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항목' 넘어 엔비디아의 '의도된 진부화' 전략과 빅테크의 비용 줄다리기 전장으로
韓 HBM '황금기' 열쇠인 동시에 네이버·카카오 'AI 주권' 위협하는 시한폭탄
韓 HBM '황금기' 열쇠인 동시에 네이버·카카오 'AI 주권' 위협하는 시한폭탄
이미지 확대보기세계의 돈이 인공지능(AI)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향후 5년간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예고된 투자금만 1조 달러(약 1400조 원). 이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고 온 AI 붐의 한복판에서, 월가의 투자자들과 빅테크 경영진이 밤잠을 설치며 주시하는 단 하나의 회계 항목이 있다. 바로 '감가상각(Depreciation)'이다.
감가상각은 장비 등 고정 자산의 구매 비용을 '예상 유효 수명(Useful Life)' 동안 나누어 비용으로 처리하는 회계 절차다. 이 단순한 회계 용어가 지금 AI 산업의 패권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수십만 개의 엔비디아 GPU를 싹쓸이하는 기업들이 "과연 이 값비싼 칩을 몇 년이나 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업의 수익성, 나아가 주가를 직접적으로 강타한다. 예컨대 1억 원짜리 GPU의 유효 수명을 6년으로 잡으면 연간 비용은 약 1667만 원이지만, '빅쇼트'의 마이클 버리 주장처럼 3년으로 잡으면 연간 비용은 3333만 원으로 두 배가 된다. 1조 달러 규모의 투자에서 이 차이는 수천억 달러의 이익 변동을 의미한다.
현재 시장은 이 '유효 수명'을 두고 극명하게 갈려있다. 구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인프라 거대 기업들은 자사 서버의 수명이 최대 6년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GPU 임대 서비스 기업 코어위브는 2020년산 A100 칩도 여전히 수요가 굳건하다며 '6년 주기'를 자신한다. 반면 마이클 버리 같은 회의론자들은 이들이 이익을 부풀리기 위해 감가상각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실제 수명은 2~3년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표면적으로 이 논쟁은 '회계 기준'에 대한 기술적 논쟁처럼 보이지만 이는 회계 장부 속 숫자 싸움이 아니라고 미 경제방송 CNBC는 분석했다. 이것은 AI 시대의 표준을 누가 만드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기술 패권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중심에는 GPU 공급을 독점한 엔비디아의 치밀한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6년' 낙관론 vs '2년' 현실론…'회계장부' 아닌 '기술 전쟁'
현재 '6년 낙관론'의 선봉에는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가 있다. 마이클 인트레이터 코어위브 CEO는 "모든 데이터가 인프라의 가치 유지를 증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2020년 발표된 A100 칩은 여전히 100% 예약이 찼고, 2022년형 H100 칩도 계약 만료 즉시 기존 가격의 95%에 재계약됐다"고 밝혔다. 이는 구형 칩이라도 특정 AI 작업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으며, 물리적 내구연한도 충분히 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코어위브 주가는 AI 과잉 투자 우려로 6월 고점 대비 반 토막이 났고, 오라클 역시 9월 최고치에서 34% 폭락했다. '빅쇼트'의 마이클 버리는 이들 빅테크가 감가상각을 의도적으로 늘려 잡아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서버 장비의 실제 경제적 수명을 2~3년으로 본다.
이 '2~3년'이라는 수치의 근거는 단순한 물리적 마모가 아니다. 바로 '기술적 진부화(Technological Obsolescence)'다. 그리고 이 진부화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장본인이 바로 엔비디아다.
이는 농담이 아니라 사실상의 '정책 선언'이다. 엔비디아는 과거 2년이던 신제품 출시 주기를 1년으로 단축했다. 이는 고객사들의 감가상각 주기를 6년이 아닌 1~2년으로 강제로 단축시키겠다는 전략적 엄포다. 아무리 6년 전 구매한 GPU가 물리적으로 작동한다 한들, 경쟁사가 1년마다 성능이 2~3배씩 향상된 신형 GPU로 무장한다면, 구형 칩은 AI 경쟁에서 즉각 '고철'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엔비디아가 설계한 '의도된 진부화' 전략의 핵심이다.
빅테크 역시 이 함정을 모르지 않는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엔비디아의 (제품) 이전 속도가 빨라진 것이 가장 큰 교훈"이라며 "한 세대의 프로세서에 4~5년의 감가상각이 묶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엔비디아의 속도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공개적인 불만 표출이자, 구글(TPU), 아마존(트레이니엄), MS(마이아) 등 자체 AI 칩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존이 최근 일부 서버의 유효 수명을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한 것도 이러한 기술 변화 속도를 회계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결국 '감가상각 6년'은 빅테크가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희망 사항'이자 재무적 방어 논리라면, '감가상각 2~3년'은 엔비디아가 강요하는 '기술적 현실'이다.
엔비디아의 속도에 묶인 세계…韓 반도체, '황금기'와 '족쇄' 사이
이 거대한 감가상각 전쟁은 태평양 건너 한국의 산업 지형도를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이 논쟁은 한국의 두 핵심 산업, 즉 '반도체(HBM)'와 'AI 서비스(플랫폼)'에 극명하게 엇갈리는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첫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 GPU 감가상각 주기의 단축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의미한다.
엔비디아가 1년마다 '블랙웰', '블랙웰 울트라' 등 신형 GPU를 찍어낸다는 것은, 그 GPU에 탑재될 HBM 역시 1년 주기로 HBM3E에서 HBM4, HEM4E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GPU의 경제적 수명이 2~3년으로 고정되면, HBM 수요 역시 일회성 특수가 아닌 '2~3년 주기의 거대한 교체 사이클'로 고착화된다.
이는 HBM이 더 이상 단순한 D램이 아니라, GPU와 운명을 같이하는 '핵심 파트너'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깔아놓은 '하드웨어 속도전'의 최대 수혜자로서, 막대한 고마진 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GPU 왕' 엔비디아가 'HBM 귀족'인 한국 기업들 없이는 왕좌를 유지할 수 없는 공생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둘째, 네이버, 카카오, SKT, KT 등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는 국내 플랫폼 및 통신 기업들에게 이는 '재앙적 비용 압박'이자 'AI 주권'의 위기다.
이들 기업은 구글이나 MS처럼 조 단위의 자금력으로 매년 수십만 개의 GPU를 구매할 여력이 없다. 어렵게 '하이퍼클로바 X' 같은 자체 모델을 구축해 놨더니, 2~3년 만에 그 기반이 되는 GPU가 기술적으로 진부화되어버린다면 막대한 투자 비용은 그대로 '매몰 비용'이 된다.
이 '하드웨어 쳇바퀴'를 따라잡기 위해 매년 수천억 원을 추가로 지출하거나, 혹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끔찍한 양자택일에 몰리게 된다. 결국 자체 인프라 구축을 포기하고 MS 애저나 구글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고객'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데이터와 서비스의 종속, 즉 'AI 주권'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GPU 감가상각' 논쟁은 단순한 회계 처리 문제를 넘어섰다. 이는 엔비디아가 설계한 기술적 속도에 빅테크가 어떻게 비용을 분담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HBM 제조사들이 어떤 반사이익을 얻고 한국의 AI 서비스 기업들이 어떤 위기에 봉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AI 시대의 지정학' 그 자체다. 이 수명 주기를 '회계'가 아닌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2026 대전망] 트럼프 시대, 韓 외교 안보의 ‘실용과 원칙’ 스...](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setimgmake.php?w=80&h=60&m=1&simg=2025112110061007385c35228d2f517519315010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