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국제정치학 박사)

2000년대 초만 해도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자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수압파쇄(fracking)와 수평시추 기술의 결합으로 셰일 자원의 생산성이 극적으로 향상되었고, 2018년에는 원유 생산량 세계 1위, 2019년에는 LNG 순수출국에 올라섰다. 그 결과, 자국 내 에너지 자립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균형을 흔드는 ‘질서 설계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셰일 개발은 1980년대부터 수십 년간 민간 기업의 기술 혁신,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정책 유도, 시장 기반 자본의 축적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였다.
초기에는 수익성 부족과 환경 리스크로 인해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기술 실증과 지속적인 축적을 통해 전략 자산으로 완성되었다. 에너지 독립이 달성되자 미국은 그러잖아도 강했던 외교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킬 레버리지를 추가로 확보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은 미국산 LNG 도입을 확대하며 러시아 의존도를 빠르게 줄였고, 워싱턴은 이를 새로운 에너지 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국가 재정을 헛되이 쓰지 말자는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90%를 넘는 나라가 직면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자원 빈국 이스라엘은 주변 산유국마저 적대적이어서 자칫하면 국가의 생존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50년대부터 해양 시추에 도전했지만 수십 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미국 노블에너지(Noble Energy)와 이스라엘 파트너들이 협력하여 동지중해 심해에서 본격적인 탐사를 재개했고, 마침내 2009년 타마르(Tamar), 2010년 레비아탄(Leviathan) 가스전을 연이어 발견했다. 이를 통해 자국 전력의 70% 이상을 충당하는 동시에, 이집트·유럽 등과의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며 중동의 새로운 전략국으로 부상하였다.
가이아나는 100년 넘는 실패 끝에 2015년 엑슨모빌과 함께 대형 유전을 발견했고, 2019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수출에 돌입했다. 이를 기반으로 최근에는 연평균 30%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자원 수익을 바탕으로 국부펀드를 조성해 공공 인프라와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탐사에서 기술, 자본, 전략으로 이어지는 완성형 모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이란전쟁, 미중간 패권경쟁,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 인도와 중국간 국경분쟁,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태평양 등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국제정치가 혼란에 빠질 때마다 기업과 시민들이 직면하고 마주칠 불안을 해소해주는 따뜻한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국내 연근해의 가스전 및 유전 발굴은 ‘실증에 기반한 기술력 축적’이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기술개발을 중단하면 애써 확보해 놓은 기술력은 유지되지 않고 퇴보한다. 나중에는 간단한 의사결정조차 타국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해양플랜트·조선기자재·정밀 제어와 같은 관련 영역에도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동해가스전 운영 경험을 계승할 인력이 축소되고 있으며, 해양 시추 기술의 장비 국산화율도 정체된 상태다. 기술 실증은 국가 전략의 신호탄이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민간은 이를 바탕으로 인프라 투자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뮤지컬처럼 정교하게 연출되어야 한다. 무대 위 배우가 제 역할을 마치기도 전에 조명이 꺼지고, 새로운 배우가 등장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면 공연은 혼란스럽고 감동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대규모 해상풍력과 같은 실력 있는 재생에너지의 등장이 예고된 상태에서 오래된 원전 고리1호기를 퇴장시키는 전략이 공감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