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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창업주 열전] 기이치로 도요타...일본 자동차 사업은 천왕의 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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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창업주 열전] 기이치로 도요타...일본 자동차 사업은 천왕의 밀명?

세계최대의 자동차메이커인 도요타 자동차는 기이치로 도요다가 일본 천왕의 명을 받아 시작한 것이다.
세계최대의 자동차메이커인 도요타 자동차는 기이치로 도요다가 일본 천왕의 명을 받아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도요타 자동차를 만든 이는 ‘도요타 기이치로’이다.

일본어로는 ‘豊田喜一郞’으로 표기한다.
1894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일본 근대화의 대부로 추앙받는 ‘도요타 사키치’의 아들이다.

도쿄대 기계공학과 재학시절 자동차의 꿈을 불태웠다.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이 일본에 쏟아져 들어오던 모습을 보고 일본의 한 공학도로서 ‘우리도 자동차를 한 번 만들어보자’라는 꿈을 갖게 된 것.

그후 유럽과 미국 시찰을 다녀오면서 자동차에 인생을 걸기로 다짐하기에 이른다.

아버지가 발명한 자동직기 특허권을 영국에 팔아 그 자금으로 자동차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33년 도요타자동직기의 한 사업부로 자동차연구소를 개설했다.

도요타 사람들은 그때를 회사의 기원으로 잡고 있다.

기이치로의 인생을 건 꿈이자 도요타 가문의 꿈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경제대국을 향한 꿈을 한꺼번에 잉태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1936년 마침내 일본인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인 ‘AA형’을 선보였다.

자동차 개발은 일본천왕의 명이기도 했다.

1927년 쇼와(昭和)천왕이 그의 부친인 사키치를 초치한 적이 있다.

산업화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였다.

이 때 쇼와천황은 사카치에게 자동차 개발을 당부한다.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던 일본으로서는 기동성을 위해서라도 일본산 자동차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사키치는 그 왕명을 아들인 기이치로에게 전수했다.

기이치로는 1941년 도요타자동차공업 제2대 사장에 취임했다.

그해 태평양전쟁이 터졌다.

전쟁특수를 타고 자동차 매출은 크게 늘었다.

새로 개발한 도요타 트럭이 특히 전쟁터에서 요긴하게 사용됐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기이치로에게도 위기가 왔다.

경영부진으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감원을 단행했는데 그로 인해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결국 기이치로는 1950년 4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이후 도요타자동차는 한국전 특수를 맞아 다시 일어섰다.

대정봉환이라는 이름아래 도요타 자동차의 적손인 기이치로가 다시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복귀를 준비하던 중 1952년 뇌일혈로 쓰러져 홀연히 세상을 떴다.

이때가 그의 나이 58세였다.
김대호 연구소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