜의 <토토의 천국>, 키에슬롭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이창동의 <박하사탕> 등의 시간구조는 연속, 시간층 등 음악의 시간구조에 유비될 수 있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 끝 부분 역시 음악의 흐름에 기대고 있으며, 밍겔라의 <리플리>도 재즈의 즉흥성을 반영한 것이므로, 이들은 음악구조를 부분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의 인터렉티브 무비는 관객의 선택이라는 우연성을 도입한 점은 우연음악의 구조로 보아도 무방하다.
음악이 의식의 영역 안에 들어와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것은 시나리오상의 구체적인 극적 상황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문제다. 영화에 기여하는 음악의 역할은 그 방법의 종류와 정도에 있어서 확대 심화되어왔다고 할 수 있고 효과적인 영화음악이란 영화 전체와의 관계에서 의미 있는 구성요소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소리가 없는 움직임이란 근본적으로 유리구슬안에 박혀 있은 곤충이나 식물의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슬안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으며 바라보는 우리 역시 그 내부로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말과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시각적 현실은 그 표면만을 볼 수 있을 뿐 그 내면세계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이 수반되면 뭔지 모를 불길함에 휩싸이는 느낌이 강하게 엄습한다. 히치콕은 관객에게 준비하라는 의미로 외견상 평범한 장면에 마음 졸이게 하는 음악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음악적 경고가 거짓으로 사용될 수도 있으나 대개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쓰인다.

영화음악은 정서적인 톤이나 분위기도 중요 동작과 리듬의 일치가 더 중요하다. ‘일반화된 혹은 함축적인 음악(generalized or implicitscoring)으로, 이것은 음악과 동작의 정확한 일치보단 그 시퀀스 전반에 알맞은 정서의 음악을 사용한다. 이 경우 반복되는 테마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며 음색이나 세부적인 리듬, 장식적인 것을 극 전개 상황의 정서에 따라 변형시키되,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시켜 영화 전체의 일관성을 꾀하게 된다.

두 장소의 사건을 교대로 보여주는 경우 두 장소가 반복되지만 가각 시간이 흐른 뒤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장소의 반복, 시간의 대조로 이루어진 씨퀀스로 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 즉, 시간의 반복, 장소의 대조로 이루어진 씨퀀스는 드물다. 예외적으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동일한 시간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다른 집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이전에 이미 나왔던 텔레비전 뉴스가 방영되고 있음에서 이다.

배경음악은 분위기를 변화를 예시하거나 내러티브에 극적 변동이 있을 것임을 암시할 수 있다. 행복한 분위기에 흐르던 음악이, 누군가 문을 노크하기 직전에 단조로 바뀌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같은 주제의 음악이라도 우울하거나 불길한 느낌의 음악은, 누군가가 나쁜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라고 예상하게끔 만들어준다. 히치콕의 <싸이코> 초반부에 여주인공이 운전하는 장면에서 음악을 제거해버리면 평범한 드라이브 장면과 다를 바 없다.

클리프톤이 음악연구의 한 방법으로 그 내면적 구조를 시각적 흐름으로 보았듯이, 영화의 내면적 구조가 음악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표현 방식에는 우리가 살핀 예 외에도 여러 가지 기능성이 있을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미지 확대보기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음악과 화면의 관계에 있어서 음악사용의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동일 장소 즉 내면적 사용으로, 음악이 주인공 또는 장면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경우이다. 이때 음악과 화면의 장소는 일치하며, 음악은 그 세계의 내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비 동일 장소 즉 초월적 사용으로, 음악이 화면의 세계를 벗어나 있는 경우이다. 화면과 음악의 토포스가 일치되지 않는 것이다. 슬로우 모션 역시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가서 이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음악이 효과적으로 쓰이기도 하며, 특수한 내러티브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어떤 인물이나 상황과 연계되어 반복 사용된 테마는 단 몇 마디만 반복되면 그 인물이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서양 오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음악이 언어스토리에 봉사하는 기능을 했던 이태리 오페라가 과거 대부분의 영화라고하면, 음악과 스토리가 한 덩어리를 이루어 성악이 교향곡 안으로 들어간 교향곡의 형태를 띠는 바그너의 ‘음악극’은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적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운드와의 결합 문제가 대두되기 이전의 무성영화시대에 이미 화면 자체의 흐름에서 그 이면의 음악적 흐름, 즉 현상학에서 환원시킨 바의 음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견해는 음악적 심상에서 영상적 이미지를 찾고자 했던 클리프톤의 이론을 상기시킨다. 전위영화가 음악의 구조를 차용한 경우라면, 클리프톤의 이론은 음악이 영화의 움직이는 화면구조를 차용하는 경우를 내다본 것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음악은 영화 전체의 색감을 정해주며, <돈>에 유일하게 쓰인 내재 음악은 주제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위의 두 경우와는 달리 음악이 영화의 움직이는 화면구조를 차용하는 경우처럼, 영화가 음악의 구조를 차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앙세르메에 의하면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지배하는 것은 움직이는 화면이다. 음악의 흐름 이면에 동물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이다. 음악이 움직이는 화면으로부터 음악적 구조를 만들듯, 영화 역시 음악에서 영화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음악의 추상적 구조를 차용한 실험영화는 물론, 극영화에서도 상당수가 음악의 내면적 흐름에 힘입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슈미트는 『영화음악의 실제』에서 무성영화 시대 음악의 기본 특성을 정리하면서 1914년까지는 피아노, 그 후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당시 음악은 영화를 생생하게 만들어 주었고 스케일이 큰 상연물로서의 영화는 오락과 여흥을 꾀하는 관객들에게 음악회와 발레를 보러가자고 했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었다고 얘기한다. 시각 자료와 청각 자료가 새로운 형태로 결합된 문화를 누리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음악이 영화를 더 생생하게 만들어 주었다. 무성영화에 음악이 함께 연주되지 않았다면 그 화면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일상의 소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면이므로 현실로부터 독립된 스스로 살아있는 장면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정순영 한국국제예술원 작곡과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정순영 한국국제예술원 작곡과 교수
현대는 그 이미지의 재현성이 강한 영화일수록 여러 타입의 음악을 요구하며, 청중에겐 스크린을 통해 시각적 세계를 탐색하는 시간이기에 현실적이며 미학적인 요소를 결합한 영화음악, 즉 멜리에스가 주장한 리얼리즘적 영화음악이 절실한 시기가 분명하다. 고유한 영화음악의 발전은 영화 내러티브 속에서 고유한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융합한 창의적 산물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며 영화마다 ‘공간의 시간화’란 영화음악의 특성도 염두해둬야 할 사항이다. 영화가 품고 있는 순간성도 관객을 통제하므로 스크린공간과 어두움 등의 벡터는 청각을 강제하며 음악에 유입되게 한다. 만약 영화에 음악이 없다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전적으로 소멸될 것이다. 동질화된 평면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편안하게 만든 영화음악은 어느새 심도 있는 스크린을 통해 현실을 구성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정순영 한국국제예술원 작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