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배터리 생산 기지화로 동남아 시장 공략... "공급망 파괴" 우려 확산
BYD·만리장성 등 20개 이상 브랜드 진출... 일본 기업 시장 점유율 하락세
BYD·만리장성 등 20개 이상 브랜드 진출... 일본 기업 시장 점유율 하락세

방콕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태국의 동부경제회랑(EEC)에는 주요 도로를 따라 중국 기업들의 새로운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특히 배터리 제조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가 두드러지는데,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Sunwoda Electronic은 전기 자동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이 공장의 가장 주목할 점은 핵심 부품인 배터리 셀을 현지에서 생산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태국 정부 관계자는 이 공장이 동남아시아에서 자체 배터리 셀을 생산하는 첫 번째 공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양산은 올해 안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BYD, 만리장성 자동차 등 20개 이상의 중국 자동차 브랜드가 태국에 진출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EEC 지역에서 현지 EV 생산을 시작했다. 특히 2024년 7월 생산을 시작한 BYD의 공장이 이러한 공급망 성장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Sunwoda 외에도 배터리 제조업체인 CALB, Gotion, SVOLT Energy Technology도 태국에 입주했으며, 일부는 이미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 선두 기업인 CATL은 태국 국영 석유그룹 PTT와 합작으로 공장을 건설 중이다.
중국 제조업체들의 태국 진출은 2018년경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가속화됐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스(MarkLines), 태국 정부 및 기타 출처의 데이터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 부문에서 중국이 투자한 태국 기업의 수는 3월 현재 165개에 달해 2017년 말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 설립한 기업 수는 2023년 7,000개를 넘어섰으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해 중국의 동남아시아 직접 투자액은 250억 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섀시 및 기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닝보 퉈푸 그룹(Ningbo Tuopu Group)은 4월 중순 태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 최대 3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이번 조치가 더 많은 주문을 수주하고 중요한 외국 고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 부과 등 미국의 통상 압력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중국 기업들은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은 미국에 수출하는 완성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타이어와 같은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부 현지 기업들은 중국 공급업체의 급속한 성장을 경계하고 있다. 태국 자동차 부품 제조업 협회 회장인 솜폴 타나둠롱삭(Sompol Tanadumrongsak)은 중국 기업들의 추가 진출이 "기존 공급망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60년대부터 태국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현재 약 1,400개로 성장한 현지 공급업체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많은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가 현지 기업과 합작 투자를 통해 수직적으로 통합된 산업 피라미드를 형성해왔다.
이에 비해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일본 공급망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자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주요 자동차 회사가 주문한 부품의 납기는 일본 자동차 회사의 30% 수준으로 훨씬 짧다. 또한, 중국 기업들은 배터리와 같은 핵심 부품을 자체적으로 제조하거나 관련 중국 공급업체로부터 조달하는 경향이 강하다.
솜폴 협회장은 "태국 공급업체들은 중국의 태국 진출로 인해 완전한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대형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타이 서밋 그룹의 한 임원은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중국 공급업체가 만든 가격 경쟁력 있는 부품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에서 중국 부품에 의존할 경우, 태국 내 일본 공급업체들이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요타 자동차, 혼다 자동차 및 기타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현재 태국 신차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중국 경쟁업체들의 공격적인 진출로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특히 전기차 부문에서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기존 일본 기업들의 위상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남아시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인 태국의 산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와 일본 공급망과는 독립적인 생태계 구축은 향후 아시아 자동차 산업의 패권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