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 코로나 대출 탕감·조정 위한 '배드뱅크' 설립 본격화
정부 재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은행 출자 요구할지 촉각
정부 재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은행 출자 요구할지 촉각

일각에선 위기 때마다 땜질식 빚 탕감 정책은 자칫 국가가 채무를 책임진다는 잘못된 시그널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9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이 윤석열 정부 상생금융에 이어 이재명 정부의 ‘빚 탕감’ 정책에 시름하고 있다. 이는 최근 금융위원회가 코로나 대출 탕감·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 검토에 착수한 데 따른 것이다.
배드뱅크는 금융사로부터 부실 채권을 사들여 정리하는 기관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다른 나라는 국가 부채를 감수하면서 코로나19 피해를 책임졌던 반면에 한국은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응해 결국 국민 빚만 늘렸다"며 코로나 대출의 적극적인 채무 탕감을 강조하면서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배드뱅크 설립을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재원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오는 9월 말까지 만기가 연장된 코로나 대출은 47조4000억 원,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대출은 2조5000억 원 규모로 총 50조 원 규모다. 금융당국은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에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처를 적용해 왔다. 만기는 6개월 단위로 네 차례 연장됐고, 2022년 9월에는 최장 3년 유예됐다.
만기를 앞둔 채권 규모는 약 50조 원으로 배드뱅크가 개인 무담보대출 채권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를 30% 가격에 매입한다면 약 15조 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은 '20조 원+α'의 2차 추경 편성을 예고한 상태지만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만 13조 원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정부의 배드뱅크 출자 여력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결국 정부의 코로나 빚 탕감의 최대 희생양은 은행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은행권은 윤석열 정부에서 2조 원 넘는 상생금융에 반강제적으로 동원된 바 있어 새 정부로부터 받게 될 청구서에 긴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네 차례 인하로 금리 인하기가 이어지면서 이자이익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인 데다 여당이 서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은행이 대출금리에 적용하는 가산금리 산정 시 각종 출연금 등 법적 비용을 전가하지 않도록 은행법 개정에 나서면서 부담이 더욱 커진 모습이다. 은행권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대출금리가 평균 0.2%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드뱅크 설립의 취지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직접적인 지원을 실시한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만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응해 생긴 부채라면 국가가 이를 책임지는 게 맞다"면서 "최근 새 정부 출범으로 인한 '밸류업' 기대감에 외국인들이 은행주 투자를 늘리면서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모럴 해저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빚 탕감 정책은 성실 상환자에 대한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또한 위기 때마다 땜빵식 빚 탕감 정책은 자칫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국가와 금융기관이 채무를 책임져 준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시장에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