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6 07:25
강마을은 ‘소만’ 무렵입니다. 소만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드는 절기로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보리밭에 계절의 더께가 내려앉아 황금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모심기를 하기 위해 물 잡아 놓은 논 옆에는 푸른 잔디 같은 모판이 보입니다. 초록으로 빽빽한 작은 모들은 며칠 후면 이앙기에 실려 논에 칫솔처럼 송송 심어질 것입니다.사춘기 소년처럼 머쓱한 모습의 그네들은 늦은 봄과 이른 여름 사이 질퍽한 논에서 비와 햇살에 의지하여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의 모습 같습니다. 총총한 모습이며 초록빛 싱그러운 색감, 이제 더 넓은 대지를 향해 가야하는 서툰 발걸음이 어여쁩니다. 이렇게 초록은 성장하는 젊은이 같은 색채입니다. 저는 그 색채를 무척 좋아합니다. 햇살에 잎맥이 드러나는 벚꽃나무 이파리의 초록과 반짝이는 사철나무의 연초록과 칠엽수의 넓다란 초록 잎사귀 그늘을 사랑합니다. 온 세상이 기분 좋은 초록으로 가득한 오월입니다.아침 독서시간,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서가로 가서 몇 권의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침에 본 초록빛 모판을 생각하며 책을 뽑았습니다. 하마모토 다카시의 ‘색채의 미학’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데 엽서 한 장이 나옵니다. 연필로 연꽃을 그린 엽서입니다. 아마 책을 읽으며 엽서를 쓰고 책 사이에 끼워두었나 봅니다. 그 엽서의 주인인 저도 잊고 있었던 엽서입니다. 받는 이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썼을까를 오래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9년 1월 18일, 그 때 저는 누구에게 이 연꽃엽서 한 장을 보내려 하였을까요? 생각은 꼬리를 물고 저는 초록의 물결이 온 산과 들을 뒤덮고 있는 강마을 풍경이 보이는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펼칩니다. 어느 눈 내리는 날, 왕비가 흑단으로 만들어진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바늘에 손가락을 찔렀습니다. 새하얀 눈 위에 빨간 피가 세 방울 떨어집니다. “눈처럼 하얀 피부, 피처럼 빨간 입술, 흑단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딸이 있다면.2016.05.12 07:58
푸른 강물 위로 오월이 흐르는 강마을은 신록이 참으로 싱그럽습니다. 모심기를 위해 물 잡은 논에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비라도 오면 청개구리가 먼저 알고 목청을 높입니다.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섭니다.자연은 참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자연(自然)'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입니다.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겠지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월의 신록이나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처럼 말입니다.모두가 어려운 때입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어 하고, 중년들은 직장에서 막판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노년층은 빈곤과 푸대접으로 모진 추위를 견뎌야 합니다. 아, 오월은 신록은 너무나 아름답고 세월은 자연적으로 흘러가지만, 이 눈부신 꽃 잔치에 소외된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해가 나오듯이 겨울이 지나가면 봄은 반드시 오듯이 지금 우리의 삶이 팍팍해도 함께 서로를 배려하면서 같이 간다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어쩌면 일제강점기 앞과 뒤를 돌아보아도 한 발 재껴 디딜 곳조차 없던 시대에 이미륵 선생이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제의 억압을 피해 독일 땅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공부하고 문단 생활과 강의를 하다가 향년 51세의 나이로 쓸쓸히 타향에서 잠든 분입니다. 교실 학급 문고를 정리하다 보니, 아주 오래된 문고판 책이 발견되었습니다. 전혜린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압록강은 흐른다'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 전혜린의 수필을 읽으며 잠 못 드는 밤이 참 많았습니다. 언젠가 그녀의 글에 나오는 독일의 슈바빙을 꼭 가보리라. 그리고 회색 보도와 오렌지색 등이 있는 뮌헨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 시절의 벗처럼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읽었습니다. 오월의 신록처럼 싱그럽고 서정적인 글은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륵의 유년시절부터2016.04.29 05:57
무수하게 피었던 봄꽃들이 떠난 강마을에는 꽃진 자리마다 생겨난 작은 열매들이 봄비에 젖어 있습니다. 유난히 열매를 많이 달았던 매화나무는 ‘후두둑 후두둑’ 생살 찢는 소리를 내면서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세상의 이치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소유라는 말은 많은 것을 자기 속에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계절은 소유하지 않고 피었다 지는 봄꽃처럼 미련 없이 떠나고 다시 돌아옵니다. 봄과 여름의 경계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저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더 매력적인 '북유럽 신화'를 읽습니다.유럽의 신화는 알프스 산맥 이남 지중해 지역에서 생겨난 그리스 신화와 알프스 산맥 이북의 광범위한 유럽지역에 퍼져 있는 북유럽 신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 신화는 큰 인기를 누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재미있는 북유럽 신화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반지전쟁, 호빗, 해리포터 등과 같은 소설,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에 힘입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주를 이루는 것은 신들과 거인, 난쟁이들이 서로 대립하며, 수많은 형태의 내기, 겨루기, 보물, 모험 등이 보여집니다.