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TSMC 깃발 따라"…대만 인재 13만명 美로 대이동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TSMC 깃발 따라"…대만 인재 13만명 美로 대이동

애리조나·구마모토 공장 가동에 협력사 직원까지 '우르르'
中 비중 60%→30% '반토막'…갈등·고비용에 '탈중국' 뚜렷
사진=구글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구글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의 거침없는 해외 영토 확장이 대만 내 고급 기술 인력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TSMC가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 등 해외 거점에서의 생산을 본격화하면서, 반도체 전문 인력들이 대거 미국과 일본 등 동맹국으로 이동하는 '인재 엑소더스(Exodus·대탈출)' 현상이 통계로 확인됐다. 미·중 패권 경쟁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기업의 생산 기지를 넘어 인적 자원의 흐름까지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 행정원 주계총처(DGBAS)가 19일(현지시각)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미국에서 근무하는 대만 국적 근로자 수는 13만7000명으로 집계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TSMC의 해외 팹(Fab·공장) 건설과 가동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협력사까지 '우르르'…생태계 대이동


지난해 해외에 체류 중인 대만 취업자 총수는 66만 6000명으로, 전년 대비 4만5000명 증가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만의 해외 취업자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73만 9000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미·중 무역 전쟁 심화와 공급망 교란, 대만 기업들의 리쇼어링(본국 회귀), 그리고 팬데믹에 따른 국경 봉쇄가 겹치며 2021년에는 31만 9000명까지 곤두박질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3년 새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국경 봉쇄 해제와 더불어 미국 등 주요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기반 확보를 위해 TSMC를 필사적으로 유치한 결과가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탄원링(譚文玲) 대만 국가통계국 산하 주계총처 인구조사 부국장은 이번 인력 급증의 배경에 대해 "미국 애리조나주와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설된 TSMC의 신규 공장이 2024년 말부터 본격적인 양산(mass production) 체제에 돌입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인력 이동의 질(質)과 범위다. 탄 부국장은 "TSMC 본사 직원뿐만 아니라 관련 공급망(related suppliers)에 속한 협력사 직원들까지 해외로 동반 진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산업은 공정 장비, 소재, 부품 등 후방 산업과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TSMC'라는 거함이 움직이자 그 생태계를 구성하는 '선단'이 함께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셈이다.

中 비중 '반토막'…짐 싸는 인재들


이번 통계는 대만 인력의 '탈(脫)중국' 경향이 돌이킬 수 없는 추세임을 보여준다. 2024년 기준 중국(홍콩·마카오 포함) 체류 대만 근로자는 23만 1000명으로, 전체 해외 취업자의 34.7%를 차지했다. 여전히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은 수치지만, 과거의 위상과는 격세지감이다. 팬데믹 이전, 중국은 대만 해외 인력의 60% 이상(40만 명 상회)을 흡수하던 절대적인 시장이었다.

주계총처는 중국 비중이 급감한 원인으로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 △기술 분쟁 △중국 내 인건비 상승 △기업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 비용 증가 등을 꼽았다. 중국의 사업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양안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만 인재들이 중국을 떠나 미국과 동남아, 일본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미국의 비중은 20.5%까지 치솟았으며, 동남아시아는 14.6%를 기록했다.

日, 인재 빨아들이는 '블랙홀'


미국 못지않게 눈여겨봐야 할 곳은 일본과 한국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에서 일하는 대만 근로자는 합계 8만 명으로, 전체의 12%를 차지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탄 부국장은 특히 일본행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인구 구조적 요인을 지목했다. 그는 "일본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 인재 유치와 노동 시장 개방에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개방 정책과 TSMC 구마모토 공장 가동이 맞물려, 대만 반도체 인재들이 일본으로 흡수되는 '인재 블랙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번 대만 해외 취업자 데이터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의 중심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제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자석이 되고 있다. 반면, 고비용 구조와 규제 리스크에 직면한 중국은 인재 유출을 막지 못하고 있다. TSMC 팹이 들어서는 곳이 곧 글로벌 인재의 집결지가 되는 지금, 인력 확보는 기업의 생존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가 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