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100 능가" 中 14나노 칩 충격…미세 공정 포기하고 '3D 패키징'으로 승부수
EUV 막히자 '쌓기' 기술로 우회…'공정 만능주의' 깬 묘수인가, 양산 불가능한 괴작인가
EUV 막히자 '쌓기' 기술로 우회…'공정 만능주의' 깬 묘수인가, 양산 불가능한 괴작인가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정부가 촘촘하게 짜놓은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 그물망에 구멍이 뚫린 것일까, 아니면 중국 특유의 '기술 허세'일까.
중국 반도체 업계가 전 세계 AI(인공지능) 칩 시장의 절대강자 엔비디아(NVIDIA)를 향해 기상천외한 도전장을 던졌다. 최첨단 4나노, 3나노 공정이 아닌, 사실상 '구형(Legacy)' 기술로 취급받는 14나노 공정으로 엔비디아의 최신 GPU(그래픽처리장치) 성능을 따라잡았다는 주장이다. 이는 반도체 업계의 불문율인 '무어의 법칙(미세 공정이 성능을 좌우한다)'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시도이자, 미국의 EUV(극자외선) 장비 통제를 보란 듯이 비웃는 '기술적 도발'이다.
14나노의 역습…"도로 확장 대신 '고가도로' 뚫었다"
최근 베이징 'ICC 글로벌 CEO 서밋' 연단에 선 웨이 사오쥔(魏少军) 중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칭화대 교수)의 발표는 업계를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공개한 중국의 독자 AI 칩은 스펙상 120 테라플롭스(TFLOPS·1초당 1조 번 연산)의 성능을 낸다. 이는 엔비디아의 베스트셀러 'A100'을 능가하고, 전력 효율 면에서는 최신 '호퍼(Hopper)' 아키텍처에 근접하는 수치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렇다. 미국이 도로(회로) 폭을 좁히는 기술(미세 공정)을 막아버리자, 중국은 도로 위에 또 다른 도로를 얹는 '고가도로(3D 적층)' 전법을 택한 것이다.
이 기술은 14나노 로직 칩과 18나노 D램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고, 이를 머리카락보다 얇은 구리(Copper) 배선으로 직접 연결한다. 기존 방식이 칩과 메모리를 평면에 나란히 배치해 데이터가 오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지연 시간), 이 방식은 엘리베이터를 타듯 데이터가 수직으로 직행한다. 웨이 부회장은 "물리적 거리를 없애 '메모리 장벽'을 돌파했다"며 "구형 공정으로도 최첨단 칩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美 제재가 낳은 '기형적 혁신'…패키징이 새 전장으로
톰스 하드웨어 등 주요 외신은 이번 발표를 "중국의 계산된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는 미국의 제재로 네덜란드 ASML의 EUV 장비를 구할 수 없다. 7나노 이하 공정 진입이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진퇴양난에 빠진 중국이 찾아낸 우회로가 바로 '첨단 패키징'이다.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전공정'은 장비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칩을 연결하고 포장하는 '후공정(패키징)'은 상대적으로 제재의 칼날이 무디다. 중국은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기술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물리적 한계에 봉착한 미세 공정 대신, 서로 다른 칩을 이어 붙여 성능을 높이는 '이종 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어차피 미세 공정으로 못 이긴다면, 패키징으로 판을 뒤집겠다"는 전략을 노골화한 셈이다. 이는 엔비디아가 차세대 '블랙웰' GPU에서 3D 적층 기술을 강화하는 것과 묘하게 닮아 있다. 적(敵)의 기술을 모방해 적을 치려는 전략이다.
"CUDA 감옥을 탈출하라"…SW 생태계 독립 선언
중국의 야심은 하드웨어에 그치지 않는다. 웨이 부회장은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를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라며 맹비난했다. 전 세계 AI 개발자들이 CUDA에 종속되어 있어, 엔비디아 GPU 외에는 대안이 없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이에 중국은 '탈(脫) CUDA'를 기치로 내걸었다. 화웨이, 알리바바, 캠브리콘 등 빅테크 연합군은 파이토치(PyTorch), 텐서플로(TensorFlow) 등 오픈소스 프레임워크를 지원하는 독자 소프트웨어 스택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디지타임스 아시아는 "중국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칩 자립이 아니라, 실리콘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미국의 입김이 닿지 않는 '완전한 기술 독립'"이라고 분석했다.
120 테라플롭스의 진실…'게임 체인저'인가 '신기루'인가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넘어야 할 산은 에베레스트만큼 높다.
첫째, '수율(Yield)의 함정'이다. 3D 하이브리드 본딩은 극도의 정밀도가 요구되는 고난도 기술이다. 서로 다른 칩을 수직으로 붙일 때 미세한 오차만 있어도 칩 전체가 불량이 된다. 실험실에서 시제품(Sample)을 만드는 것과, 수백만 개를 양산(Mass Production)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SMIC가 과연 14나노 기반의 3D 칩을 상업적 수율로 뽑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둘째, '발열(Heat) 제어'다. 로직과 메모리를 밀착시키면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14나노 공정은 최신 공정보다 전력 소모가 많고 발열도 심하다. 이를 좁은 공간에 쌓아 올렸을 때 발생하는 '열 폭주'를 잡지 못하면, 120 테라플롭스 성능은 고사하고 시스템이 다운될 수 있다.
셋째, '소프트웨어 호환성'이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아도 개발자들이 쓰기 불편하면 무용지물이다.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는 10년 넘게 축적된 거대한 성(城)이다. 중국의 독자 플랫폼이 이 성벽을 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엔비디아엔 '성가신 자극', 중국엔 '생존의 몸부림'
중국의 '14나노 3D 칩'은 당장 엔비디아의 아성을 무너뜨릴 '엔비디아 킬러'가 되기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문을 걸어 잠그자, 중국은 창문을 깨고, 땅굴을 파서라도 길을 만들고 있다.
"낡은 기술로도 혁신은 가능하다"는 중국의 이번 도발은, 기술 패권 전쟁이 '누가 더 미세한가'에서 '누가 더 똑똑하게 쌓느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엔비디아와 미국 정부가 이 '기형적인 괴물 칩'의 등장을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