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3% 턱걸이…"공공부채, 1948년 이후 최고치 이를 것"
미·중, 이달 말 韓서 정상회담 추진…'데탕트' 마지막 기회 될까
미·중, 이달 말 韓서 정상회담 추진…'데탕트' 마지막 기회 될까

18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가 당파 대립 탓에 3주째 문을 닫은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는 안도와 공포가 엇갈리는 자리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고율 관세가 예상보다 심각한 경기 침체를 부르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그 후폭풍이 이제 막 물가 상승과 기업 수익성 악화, 투자 지연의 형태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공포감이 회의장을 짓눌렀다.
총회 개막 직전, 미국은 첨단 기술을,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로 맞서면서 두 나라 갈등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비공개 회의에서 중국 쪽 협상대표를 두고 "정신이 흔들리고 혼자 행동한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외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부분 관료가 공개 발언을 꺼리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위기 관리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냉정함을 주문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과 중국의 상품 수출 공세라는 이중 충격에도 각국이 보복 조치를 자제한 것이 세계 경제의 추락을 막는 완충재 노릇을 했다고 평가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지난 목요일 블룸버그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우리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모든 정책 당국자는 침착함을 유지하라. 그리고 중국에는 다른 나라들이 중국 경제를 위협으로 여기지 않도록 신중히 대응하라고 조언한다"고 밝혔다.
닷컴 버블 닮은 AI 열풍, 시장은 '살얼음판'
그러나 그는 경고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 세계 공공부채가 2030년대 후반 GDP 대비 100%를 웃돌아 194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정 문제가 심각한 만큼 "결코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장 아르헨티나는 통화가치 폭락으로 미국한테서 2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시장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상 최고치 부근을 맴돌던 주식 시장은 한 주 내내 미·중 무역 갈등 소식에 거칠게 요동쳤다. 특히 최근 증시 상승을 이끈 미국 AI 반도체 주식의 과열 양상은 중앙은행 총재들과 금융 감독 당국자들의 단골 경고 소재로 떠올랐다. 높은 자산 가격, 금융 시장의 안일함, 급격한 조정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현재 상황을 2000년에 무너졌던 '닷컴 버블'에 비유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요아힘 나겔 정책이사회 위원은 "AI 자산가치 상승은 짧게 보면 혁신 같지만, 거품이 터질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미·중 무역전쟁 재점화와 잠재적 AI 거품 붕괴가 겹치면 세계 경제에 약 1조 4000억 달러의 손실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조시 립스키 선임국장은 "4월 회의 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느끼면서도, 언제든 임계점에 이를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인을 매우 우려하는 기이하게 갈린 모습이 나타났다"며 "이런 긴장감이 안도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채 한 주 내내 이어졌다"고 총회 분위기를 요약했다.
이런 암울한 분위기는 IMF의 경제 전망 수치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IMF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2%, 2026년은 3.1%로 제시했다. 이는 과거 평균인 약 3.7%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IMF의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무역 위험이 현실이 되면 세계 성장률은 여기서 0.3%포인트 더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아시아 지역은 성장세가 유지되지만, 무역위기가 터지면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선은 '트럼프-시진핑'으로…韓서 열릴 담판에 쏠린 눈
다만 주 후반으로 접어들며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쳤다. 이달 말 한국에서 열릴 것으로 추진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큰 폭의 긴장 완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독일의 라르스 클링바일 재무장관은 G7 회의에서 "긴장을 추가로 높여서는 안 된다"며 '데탕트(긴장 완화)'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한편, 미·중 갈등의 파장은 제3국으로 번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세탸 캉야고 중앙은행 총재는 "미·중 갈등의 파급 효과는 짧게 보면 해외 물가를 낮추지만, 길게 보면 자국 제조업 경쟁력 약화라는 대가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민은행의 판궁성 총재 역시 G20 회의에서 무역과 지정학 긴장, 금융 취약성의 결합이 시장의 대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불확실성이 "현대 경제의 바뀌지 않는 특징"이 된 시대에 정책 당국의 기민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파키스탄의 무함마드 아우랑제브 재무장관은 "인류는 언제나 창의성과 적응력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는 낙관론을 폈지만, 전 세계 정책 결정자들이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높은 경계심과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총회는 '공포보다 냉정, 보복보다 협력, 단기 이익보다 국제 신뢰'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