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급 신뢰가 계약 물꼬 터
HBM 주고 GPU 받는다…'공급-수요 동맹'으로 3사 경쟁 체제 본격화
HBM 주고 GPU 받는다…'공급-수요 동맹'으로 3사 경쟁 체제 본격화

11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두 회사는 공급 물량, 단가, 그리고 구체적인 공급 일정 등 세부 사항을 조율하는 최종 협상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세계 HBM 시장의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를 다시금 핵심 협력사로 확보하고 메모리 반도체 최강자의 자존심을 회복할 발판을 마련했다.
19개월의 와신상담, 최고위급 외교로 넘었다
이번 공급 확정은 삼성이 2024년 초 HBM3의 안정성 문제로 주춤한 아픔을 딛고 약 19개월의 공백을 깨고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 생태계로 화려하게 복귀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시장의 주류가 차세대 제품인 6세대 HBM(HBM4)으로의 전환을 앞둔 때라는 점에서 GB300용 HBM3E의 공급 물량 자체가 한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삼성이 그간의 기술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세계 최대 고객사의 신뢰를 다시 확보했다는 사실 자체에 더 큰 뜻을 두고 있다. 엔비디아가 품질을 확신하고 삼성 제품을 채택한 만큼, 현재 진행 중인 HBM4의 테스트 역시 예정보다 일찍 통과할 수 있으리라는 밝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따라서 2026년부터 본격화할 HBM4 시장에서는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사 경쟁 구도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업계 일부에서는 이번 성사의 배경에 이재용 회장의 '발로 뛰는 경영'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2025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뒤, 이 회장은 경영 활동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내며 세계 고객사들과 관계 복원에 힘써왔다. 특히 이 기간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와도 여러 차례 만나 두 회사 간 신뢰를 다지고 기술 협력의 물꼬를 튼 것으로 전해져, 최고 경영진의 역할이 컸음을 시사한다. 한동안 경쟁사에 뒤처졌다는 시장의 우려를 씻어내고, 최고 경영자의 직접 소통과 의지가 기술 한계를 돌파하는 힘이 된 셈이다.
HBM 공급 넘어 AI 동맹으로…재편되는 시장 구도
이 회장은 젠슨 황 최고경영자에게 엔비디아 GPU 5만 개를 구매할 뜻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GPU의 구체적인 쓰임새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삼성의 회사 차원 AI 전환(AX) 사업 추진, AI 반도체 연구개발과 자체 거대언어모델 학습을 위한 클러스터 구축, 그리고 삼성이 오픈AI와 함께 대한민국 포항에 짓고 있는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기반 시설로 투입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부품 거래를 넘어, 삼성이 HBM을 공급하고 엔비디아의 GPU를 확보하는 '상호 공급-수요 협력 구조'를 만들어 AI 기반 시설과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여러 방면의 전략으로 읽힌다.
이번 계약은 세계 HBM 시장에 곧바로 파급 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그간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중심으로 운영되던 엔비디아의 HBM 공급망에 삼성이 강력한 경쟁자로 다시 들어옴에 따라, 시장은 견고한 3사 경쟁 체제로 재편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특히 삼성의 12단 HBM3E는 고집적 쌓기 기술을 바탕으로 대역폭과 용량 효율성에서 강점을 지녀, GB300의 데이터 처리 성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멀리 보면 엔비디아의 공급망 위험 분산, 삼성의 메모리 사업 수익성 높이기, 그리고 AI 가속기 생산량 확대에 따른 서버 시장 안정화 등 산업 전반에 좋은 연쇄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