신과 거인의 조상태초의 거대한 생명이 탄생하니 태초 거인 이미르와 거대한 암소 아우둠라 한 마리가 저절로 생겨난다. 태초 거인 이미르는 아우둠라의 젖을 먹고 살았다. 암소는 소금기 섞인 돌을 핥고 살았다. 암소가 소금돌을 핥자 남자 부르(Buri)가 생겨나고 신들의 조상이다. 그는 아내도 없이 혼자서 아들 ‘뵈르’를 낳았다. 뵈르는 뒷날 거인 여인 베스틀라와 짝을 이루어 오딘, 베, 빌리 세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태초 거인 이미르는 젖을 먹고 열심히 잠을 자면서 계속 거인들을 낳았다. 뵈르의 아들들은 거인들이 이렇게 많아지자 거인 이미르를 죽었다. 이 때 거인의 몸에서 엄청나게 많은 피가 흘러나와 그 피가 바다가 되었고 이 바닷물에 파묻혀 거인들도 모두 빠져죽었다. 오딘과 형제들은 죽은 이미르의 몸으로 이 세계를 만들었다. 이미르의 뼈는 산과 낭떠러지가 되고 작은 뼈와 이빨은 돌덩이가 되2016.04.14 08:53
난만한 봄풍경이 펼쳐진 강마을에 봄은 그 자체로 단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복사꽃, 배꽃, 수수꽃다리, 조팝나무꽃은 꽃구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슴 뛰게 아름다운 봄 풍경 앞에서 책을 펼칩니다. 푸른 바다 내음이 풍겨 날 듯 한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입니다. 이 책을 쓴 앤 미로 린드버그 여사는 미국의 작가이자 뛰어난 수필가입니다. 바다의 선물은 여성을 위한 책이라고 하겠지만, 인간의 내면의 성장의 지침서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하나의 조그마한 조개를 통해 인간관계와 우주, 자연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는 통찰력이 경이롭기 까지 합니다. 해변에 도착하여 작은 작은 조개 고등에서 이어진 사고 확대는 수필이 지향해야한 철학적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바다는 너무 극성스럽고 욕심을 부리고 안달하는 사람에겐 보답을 베풀지 않는 법. 보물을 찾다 파헤친다는 건 무엇인가. 초조하게 안달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신념의 결핍을 나타낸다. 참을성, 참을성, 참을성, - 이것이 바다의 가르침인 것이다. 참을성과 신념, 사람들은 텅빈, 시원스레 트인, 허심탄회한 해변 같은 마음으로 바다가 보내는 선물을 기다려야 한다. /해변 린드버그 여사는 바다가 보내는 선물은 욕심이 아닌 신념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2016.03.31 11:59
경칩을 며칠 앞 둔 이월의 끝자락에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를 찾아 경남 거창의 사병리변씨 고가를 찾아 갔습니다. ‘저항 문학의 백미, ’거창가’를 국문학자인 조규익 교수께서 강의하셨습니다. 춥고 불편한 자리였지만, 민중의 저항을 미학적으로 승화한 ‘거창가’에 대해 거창가의 실질적 발견지인 고택에서 듣는 멋이 참 쏠쏠하였습니다.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는 그 때 강의를 하셨던 조규익 교수가 풀브라이트 재단 수혜자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서 연구와 더불어 오클라호마를 꼼꼼하게 훑어보며 쓴 기행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지성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였습니다. 공부하러 가서 그 곳을 여행하고 탐구하고 다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는 그 여정은 지성의 다른 이름이며, 제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입니다. 어느 곳이나 알아야 할 역사가 있고 그 곳에 사는 다른 모습을 지켜보고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내 삶과 연결시켜 기록해야 우리의 후학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여행기를 적는 일에 소홀했던 저를 반성하였습니다. 보물 1.스틸워터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 그 안식과 탐구의 낙원1. 역사학과 학생들에게 특강역사학과 학생을 위한 특강 후 미국과 같은 영향력 있는 나라에 우리의 역사를 교육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2016.03.17 13:52
제가 있는 강마을의 봄은 향기롭습니다. 학교 화단에는 작고 여린 풀꽃들이 다투어 피어납니다. 파아란 개불알풀꽃, 진홍의 광대나물꽃, 별꽃, 냉이꽃, 꽃다지, 민들레…. 참 어여쁩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봄은 잔인한 계절입니다. 수많은 계획의 물결 속에서 공문이 넘쳐납니다. 꽃샘 추위에 감기 든 아이들의 상기된 볼이 안쓰럽습니다. 이 봄날 우리들은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삼월의 봄꽃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슬프게 스러져간 19세기 러시아의 여인 ‘안나’를 만나야겠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안나 카레니나는 다소 재미없고 나이차는 나지만 부유하고 능력 있는 남편, 사랑스러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교양 있고 사랑스러운 사교계의 꽃입니다. 그녀는 젊고 멋지며 격정적인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 그 사랑에 몸을 던집니다. 감각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의 화신인 안나와 브론스키에 대비되는 커플은 청렴한 지주 ‘레빈’과 ‘키티’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정직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영혼의 순수성이 곁들여져 아름답고 성스럽습니다. 레빈은 톨스토이 자신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철학적이고 도덕적입니다. 끊임없이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인물로 레빈과 키티는 이상적인 부부상에 가장 근접해 있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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